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나의 인생樂서, 지금 시작해 보세요. 회원가입 후 프로필을 등록하면, 씨앗뱃지를 드려요~

오늘의 추천스토리

80년대 시골에는 차도 드물었던 시절이었죠 충남 금산 시골에서 카센터를 하시는 아버지에게는 멋진 포니 한대가 있었습니다. 집안에 딱 한대만 있었기에 8남매를 둔 아버지 가족들에겐 어벤저스 같은 존재였습니다. 무슨일만 있으면 출동하는 특공포니ㅋㅋ 사진은 가족들 먹여살리느라 오로지 일밖에 모르시는 아버지께서 간만에 시간을 내어 서울 창경궁에 놀러갔던 사진이네요 약 40년 가까이 된 사진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저희는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ㅎㅎ 이렇게 항상 젊을것 같던 부모님... 저희 4남매... 어느던 다들 마흔, 쉰을 바라보고 부모님은 어느덧 칠순을 훌쩍 넘기셨네요 어린 자식들이 훌쩍커서 50이 다 되었습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하듯 평생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오신 아버지 세대의 부모님들 존경스럽고 저도 아버지 이지만 저희 부모님께서 주신 사랑만큼 제 아이를 헌신적으로 키울수 있을지... 인생락서를 보고 생각하며 어릴적 추억을 그려보기도 했지만 가족의 일대기를 되돌아 볼수 있어서 잠시나마 추억여행을 다녀온것 같네요 그리고 부모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하는 시간이 되어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한평생 함께하신 부모님 지금처럼 또 그동안 지내오시던 것 처럼 둘이 맞잡은 그손 꼭 잡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동행 부탁드립니다. 인생락서 고맙습니다. 짧은시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어플이네요 앞으로도 자주 이용하겠습니다 대대장
짠내나는 제 아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오랜만에 전성기를 맞은 짠내나는 모 개그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제 아내는 아주 짠순이입니다. 요즘 그 흔한 명품이나 준명품 가방 하나 없고, 마트가도 세일하는 것만 사는데, 그나마도 요즘은 마트가면 목돈 나간다고 동네 슈퍼 문닫을 때쯤 가서 떨이하는 거 사고, 양말이나 속옷도 꿰메입어서 아들녀석이 창피했는지 엄마생일에 내의를 선물했습니다. 제발 꿰메입지 말라고하면서... 매년 11월 중순이면 아내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겹쳐있어서 겸사겸사 조그만 선물을 사주곤 하는데, 나도 한번쯤은 아내를 위해 괜찮은 선물을 좀 해줘야 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얼마전 퇴근하고 TV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한 드라마속의 세련된 부인이 들고있던 딱봐도 명품같아보이는 백을 보고 "나도 저런 핸드백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하며 지나가듯 말하는게 아니겠습니까? 아~명품과는 거리가 먼, 생전 그런얘기 안하던 짠돌이 마눌님이 뜬금없이 핸드백을 얘기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사람도 여자인데 내가 그동안 너무 무심했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얼마되지는 않지만 용돈을 아껴 모아오던 비자금 털어서 아내가 갖고싶다고 얘기한  핸드백과 가장 유사한 브랜드중 가장 작은(사실은 가장 저렴한) 핸드백을 사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거였는데 그래도 비싸긴 하더군요. 자~ 이제 눈물 흘리며 "고마워~사랑해~"뭐 이래야 되는게 순서인데... 아내 왈 "미쳤어~돈쓸일이 얼마나 많은데! 반품해! 당신 용돈 많이 남는구나~! 다음달부터 5만원 삭감이야!" 아~ 제가 왜그랬을 까요? 세상에서 제일 짠순이 우리 마눌님! 그래도 못난 남편 만나서 박봉으로 이만큼 살고있는거 다 당신 덕분이야~♡ 그리고또다시
군산을 끝으로 2차 탐방 여행을 마치고 보름간 대구에서 휴식한 후 다시 전라도 탐방에 나섰다. 1박2일의 짧은 일정이었기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이내 첫 목적지를 익산으로 삼았다. 가장 먼곳부터 시작해 대구로 돌아오는 여정 중에 몇곳을 들를 예정이었다. 2시간여를 쉼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황량한 초겨울 바람이 거센 익산 '미륵사지'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두툼한 눈두덩이 언저리에 눈물이 맺힌 것이 차가운 바람 때문인지, 눈부시게 시린 햇빛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마한, 백제의 꽃밭 금마를 찾았다. 언제였던가 가을걷이 손 털고 재작년 늦가을 진아는 하늬의 손가락 끼어 미륵사탑 아래 그림으로 서 있었지 그날은 저 탑날개 이끼 위 꽃잠자리가 앉아 있었다.' - 신동엽 '금강' 제19장 中 여행지의 날씨 따윈 관심조차 두지 않은 초보 여행객의 어수룩함이 묻어나는 얇은 차림 때문에 '미륵사지 전시관'까지 걸어가는동안 오들오들 떨어야했다. '그래도..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갖게 될지 알 수 없어.' 더는 미룰 수가 없는 여행길. 계절보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절박함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몰아치는 바람 앞에서도 등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미륵사(彌勒寺). 유명한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인 백제 무왕과 그의 왕비인 신라 선화 공주가 용화산(현재 미륵산) 아래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을 만난 후 연못을 메워 세운 절 (삼국유사) 이라거나, 무왕의 왕비이자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선화가 발원한 것 (금제사리봉영기) 이라고 하는데, 선화 왕후의 출신에 대한 것만 다를 뿐 백제 무왕의 왕비인 선화가 미륵사를 세우도록 했다는 얘기는 같다. 그래도 미륵사지의 '금제사리봉영기' 안에서 확인된 후자의 내용이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싶다. 얘기는 전자가 더 이쁘지만서도. 미륵사는 그 규모만으로도 동양 최대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을만큼 매우 큰 가람(伽藍)이다. 목탑이 있던 탑터를 통해 추산한 중앙부의 목탑 높이는 약 40m에 이르고,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시 높이가 24m에 이르니, 현재까지 전하는 신라의 석탑 중 가장 크다는 감은사지 석탑이 13m에 불과한 것을 생각한다면, 미륵사는 당시 백제의 모든 국력과 예술, 문화적 역량이 집중된 최고의 걸작이었다. 그렇지만 현재 미륵사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절터는 말 그대로 황량한 벌판으로 보일 뿐, 과거의 영화로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조선 시대에 절의 맥이 끊어져 방치된 후 다시 불사가 일어나지 못한 탓에 그저 넓은 절터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었다. 입구 초입에 있는 전시관을 향하자, 일단의 사람들이 전시관을 들락거렸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상당한 규모로 마련해 놓은 과거 미륵사의 복원 디오라마였다. 동서 양쪽의 석탑과 중앙에서 하늘 높이 치솟은 목탑이 인상적이며 좌우 대칭 구도가 아닌 3곳의 축을 기준으로 자리잡은 거대한 미륵사의 규모를 한눈에 즐길 수 있다. 전시관 안에는 의외로 볼 것과 읽을 거리들이 넘쳐났다. 현재 서쪽의 미륵사지 석탑이 보수중인데 탑 해체와 미륵사지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유물과 백제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많은 물건과 얘기들이 전시관 벽과 공간마다 오롯이 담겼다. 선화비가 미륵사를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는 '금제사리봉영기'를 돋보기로 들여다 볼 수 있고, 2미터가 족히 넘는 커다란 크기의 미륵사 목탑과 보수중인 미륵사지석탑 모형들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백제 특유의 연꽃 무늬 기와는 정교하고 아담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한 치미(鴟尾 : 기와 지붕 용마루의 양쪽 끝에 놓이는 장식용 기와)는 눈으로 그 질감까지 느낄 수 있을만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고 눈에 담고 나오는데 1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시 전시관을 나와 메마른 절터에 올랐다. 이미 복원되어 있는 동쪽의 미륵사 석탑과 현재 보수중인 서쪽 미륵사 석탑, 그 앞에 서 있는 당간지주 외에 다른 건축물은 없다. 다만, 회랑터와 금당지 등 미륵사 내부의 건물들의 위치와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구획들은 확인할 수 있는데, 다시 미륵사가 복원된다면 유례없는 큰 가람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예상은 쉽게 할 수 있다. 새로 복원되어 고풍스러운 멋은 없지만, 새하얀 모습으로 서 있는 동쪽 미륵사 석탑에 올랐다. 석탑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사람 여럿이 한꺼번에 들어설 수 있을 정도로 큰 탑이다. 익산에서 나는 화강암 2,700톤이 사용되었다는데 어느 정도인지 쉽사리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치밀어오르듯 추켜세워진 탑날개 뒤로 오전의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졌고, 날개 끝에 매달린 풍경은 마른 바람에 추운듯 청아한 소리를 전하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보수중인 서쪽 미륵사 석탑을 찾아 공장 안으로 들어섰다. 무너진 사면에 시멘트를 덕지덕지 붙여 대충 보수해 놓은 일제의 만행에 크게 분개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지만, 이제는 보수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만큼 그 흉한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새로 끼워 맞춘 석재는 돋아난 새살처럼 하얗고, 천년의 세월을 견딘 석재는 그 시간을 연한 갈색빛으로 담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의 손으로 일제의 흔적을 지우고 다시 일어나는 석탑. 괜한 뭉클함에 몇번이나 석탑을 돌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새해가 되면 복원이 완료될거라고 했다. 이미 복원된 동원의 석탑과 새로 복원될 서원의 석탑이 다시 태어나는 미륵사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당간지주 사이로 바람은 앞뒤로 마구 뒤엉켰고, 그 옆에 선 채로 누런 풀밭 위를 운동화로 쓰다듬으며 잠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 피부는 춥지만, 머릿 속에 얽힌 타래 중에 하나는 이곳 미륵사터에서 풀고 가고 싶었다. 곰보처럼 군데군데 검게 얼룩진 당간지주의 표면보다 더 복잡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지길 바랬다. 도착했을 때의 조급한 마음은 어느새 지워져 있었다. ... 익산을 첫 여행지로 삼은 것은 온전히 미륵사 하나 때문이었다. 그 소원을 이루고 여유롭게 익산을 더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원래 계획한대로 '최명희 문학관'을 향하기로 했다. 전주까지는 40분 거리였다. 배가 고팠다. 점심은 전주 비빔밥을 예정했다. 익산 2017 fin. 제피로스

열린공감

인생樂서에서, 나의 첫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소중한 삶의 순간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나의 공간-
인생樂서에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세요.

나의 태몽과, 지금까지 태몽대로 이루어진 것이 있는지 알려 주세요.

글쓰기

내가 태어난 날에 대해, 부모님이 들려 준 이야기를 알려 주세요.

글쓰기

내 이름을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글쓰기

삭제하시겠습니까?

삭제되었습니다.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0개의 스토리
    0개의 스토리
      0개의 스토리
        프로필 수정
        생일
        직업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쪽지 보내기

          0/100

          쪽지가 전송되었습니다.

          친구관리

          친구관리

          친구관리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