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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인생락서 가족 여러분!달라진 인생락서, 발견하셨나요?이번 업데이트와 함께 인생락서가 새 옷을 입었답니다!어떻게 달라졌는지 함께 알아볼까요?(앱을 업데이트 하시면 달라진 화면을 만날 수 있어요~)   1. 메인 화면이 바뀌었어요!좀 더 직관적인 디자인으로 바꿔봤어요.오른쪽 상단에는 이벤트 모음으로 바로 갈 수 있는 버튼도 있답니다!(사실 원래 있었는데요, 이번에 이름을 ‘이벤트’로 바꿨어요~) 2. 오늘의 추천스토리더 이상 자동으로 넘어가지 않아요.대신 글을 읽으시다가 아래에 있는 화살표 버튼을 누르시면앞 뒤 스토리로 쉽게 이동할 수 있답니다.다른 게시판에도 적용되니, 좋은 글들을 더 쉽게 몰아서 보세요! 3. 일기는 더 쓰기 쉽게!메인화면에서 바로 일기장으로 연결되니까, 더 쉽고 간편하게!매일매일 일기 쓰는 습관, 지금 바로 시작해 보세요! 4.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다양한 글을 써보세요.다섯 가지 주제의 공감스토리를 준비했어요.이 곳은 추후 또 한 번의 업데이트를 통해,여러분이 주제별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게시판으로 변신할 예정이랍니다. 5. 열린공감(이벤트 게시판)은 자주 이용하시는 것 위주로 간단하게!게시판이 없어진 건 아니에요!다만 자주 쓰고 많이 쓰는 게시판 위주로 보여 드리게 되었답니다.우리 이야기 > 열린공감으로 가시면, 기존 게시판들도 그대로 만나보실 수 있어요. 확~ 달라진 인생락서!깜짝 이벤트로 더 신나게 즐겨봐요! <더 새로워진 인생락서 기념 이벤트> □ 행사내용 달라진 인생락서를 써보시고 소감을 본 게시물에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1,000분께 GS25 농심 안성탕면 모바일교환권을 드립니다!※ 좋아진 점과 불편한 점, 어떤 의견이든 모두 환영합니다!※ 이용하시다가 발견한 오류를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 경품내 취향에 딱 맞춘 인생락서, 경품도 딱 안성맞춤!GS25 농심 안성탕면 (봉지) 모바일교환권 (1,000명) □ 행사기간- 11/8(금)~11/14(목) 자정까지□ 당첨자 발표 및 경품 제공- 11/20(수) 인생락서에 당첨자 게시 및 쿠폰함으로 지급 (더보기 > 내 쿠폰) 본 게시물은 #알려드려요 게시판과 메인추천스토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달라진 인생락서를 써보시고 소감을 본 게시물에 댓글로 공유해 주세요. 1,000분께 GS25 농심 안성탕면 모바일교환권을 드립니다! 가끔씩 모바일교환권 인식이 안 된다고 문의 주시는 분들이 있는데요,쿠폰번호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니고, 바코드 리더기가 오래된 경우에 그럴 수 있다고 하네요.그럴 땐 당황하지 마시고, 번호를 수기 입력해 달라고 요청해 주세요.앞으로 발급되는 쿠폰에는 수기로 입력하는 방법도 같이 안내해 드릴게요. 오래된 리더기에서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게 바코드 양식을 변경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아, 그리고 어제 오늘 경품 받으신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쿠폰함 한 번씩 확인해 보세요 ^^ 인생락서관리자
매슬로우라는 한 외국학자가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구분 짓고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는 인간에게 나타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욕구로 욕구 피라미드의 최하단에 위치한다고 한다.이에 오래전 겪은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를 전하고자 한다..때는 2000년 후반경으로 필자는 시공회사 3개현장에서 현장근무를 마치고 본사로 올라와 근무하고 있던 때였다..본사근무가 바쁠때는 현장보다 더 바쁘지만 그 바쁨의 정도가 현장과는 달리 일정한 패턴이 있어 본인이 시간을 잘 활용하면 자기계발도 가능했고 마침 회사 도급순위가 올라가며 사내 직원 복지가 확충되던 시기였다.동영상 강의던 오프라인 강의던 업무관련 분야 상위 기술 자격증을 공부하면 학원비 일체가 본사에서 지원되고 자격 취득시에는 별도 자격수당이 매달 급여에 플러스되어 주어지기에 구미가 당기는 복지지원이 시행되던 초창기였다.학원비가 나름 고가였기에 회사 복지부서에서는 임직원들의 무분별한 지원금 신청(도덕적 해이방지)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옵션을 지정하였다.옵션은 다름아닌 정해진 일정 년 수안에 학원비 지원은 받되 반드시 합격을 해야만 했다.기간은 넉넉히 정해주었으나 그 기간안에 취득하지 못하면 지원받은 지원금 일체를 회사에 반환해야했다.(반환 즉, 토해낸(?)기금은 당시 회사에서 기부하던 단체에 연말에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쓰여지는 시스템이었다.) 옆 부서인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공무팀 만년차장님이 필자를 꼬드겼다.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시험이니 스터디를 짜서 서로 독려하며 품질팀 장대리까지 해서 -필자를 포함 셋이- 같이 공부하자는 제안이셨다. 기간안 합격이라는 독소조항의 압박으로 며칠 고민을 했으나 지원금을 반환해도 좋은 곳에 쓰여진다고하니 고민끝에 만년차장님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다.보통은 1년에 두 세차례 시험을 볼 수 있었지만 직장생활을 하며 주경야독을 하는 입장이라 8~9월에 있는 마지막 시험에 승운을 걸고 진도를 나가는게 우리셋의 합격작전이었다.그 시험을 놓치면 또 다시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이되야 응시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가급적 빨리 끝내야 된다는 절박함이 직딩 노장 수험생인 우리 모두에게 팽배해있었다.낮에는 회사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기술서적을 탐독하는 고난의 행군이 각자에게 시작되었고 일단 시작한 이상 합격하지 못하면 그 쉬지 못한 힘들었던 시간들은 고스란히 매몰비용이 되는 끔찍한 현실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주말에도 회사에 출근하여 미팅룸에서 만년차장 선배님 필자 장대리 셋이서 스터디를 하며 서로를 독려하였다. 그렇게 1년여를 동고동락하고 2년차 접어들 즈음 셋이서 같이 시험접수를 하고 연습삼아 시험을 쳐보았으나 나란히 형편없는 점수로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필자와 장대리는 만년차장님에 비해 그나마 젊어 시간적 여유가 있었으나 만년차장님은 직급정년에 걸려 우리들 보다 더 합격이 절박한 입장이셨다.시간이 또 지나 그해 마지막 여름 시험날짜가 잡히고 차장님은 절로 고개가 숙여질만큼 만학의 열정을 불사르고 있었다. 기본개념이나 현장사례에 해외 선진국 기술공법까지 mp3파일로 녹음하여 지방 출장이라도 잡히시면 종일 기차안에서 열공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너무 열공하여 코피를 쏟기도 다반사였고 혼자 푸념으로 지금의 열정으로 학창시절로 돌아가 공부를 한다면 국내 최고S대학이 아니라 미국 하버드대에도 도전이 가능하겠다고 넋두리를 혼자하시곤 했다.그러면서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할때도 작은 수첩에 서술항목을 두문자로 정리하여 짬짬이 외우는데 참으로 그 만학의 열정이 절로 존경스러웠다.그만큼 선배님은 누구보다도 자격취득이 절박하셨을거라 생각해본다.막연한 추측이나 헛된 공상이 아니고 주말 학원에서 본 모의고사 성적이 늘 차장님은 상위합격권이셨다. 이대로라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고 수석합격도 꿈은 아닐거라 생각되었다.노장 투혼을 불태우는 차장님 덕분이었을까 필자와 젊은 피 장대리 역시 이에 자극 받아 덩달아 학습 능률이 오르고 몰랐던 공법이나 현장사례들을 경험 많은 차장님께 지도 도움을 받았다.차장님이 직접 공들여 정리한 서브노트도 무상으로 제공 받고 서로를 독려하여 정진해서인지 필자와 장대리도 시험을 두어 달 앞두고는 제법 합격권에 가까운 점수를 내고 있었다.몸은 물먹은 솜처럼 고단했으나 스스로 결정한 길이었기에 하루해가 질때면 자신들이 대견스러웠다.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그해 마지막 회차인 시험일이 다가왔다.이번에도 안되면 또 올 겨울도 춥게 보내겠구나 싶었다.1,2교시 일반론을 세사람은 나름 선방하고 중간 점심시간 그리고 3,4교시만 잘 치르면 합격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거 같은 살짝 붕뜬 느낌이었다.점심을 셋이 같이 먹으며 1,2교시를 복기해보니 예상대로 나름 잘 치른 것 같았다.차장님이 필자와 장대리의 몫까지 염두에 두고 넉넉히 김밥을 준비해 오셔서 맛있게 먹으며 3,4교시도 다같이 잘 치르자고 파이팅을 외치며 3교시에 비장한 각오로 임하였다.사달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두둥!!!!!!!차장님 부인께서 새벽부터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김밥이 더운 여름날 약간 상한거 같았다.그나마 너무 과식하면 졸음이 오는 체질인 필자는 애써 식욕을 억누르며 일찍 젓가락을 내려놓은덕분에 피해(?)가 적은편 이었고 시험을 봐도 입맛은 죽지않는다며 연신 김밥 띵호와를 외치던 장대리 상태가 한눈에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오늘 비운의 주인공으로 당첨되신 차장님은 얼핏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이미 이승에 계신분이 아니셨다.(요즘애들말로 저 세상 텐션이었다)땀을 복날 멍멍이 마냥 너무 흘려 시험감독관이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고 괜찮냐고 연신 물어볼 정도였다.이때 쯤 우리셋은 점심식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이심전심으로 서로 인지하였으나 이제 막 시작된 시험앞에서 계속 볼 것인지 접을 것 인지는 각자가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 있었다.그 해 마지막 차수 3교시 시험문제는 평이하게 출제되었고 6문제중 4문제를 골라 서술하면 되었는데 그중 2문제는 심지어 필자가 현장에 있을때 직접 시공해본 공법이었다.유난히 문제가 쉬운편이었다.포기하긴 너무 아쉽고 상대적으로 김밥대란 피해가 적은 필자는 속이 좀 더부룩한 정도였기에 계속 시험을 보기로 마음먹고 바쁘게 답안지를 적고있었다.차장님이 가운데 앉으셨고 그 뒤에 장대리 그리고 장대리 옆에 필자의 자리가 배치된 상태였다.땀을 흘리다 못해 이젠 사우나에서 막 나온 사람같던 선배님은 감독관을 불러 화장실을 다녀오고 싶다했으나 시험규정상 화장실을 갈거면 쓰던 답안지를 제출하고 재입실은 불가하다고 알려주었다. 차장님은 그래도 버티셨다 책상 모서리를 움켜잡은 그의 왼팔 튀어나온 굵은 핏줄이 작금의 상황을 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포기는 예상대로 김밥 띵호와 장대리가 먼저였다.이 후배도 얼마나 나름 참았는지 시험지를 교탁에 던지다시피하고 우당탕 책걸상을 다 쓰러뜨리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데 인간로켓이 책걸상에서 발사되었는줄 착각할 정도였다.고난의 동지가 먼저 시작 십분만에 그렇게 현실과 타협해 나가고 또 십분뒤엔 세상 편안한 얼굴로 교실밖 창가에 나타나 그만 포기하라고 히죽히죽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때였다!!!!!!!!!차장님의 상태가 심각하다는걸 동물적 감각 아니 동물적 후각(?)으로 필자는 감지했다차장님 역시 이제 시험을 포기한걸로 보였다.극한 상황에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고는 하나 김밥대란 급동(?)앞에선 다 개소리에 지나지 않았다.쓰기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몇 발자욱 옮기다 그 자리에 정지화면처럼 차장님은 멈춰섰다.감독관은  "뭐 하세요? 나갈거면 빨리나가세요”라고 재촉하였다.필자는 알았다. 저 상황에서 이족보행의 첫걸음을 시도하는 순간 대참사가 일어날것이라는 것을 말이다.지금 누군가가 부축해서 대참사를 막지않는다면 그는 합격의 영광대신 평생 동싸개(?)라는 주홍글씨가 그의 인생 가슴 한켠에서 평생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을!!!!!!!!우주비행사 암스트롱 달착륙의 첫걸음이 인류역사의 위대한 첫걸음이었다면 선배님의 저 첫걸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할 인류악의 첫걸음이었다. 웁쓰~~~얼굴도 모르지만 다들 주경야독하며 고생해 온 동지 같은 고단한 옆자리 수험생들이 아닌가~~“나는 다음에 다시 보면 된다. 어벤져스가 지구평화를 지키듯이 이 교실의 평화가 지금 내손에 달려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막아야한다!!!!!!!!이러한 생각들을 찰나에 머리속에서 빠르게 정리하고 쓰기를 멈춘 필자는 분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정지화면처럼 멈춰있는 그를 급히 부축하고 미리 나가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후배도 손짓하여 들어오게해서 그를 양옆에서 부축하였다.그리고 필자는 낮은 목소리로 비장하게 말했다. “절대 걸으려 하지 말라!!!!! 배에 힘만 주고 있으면 우리가 어떻게든 살살 끌고간다.”“절대 우리는 너를 이곳에 두고 가지 않는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는 -육이오전쟁 백마고지에서 마지막 실탄이 떨어져 대검을 총에 꿎으며- 백병전을 준비하는 비장한 소대장의 심정으로 결연하게 말하였다.이미 이 상황을 동물적 후각으로 감지한 일부 수험생들은 급기야 킥킥대기 시작했고 일부는 웃음을 참다 못해 사래가 들려 기침을 하던 수험생도 있었다.너무 웃다 “아이고 아버지”를 찾는 동료 수험생도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체면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한사람의 소중한 인권이 지금 바람앞의 등불이었다.정말 웃프다는게 딱 지금 상황이었다.필자와 장대리는 첫걸음마를 시작한 아기를 돌보는 부모의 심정으로 그를 한걸음 한걸음 해우소로 인도하였다.장대리도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복식호흡은 절대 안돼요!!!!!!! 차장님 숨을 코로만 쉬세요!!!!!!!그렇게 우리셋은 명랑운동회의 발목 묶고 빨리걷기 팀처럼 어설프지만 침착하게 화장실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필자는 혼자 상념에 빠져들고 있었다.“우리 셋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었을까?”화장실에 도착했을 때 이젠 살았구나하는 순간의 방심이 불러온 불상사로 차장님은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뜻하지 않은 빨래를 시작해야했고 시험장에서 집이 제일 가까웠던 필자는 선배님이 귀가시 입고 갈 트레이닝복 하의를 가지러 서둘러 귀가하였다.여분 옷을 준비해오니 시험은 이미 종료되었고 그 많던 수험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석양이 지는 교정 구석에서 그는 젖은 바지를 입은 채 장대리와 함께 앉아 있었다. 지난 3년간 어렵사리 끊었던 담배를 선배님은 다시 피워 물고 우리에겐 등돌리고 먼산을 응시하고 있었다.장대리와 필자는 가급적 선배님의 여러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고려해서 서로 말을 아꼈다.환복을 시키고 원래는 시험 끝나고 각자 귀가해야하나 선배님을 배려해서 장대리가 자가용으로 집까지 태워다 드렸다.(이날 장대리만 차를 가져왔다.필자는 방향이 달랐으나 “나만 제발 차장님과 보내지 말아요”하는 장대리의 애절한 눈빛을 읽고 같이 동승하여 이동하게 되었다.)귀가하며 차장님은 필자에겐 계속 미안하다 장대리에겐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고맙다를 연신 말하며 차창밖을 보는데 그의 눈에 맺힌 이슬을 보고 달리 드릴 말이 없어 모른척하고 앉아 있었다.오래 준비한 시험을 망치고 후배들까지 시험이 반강제(?)로 종료되고 내일이면 또 나이어린 임원에게 한소리 들을 자신의 처지가 짐작컨대 복잡다난하였으리라.내일이면 또 기약없는 내년시험을 준비하며 전쟁 같은 빌딩숲으로 우리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또 한 주를 시작하겠지……. 팔랑귀 허세쟁이 필자 역시 마음이 멜랑꼴리해졌다.이때였다. 무거운 차내 정적을 깨고 차장님 부인께서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차장님은 짜증도 한번 낼 법한데 연신 웃으시며 준비해준 점심덕에 밥 잘먹고 시험 잘 치렀다고 했다.그런데 직장일로 공부를 많이 못해 이번에도 합격 못해 미안하다고 연신 머리를 긁적이셨다.수화기 너머로는 “아빠 들어올 때 치킨 치킨”을 외치는 따님들 목소리가 우리에게까지 들려왔다.장대리에게 태워줘서 고맙다며 집 인근 치킨집 앞에 내려서 바쁘게 뛰어가는 뒷모습만 우리에게 남기시고 시야에서 점차 사라지셨다.(내일 원가절감 회의자료는 제대로 준비하셨을려나……공부한다고 많이 준비못하셨겠지……………….파워포인트 어렵다고 툴툴거리셨는데 내가 작성해서 메일로 쏴드려야겠다…..)긴장이 풀리고 필자는 그냥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았구나하는 생각뿐이었다.젊은날엔 고리타분하게 들렸으나 내 아버님이 LP판으로 즐겨듣던 구성진 노래가락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이 세상의 부모마음 다 같은 마음~~(중간 생략)나에게도 아직까지 청춘은 있다”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에필로그어느 누구는 직장에 출근할 때 간과 쓸개는 아파트 현관 신발장에 조용히 모셔두고 퇴근할 때레고조각 처럼 찾아 끼우고 들어온다고 한다.힘든 사회생활을 우회적으로 씁쓸하게 표현한거라 생각된다.요즘은 자기계발의 시대라고 마치 힘든 사회생활만 겨우 유지하면 상대적으로 나태한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하나보다.(아빠들은 진정 슈퍼맨인가)말이 자기계발이지 퇴근하고나면 필자 역시 그냥 아무생각없이 쉬고 싶을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그 후 장대리는 두번정도 더 시험을 쳐보다 끝내 접고 말았고 필자는 그 뒤로도 포기할 수가 없어 몇 년을 고생한 끝에 겨우겨우 취득할 수 있었다.(언젠가 이 과정도 인생락서에 한번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리고 차장님은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시고 10년 가까운 세월이 더 지나 이제 그저 그날의 기억도 희미해질 무렵인 작년에 서른 네번째 도전끝에 끝내 합격하셨다.환갑전까진 도전할거라 하시더니 말이 씨가 되었나보다. 정말 내일보다 더 기뻤고 그때의 “김밥대란 삼총사”는 다시 모여 정말 즐거운 시간을 오랜만에 같이 보냈다.주변에서 “포기도 때론 용기”라는 조언을 수 없이 들으며 이젠 시험치러가는것도 주위에 알리지않고 매년 조용히 혼자 보셨다고했다.꼭 라이선스를 따지 않아도 공부가 좋고 현업에서 실제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재작년인가 필자와 생맥주 한잔하며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필자 역시 요기베라란 사람이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다.”라고 말씀드렸었고 차장님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셨다.인생락서에도 어떤 목표를 향해 말없이 오늘도 정진하는 수 많은 인생선후배님들이 계실걸로 생각된다. 그것이 공부이던 사업이든 취업준비던 자기계발이던 또 다른 무엇이던 중요하지 않다.포기하지 않고 정말 간절히 원한다면 모두들 이루실걸로 생각한다.그리고 결과보다 더 아름다운 과정이 있다는 것도 필자는 선배님을 통해 또 한번 배울 수 있었다.오늘도 한가지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계시는 인생락서 회원님들께 조금이나마 힘이될까 싶어 그때 차장님께 들은 말로 이 이야기를 마치고자한다.“내가 끝났다고해야 그제서야 끝난것이다” 하버드룸
우리 어머니는 듣지도 못하시고 말도 못하시는 흔히 말하는 농아 장애자이시다. 태어날 때 부터 그렇게 태어나셨는데 모든 대화를 수화로 하신다 .어릴적에 난 그런 어머니가 싫었다.너무 밉고 부끄러웠다.우리 어머니는 시장에서 조그만한 장사를 하셨다. 아침 일찍 농산물 시장에가서 여러가지 과일이나 야채들을 사오거나 들판이나 동네 뒷산에 올라가서 닥치는대로 산나물등을 캐서 파셨다.난 그런 어머니가 너무 창피했다.국민학교시절 운동회 때 그렇게 오지 말라고 당부를 했는데도 엄마는 학교로 오셔서 점심 때 먹을 도시락을 싸오셨는데 김밥이 아닌 나만 맨 밥에 계란후라이가 올라간 양은 도시락통에 김치와 나물등을 싸오셨다. 어찌나 창피 했는지 엄마한테 울고불고 소리를 막 질렀는데 엄마는 미안했는지 못하는 말로 엉엉 거리시면서 수화로 대꾸를 해 주시는 모습을 반 친구들이 모두 보고야 말았다. 난 너무 창피해서 학교 운동장을 그만 뛰쳐나와 버렸다.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반친구들은 너희 엄마는 말도 못하는 벙어리 병신이냐며 막 놀림을 받았다. 난 매일같이 울면서 나의 놀림거리였던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엄마한테 말했다."엄마! 왜 엄마는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벙어리냐?"고 수화로 물었다. "진짜 창피해 죽겠어!"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흘리셨다.조금 미안한 생각을 했지만 같은 반 친구들의 놀림을 생각하니 조금은 속이 후련했다.엄마의 눈물이 나의 부끄러운 감정에 비추어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 날 밤에 나는 잠에서 깨어 물을 마시려고 부엌으로 갔는데 엄마가 숨을 죽이며 세상에서 가장 서럽게 울고 계시는 것이다. 나는 그냥 바라보고 고개를 돌리고 못본 척 아까 내가 한 말 때문에 그런가 싶어 어딘가 미안한 마음으로 서성였다.그런데도 그 와중에 시원하게 소리를 지르며 통곡하듯 울부짖지 못하시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나는 커서 성공하겠다는 다짐을 했다.못 듣고 말도 못하는 엄마가 너무 싫은데다 이렇게 가난했던게 너무 싫어 나는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난 엄마곁을 떠나려고 안간힘을 쓰며 미친듯이 공부를 해서 서울에 좋은 대학에 합격해서 엄마를 내버려두고 서울로 상경을 했다. 신림동에서 하숙을 하며 낮에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쉬는 날에는 괴외를 하고 군대를 다녀와 복학한 뒤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마치고 졸업한 후에 서울에서 좋은 기업에 취직을 하고 내 집도 장만하고 결혼도 하고 이쁜 딸아이도 낳고 이쁜 가정을 꾸렸다.여기서는 엄마 생각이 나지 않아 너무 좋았다.이 행복이 깊어가고 있을 때 쯤이었다. 어느날 저녁나절에 초인종이 울리길래 인터폰 화면을 키니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지만 벨을 누르는게 우리 엄마가 아닌가? 갑작스런 엄마의 등장에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낯선 사람의 등장과 함께 못하는 말로 엉엉거리며 수화로 몸짓을 하는 모습에 어린딸아이는 무서워서 도망가고 아내는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결혼하기 전 아내한테 거짓말을 했다. 우리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고...그래서 할 수 없이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고 엄마의 손을 강압적으로 잡은 채 엄마를 밖으로 떠밀었다.그리고 "누구신데 우리집에 와서 행패를 부려서 우리 아이를 울리냐?"고 하며 소리쳤다! "당장 나가요!빨리 꺼지라구요!"그러자 엄마는 한 마디 몸짓의 수화를 하시고 조용히 뒤돌아 나가시는 것이었다. 그 뜻은 "집을 잘못 찾았으니 죄송합니다"란 의미었다. 이 말을하곤 묵묵히 눈 앞에서 사라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그 일이 있은후로 시간이 흐른 뒤에 어느날 갑자기 고향의 동문 동창회를 한다는 안내문이 집으로 날아왔다.그 때문에 아내한테는 회사 출장 간다는핑계를 대고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갔다.동창회가 끝이나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갑자기 엄마와 살던 옛 고향집이 궁금해서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 가보기로 했다.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바닥에 쓰러져 계셨다. 엄청나게 야윈 모습으로 쓰러져 계셨는데 한 손에는 꼬깃꼬깃한 종이 한장이 들려 있었다. 119에 신고를 하고 바로 병원 응급실로 왔는데 병원에서는 이미 입원해 있는 환자인 듯 잘 알고 계시는 듯 했다. 폐암이 모든 장기로 전위되어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신 것이다. 길어봐야 2달채 남지 않은 시한부 선고를 받으시고 40키로도 채 안되는 몸무게에 갸냘픈 손에 들려있던 종이가 생각이 나서 무엇인지 궁금해 바로 종이를 펼쳐보니 나에게 쓴 편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보거라...엄마는 이제 살 만큼 산 것 같구나.그리고다시는 서울에 가지 않으마.그러니 니가 가끔 찾아와 주면 안되겐니? 엄마는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구나...엄마는 동창회 때문에 니가 혹시라도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너무 반가웠단다. 혹시라도 먼 발치에서 널 볼 수만 있기를 기도하며 기다렸단다. 하지만 막상 널 보러 간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해준게 없고 미안해서 볼 염치가 없구나.너를 생각하면 한 없이 죄스럽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서 엄마는 널 차마 쳐다볼 수 조차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단다.그리고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벙어리가 되어 너의 가족들조차 볼 용기가 나질 않아서 정말 미안한 마음밖에 없구나. 비록 엄마가 농아라서 너의 사랑스러운 어린 딸아이에게 이쁘다고 말해 주고 천사같은 옹알이 소리를 들을 순 없지만 얼만큼 컸는지 우리 손녀 한 번 안아봐 줄 순 없을까? 엄마가 이렇게 못나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 아니니 한 번만 엄마를 이해해줄 수 없겠니? 니가 엄마를 아무리 싫어해도 엄마는 너를 한 번도 미워해 본 적이 없단다.니가 나에게 짜증내고 미워했던건 그래도 엄마라고 인정해 주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거라고 엄마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단다.너무나 사랑하고 너무나 미안한 우리 아들아? 이 애미가 먼저 떠났다고 울거나 슬퍼하지 말거라.울면 안된다... 사랑한다 아들아!" 갑자기 알 수 없는 고독함과 자괴감이 미친듯이 밀려왔다. 죽도록 미워하고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빌 듯이 살아왔던 엄마의 존재감이 사라진다고 생각아니 지구에 나 혼자만 팽하니 있는 듯한 외로움과 그 동안 미친듯이 부모를 미워했던 내 자신이 너무나 싫어졌다.폭포같은 눈물이 쏟아지며 처절한 한숨의 탄성이 쏟아져 나오며 왜 이렇게 못난 인간으로 태어나 부모를 미워하고 살았는지 죽고 싶은 괴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어린시절에 우리 엄마를 놀리던 친구들의 말 들이 주마등처럼 스치웠다. "너희 엄마는 말도 못하는 벙어리 병신이야!!" 그런 엄마를 위로를 하지 못하고 친구들에게 대꾸 한마디 하지 못하고 인정해 버리고 부끄러워 도망만 치려고 했던 순간들과 나의 행동들... 사랑하는 내엄마에게 사랑한단 말도 못하고 좋은음식 하나 못 먹여드리고 좋은 옷 하나 못 사 입혀 드렸는데..이렇게 허무하게 나만 남겨두고 떠나버리시면 난 혼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자신이 없어졌다.우리 엄마는 비록 듣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농아 장애자고 벙어리고 흔히 말하는 신체가 제 구실을 못하는 병신도 맞다! 우리 엄마는 비록 남들과 조금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었지만 못난 아들을 위해서 누구보다 희생했고 아들 하나만큼은잘 키우려고 애쓰신 위대한 사람이었고 세상의 악한 사람들의 더러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남을 비하하고 헐 뜯는 나쁜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벙어리였지만 정작 나와 너희들은 해야 할 말과 못 할 말을 가려내지 못하는 아둔한 입으로 아무말이나 내 뱉고 착한 사람들에게 상처나 주고 세상에 모든 악한 소리들만 듣고 살아서 어떤게 아름답고 소중한 진실의 소리인지 구별도 못하는 진정한 병신같은 존재들이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너무나 늦게 깨닫고 어머니를 찾아오니 나를 떠나겠다고 말하시는 어머니~~ 용서해주십시오!!..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들려 드리지 못 한말이 있습니다. 어머니! 절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합니다. 베일에싸이다
여상을 졸업한 뒤 경리로 취직해서 18년을 쉬지 않고 달렸다. 내 꿈과는 너무 동떨어진 직업이었으나-그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래도 잘 해서 인정받자 생각하고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어딜 가든 윗분한테 인정을 받았다 싫증이 나 퇴사한 회사에선 다시 오라고 불러주는 일도 생기고 거래처를 통해 스카웃 제의도 받게 되니까 건방이 하늘을 찔렀다. 사무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에겐 엄청 예쁨 받고 싹싹하단 얘길 들었는데 또래나 너댓 살 많은 이들로부터는 여자가 대가 세고 시건방지다는 소릴 참 많이 들었다. 그건 아마 터울이 서너 살 이상인 오빠들만 다섯이고 주변에조차 또래나 동생이 없던 탓에 윗 사람에겐 깍듯이 예의를 갖추지만 경우에 어긋나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내 성격 탓이었을 게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한없이 약해지는 우리 식구들의 타고난 성격을 닮아서~ 그렇게 어딜 가나 나름 확고한 위치를 잡고 비록 직책은 안 달아줘도 보수는 4년제 나온 또래 남자들 만큼 받으니까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다 어는 순간부터 외려 경력이 쌓여도 남자들처럼 직책을 주지 않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회 통념에 환멸을 느끼게 돼 한 곳에 오래 머물지를 못 했다. 짧으면 2년 길어야 4년 미만의 직장 생활로 이직을 밥 먹듯 했으니 말이다. 8~90년대는 경리도-특히나 회계는- 일종의 전문직이나 다름없다고 여겼었다. 하지만 점차 소기업들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좀 더 앞서가는 회사는 회계 프로그램을 깔기 시작하면서 전문직은 개뿔~ B/S, P/L, 합계잔액 시산표는커녕 차변, 대변도 모르는 초짜들조차도 컴퓨터에 입력만 시키면 알아서 착착 모든 걸 뽑아줬으니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ㅠ 굳이 고임금을 줘가며 경력자를 쓸 필요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IMF까지 터지니까 96년에 100만원 받고 들어갔던 월급이 4년간 동결되었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열심히 일 했으니 전업주부로 살자 굳게 다짐하고 15년을 버텼다. -어차피 이후엔 나를 써 줄 곳도 없었겠지만~ 하지만 어쩌랴~ 다짐이나 약속은 깨지라고 있는 걸~ㅎ 결혼 후 뒤늦게 정점을 찍은 시점에서 시작한 남편의 튼튼영어 지사 운영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다가 급기야는 곤두박질을 쳤다. 게다가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교육비가 두세 배로 뛰었으니 수입은 마이너스요 지출은 곱절로 올라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울 아들 6학년 때부터 중학교 교복값이라도 벌기 위해 교복 가게 알바를 시작했는데 이건 진짜 힘만 들지 딱 일 한 시간만큼만 돈을 주니까 소득이 정말 형편없었다. (주휴수당도 없고 월차도 없는 곳) 왕년에 내가 경리업무만 했던 게 아니라 총무 업무, 노무 업무까지 해서 일명 빠끔이였는데 모르는 곳이었으면 다 챙겨 받았을 텐데 친구가 아는 친한 언니 가게였고 알고 보니 고등학교 3년 선배였다. 길게 할 것도 아니어서 그냥 참았다. 그러다 아들이 중학생이 된 2014년 4월, 경리로 재취업을 생각하고 조카로부터 알게 된 워크넷을 통해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다. 오라는 곳이 없길래 전화를 걸어서 이력서 내러 가보겠다고 하니까 두서너 곳에서 그러라고 해서 찾아다녔다. 모든 곳에서 다 '엑셀 할 줄 아세요?' 물었다. '아니요. 지금부터 학원도 접수하고 아들한테도 열심히 배울게요' 했더니 '엑셀은 필수입니다' 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한 곳에서 뒤통수를 딱! 얻어맞았다. 승용차로 한 시간 걸려 약속시간에 찾아갔는데 '사장님 잠시 외출하셨는데 금방 오실 거에요. 기다리시겠어요?' 한다. '네~ 기다릴게요.' 했다. 어떻게 찾아온 곳인데~~~ 기다렸다. 근데 이 양반, 20분이 넘었는데도 안 온다. 슬슬 화가 났지만 내색 않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보다가 한 직원이 미안했는지 사장에게 전화를 한다. '사장님 금방 오신답니다.' 하길래 '네~' 대답하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속은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데도 말이다. 조금 있으니까 선한 얼굴의 중년 남자가 와서 내 앞에 앉더니 꺼내 논 이력서를 가져다 보았다. 한참 보더니 '2000년 이후엔 아무 일도 안 하셨나요?' 한다. '살림 했죠. 전업주부로~' 했다. 전업주부도 엄연한 직업 아닌가~? 쳇! '저기~ 절대로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 제가 비슷한 연배라 안타까워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취업 하시려면 엑셀은 꼭 배우세요. 우리 회사에 열흘간 이력서 들어온 거 보여 드릴게 한 번 보실래요?' 한다. 이력서를 한 장씩 넘겨보니까 기본 경력이 거의 다 그때로부터 15년 이상씩이요, 세무사 사무실 사무장, 과장으로 근무한 사람들 태반인걸~ 주 5일 근무, 공휴일 휴무에 보수도 좋으니까 일이 빡쎈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하는 경력자들이 많이 지원을 한 것이다. 이력서를 살그머니 사장 앞에 밀면서 이 양반을 보니까 약간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유아인 말마따나 '참 어이가 없네요~ 예?' 하는 표정이랄까~? 사장 왈 '오늘 당장이라도 학원 등록해서 엑셀 배우고 자격증 따세요. 저보다 두 살 많으신 같은 세대라 안타까워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다. 그 순간부터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네~ 제가 참 무모했네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옛날만 생각하고 무작정 달겨들다니 무지 창피하네요. 진심 어린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 일어서서 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가한 길에 정차하고선 조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혜민아, 너 취업할 때 무슨 패키지 이용했다고 했지? '네, 고모. 왜요?? 고모 취직하려고 알아보는데 엑셀 할 줄 알아야 된단다. 배우려고~' '맞아요. 엑셀 못 하면 취업하기 힘들어요.ㅎ 근로복지공단 전화해서 취업패키지 알아보세요' 한다. 전화 끊자마자 바로 근로복지공단에 전화하고 차를 몰아 달려갔다. 그리곤 엑셀과 파워포인트 과목을 선택하고 다닐 수 있는 직업훈련학교를 알아봤다. 그게 4월의 일이고 5월부터 두 달간 이걸 배우러 다녔다. 워낙 컴맹에다(실업계 나온 사람이 90년에 컴퓨터를 배울 때 무식하게 부팅이 뭐냐고 물었다는~ㅠ) 기계치인데다 거기 열 명쯤 있는데 내가 최고령자였다. 어찌나 버벅대고 '잠깐만요 잠깐만~ 좀 천천히 해주시면 안 될까요?' 연신 강사에게 사정하고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했더니 다들 흔쾌히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두 달을 배우고 드디어 시험 날. 자격증이라고는 20년 전인 1994년에 운전면허를 딴 게 전부인 내가 경인여대에 마련된 시험장에 들어서니 다들 2~30대 청년들에 어쩌다 한 두 명 내 또래가 보인다. 그게 뭐라고 떨리긴 또 왜 그리도 떨리던지~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지막까지 차분히 문제집을 훑어보고 시험을 봤다. 엑셀은 함수에서 하나가 속을 썩인 거 말고는 비교적 쉬워서 고급이 확실한데 파워포인트는 역시나 내겐 좀 어려워서 고생을 했다. 시험이 끝난 후 감독관에게 내가 본 것 좀 봐달라 했더니 중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럼 걍 자격증 따는 걸로 만족해야쥐~ㅎ' 그렇게 7월 말경 시험을 보고 합격자 발표가 나는 8월 중순까지 기다리는 동안 학원에서 전산회계랑 전산세무도 배우는 게 좋다고 하길래 근로복지공단에 득달같이 전화를 했다. 한 과목을 열심히 수료한 사람에게 한 과목 더 지원해 줄 수 있대서 후다닥 전산회계 1급 신청 완료! 어느덧 8월 19일. 엑셀, PPt 합격자 발표일이 됐다. 두둥 두둥 두둥~ 아들 녀석이 옆에서 드럼 스틱을 두드렸다. 두근거리는 가슴 살짝 부여잡고 살며시 접속해서 봤더니 두 가지 모두 고급이라는 선명한 글씨!! 드디어 나도 자격증의 소유자가 됐다는~ㅎ 지난번에 시험 봤던 엑셀, PPt 둘 다 고급 자격증을 따냈다. 기대도 안 했던 파워포인트도 고급~?! 마치 로또 당첨이라도 된 양 기분이 up up up!! 8월부터 또 전산회계를 배우러 다니면서 연이어서 전산세무 2급도 수강 신청을 했다. 그리고는 또 시험을 봤다. 컴퓨터 앞에 앉자마자 넘 떨리고 긴장해서 시간 안에 문제를 다 풀지도 못한 채 이론 문제 반은 아무거나 답을 찍어냈다ㅠ.ㅠ 실기 70, 이론 30점. 근데 실기 두세 개를 틀려서 10점 이상 날리고 15문제인 이론에서는 반도 못 풀어서 다 맞아야 겨우 합격~~~ㅠ 70점 이상 합격이라 69냐, 71이냐 완전 조마조마 가슴 졸이며 기다렸던 발표 날, 눈뜨자마자 사이트 들어가 합격자 발표를 클릭! 대~~~박!!! 전산회계 1급 합격! 그것도 80점씩이나~~~ㅋㅋㅋ 그렇게 전산회계 1급 자격증도 땄다. 전산회계는 같이 배웠던 7~8명 중 나까지 두 명만 합격했단다. 역시 18년 경리였던 경력은 무시 못 한다. 내가 잘 해서가 아니라 배웠던 거니까, 비록 컴퓨터 다루는 건 굼벵이 일지라도 이론은 좀 많이 바뀌었지만, 아우트라인은 어차피 같아서 실무 경력이 있는 내가 유리했던 것이다. 다른 이들은 회계 내용을 처음 배우니까 전혀 몰라서 어려웠던 거고~ 전산세무는 뜻밖에도 강사가 인천여상 10년 후배였다. (아니, 이런 우연이~?) 역시나 최고령자라 느려 터져서 갑갑한 나를 그래도 선배랍시고 쉬는 시간이면 내 자리로 와서 좀 전에 배운 걸 차근차근 되짚어 줬다. 참 고맙게도 말이다.(덕분에 살짝 시샘 어린 눈총을 받았고~) 이 후배 강사는 수강생 모두에게 회계 프로그램이 좀 쉽게 나온 ERP 시험도 보라고 권유를 했다. 컴퓨터로 보는 실기가 아닌 이론 시험이라고-4지 선다. 배우는 동안 내내 너무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해댔는데 생각보다 문제가 쉽게 나온 게 아닌가~~~? 근데 시험 다 보고 가 채점을 하는데 허걱~! 방심하고 문제를 끝까지 안 읽어서 세 문제나 틀려 버렸다. 5점, 6점, 8점짜리를~ 내가 미쳐 미쳐~~~ㅠ.ㅠ 1, 2점 차이로 불합격될 확률이 90% 이상이었다. 또 합격자 발표일. 70점 이상 합격인데 딱 70! 이다. 우짜면 좋노~~~~? ㅎ 실전에 강한 나! 부분 점수가 관건이었는데 진짜 턱걸이로 전산세무 2급 역시 합격! 그전에 본 ERP 회계, 인사 두 과목 역시 꽤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는~~~^^ 7월부터 지금까지 6개의 자격증에 도전해서 다 한 방에 따낸 대견한 이 몸! ㅋㅋ 학원에서 이렇게 공부하고 6개월 안에 6개의 자격증을 딴 사람은 처음이란다. 플래카드 라도 걸어야 할 것 같다고 농담을 해서 꼭! 걸라고 했더니 다들 깔깔 웃어댔다. 자격증을 따자마자 바로 이력서를 내기 시작했고 학원에서도 나이 제한을 안 둔 몇 군데에 취업 알선을 해줬다. 난 이제 바로 취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서 집 근처에 월급도 140 이상 되는 곳만 골라 이력서를 보냈다. 참 나~ 또 한 번 무식한 티를 팍팍 냈다는 걸 두 달이 다 돼서야 알았다. 7~80장의 이력서를 보내고 나서 면접 보러 오라고 한 곳이 딱 열 군데~ 그중 여자 사장이 내게 말했다. '메일로 온 이력서를 보고 제껴놨는데 전화를 해 면접 보러 온대서 다시 봤어요. 적극적인 모습이 좋아서요. 근데 사실 이제 막 자격증 딴 사람 일을 가르쳐 가면서 할 수는 없거든요.' 한다. 또 창피함에 얼굴이 홍당무가 됐고 어찌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도대체 난 여태껏 뭐 하고 살았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한 인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좌절의 고배를 마시고 무너지기 직전 바로 집 앞에 의류 생산 공장이 있었는데 면접 보러 갔더니 경리가 보름 후에 그만두기로 했다고 그때 출근을 하면 안 되겠냐고 해 알겠다고 했다. 이곳은 8시 출근에 7시 퇴근, 토요일도 격주로 3시까지 근무인데다 보수는 140에 3개월은 수습 기간으로 120 정말 최악의 조건이었으나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 출퇴근으로 뺏기는 시간과 운전으로 인한 피곤함을 겪지 않아도 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 없이 선택했다. 그 후 일주일 뒤 확인 전화가 오길래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겠다고 했고~ 드디어 첫 출근 날, 여유 있게 20분 전까지 갔더니 그때 그 경리가 있었고 남자 사장이(면접은 사모인 여자랑 보고 남편은 못 봤다) 어떻게 왔냐고 한다. 이 무슨 기가 막히고 코가 다 막히는 상황~? 사모가 헐레벌떡 오더니 '어머~ 내가 지난번에 전화하면서 얘기 안 했나요? 경리가 두 달 더 다닌대서 말한 것 같은데~' 한다. 속에서 '이런 미친 것들!' 이란 소리가 절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눌러 참고 '아니 들었으면 이 아침에 뭐 하러 여길 온대요~? 그때 혹 다른 곳 출근하는 거 아니냐며 다음 주에 보자고 하셨잖아요' 하니까 '아휴~ 이를 어째. 그 후 말이 나왔고 전화해서 좀 미룬다는 걸 깜빡했나 봐요. 미안해서 어쩌죠?' 하는 게 아닌가! 우와~ 진짜 어이가 없고 기도 안 차서 뚜껑이 열렸다. '아니, 장난하세요? 이게 뭔 황당한 시추에이션~?' 하니 그저 미안하단다. 계속 미만하다는데 더 이상 뭐라고 할 수도 없어 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더 이상 왈가왈부해봤자 나만 미친년 널뛰는 것 밖에 더 하겠냐 싶어서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오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다. 이런 개 같은~~~~후! 하도 기가 막히니까 더 이상의 욕도 안 나온다. (이 얘긴 그 자체가 또 한 보따리라 다음으로 미루고~) 여하튼 그날 난 집에 들어와 한참을 대성통곡을 했다. 누가 말했는지 참 명언이었다. 재수없는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고~ 이날 딱 내가 그랬으니 진짜 설상가상이라는 엎친 데 덮친 격 말이다. 그로부터 한 3일은 진짜 광녀가 따로 없었다. 머리에 꽃 하나 꽂고 나가면 내가 딱 그녀였으니~ㅋ 울다가 자다가 그러면서 이력서 내는 것 조차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흘째 되던 날 쬐끔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해서 다시 이력서를 보냈지만 이미 의지는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툭 보냈고 예전처럼 면접 보러 가겠단 전화도 안 했다. 그렇게 또 이틀이 지나고 반복되던 다음 날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이력서 내셨죠?' 한다. 이미 오전에 몇 군데 보냈고 오후가 막 시작된 좀 전에도 보냈기에 '어디신데요?' 했더니 '집 근처인데요' 하고. 후다닥 워크넷을 찾아보니 바로 옆 공장 지역~ '아, 네' 하니까 면접 보러 올 수 있느냔다. 가겠다고 말하곤 바로 준비해 나가면서 회사를 검색하니 지정폐기물(폐염산) 처리 업체로 운전할 줄 아는 사람 이라는 딱 한 가지 조건에 급여는 130, 주 5일 근무, 공휴일 휴무, 9시 출근 5시 퇴근이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혹하는 가장 좋은 조건은 출, 퇴근용 차량 지원해 주니까 자가용 없어도 된단다. (난 결혼 전부터 차가 있었고 후에도 아들 때문에 차가 필수라 스파크 경차가 있었다) 남편 차인 세단으로 찾아갔는데 좀 헤맸음에도 15분이 채 안 걸렸다. 이 웬 횡재? 김칫국부터 마시고~ㅎ 중년 남자가 정문 앞에 나와 있었는데 주차할 곳을 지정해 준다. 약간 좁은 듯했으나 후진 주차를 하고 내렸다. 사무실로 올라가 본격적으로 면접을 보는데 운전 경력과 내가 원한 급여(140)를 꼭 받아야 하는지, 컴퓨터를-인터넷 검색과 한글 타자 정도- 할 줄 아는지 묻길래 운전은 면허 따고 바로 했고 무사고 20년에, 급여는 130도 괜찮고, 컴퓨터는 자격증만 최근에 땄지 딱 그 정도 수준이다 솔직하게 얘기했더니 마지막으로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 띠용~~~ 나 요즘 왜 이래? '네???' 하고 놀라서 물으니까 '안 되나요?' 한다. '아뇨, 됩니다. 괜찮아요~' 얼른 대답했다. 그랬더니 인수인계할 직원에게 급여를 140으로 맞춰주고 내일부터 말일까지 인수인계해 주라고 하신다.(사장님이셨다) 아니, 세상에 이런 일이~! 결혼 전 18년 동안 다녔던 그 여러 곳 직장도 이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제 출근 가능하냐, 며칠 후에 출근해라' 다 이랬다. 우와~! 나 말년 복 있다고 했는데 진짜네~ㅎ 2015년 5월 12일, 나에겐 참으로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 없는 날짜이다. 그렇게 경력단절 15년 만에 5학년 3반인 내가 꿈의 직장을 얻어 출근을 하게 됐다. 다음 달부터 핸드폰도 법인폰으로 개통했고 매년 급여도 인상해 주시고 울 아들 고등학생이 돼 수업료가 나가니까 학자금도 지원해 주셨다. 당연히 내 차도 바로 팔아서 유류비며 경비도 절감됐고~ 게다가 요즘은 4시 반에 퇴근하고 있다. 우리 회사는 환경청과 밀접한 일이라 올바로 시스템을 철저하게 기록하고 환경 관련 교육과 공문에 따른 보고서만 잘 챙겨 신고하면 되기 때문에 나는 관공서와 같이 움직이면 된다. 기사분들은 공휴일에도 일이 있으면 하는데~ 가끔은 기사분들에게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아 있지만 각자의 할 일 이란 게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진짜 복 터졌다고 말한다. 맞는 말씀이라는~ㅎ 울 아들이 중학교 다닐 때 부모님 직장 체험하러 회사에 한 번 왔다 가더니 늘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출근해서 컴퓨터 켜서 예금 거래 확인하고 사무실 대충 정리한 후 커피 한 잔 마시고 인터넷 검색하면서 놀다가 오전 땡! 점심 먹고 올바로 체크 후에 핸드폰게임 하거나 밖에 나가 바람 쐬며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 때우고 오후 업무 땡! 이네요? 와~ 우리 엄마 진짜 말년 복 쩐다. 개부럽~~~' 한다. 이 말도 다 맞다. 사장님은 아래층 사무실에 계시고 나 혼자 2층 사무실에 있는데 배차 건 때문에 전화도 사장님 핸드폰에 착신해서 전화 받을 일도 전혀 없다. 거래처와 올바로 등록에 관련한 일로 통화하면 되고 회계사 사무실과만 소통하면 된다. 진짜 남편 말마따나 놀면서 돈 버는 아짐이다. 하지만 이 직장을 구하기 전에 5개월간 불러 주지도 않는 곳 일일이 찾아 다니며 구직 활동 하느라 마음고생 억수로 하면서 200여 곳 가까이 이력서를 보냈고 터무니없는 일도 당했다. 그 일들이 어쩌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게 한 매개체 역할을 한 건 아닐까 싶은 건 나만의 생각 이려나~? 사랑별곡
상호대차를 신청했던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고 도서관에 갔다. 데스크에서 회원증을 보여주려고 도서관 앱을 켰을 때 공고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책을 빌리러 다니는 도서관에서 단기 근로자를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마감일이 딱 그날 자정까지였다. 벌써 일주일 전에 올라온 공고문이었는데 앱을 열어보지 않았으니 그제야 본 것이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계속 머릿속에 떠올라서 되든 안 되든 이력서나 넣어보자고 마음먹었다. 요즘 나는 생각을 너무 길게 하지 말고 일단 저지르며 살기로 작정한 참이다. 하지 않고 흘려보낸 일들은 오래 후회로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문구점에 가서 이력서를 출력해서 집으로 왔다. 학교를 졸업한 년도도 가물가물해서 계산기를 두들겨가며 이력서를 작성했다. 지갑 안을 뒤져 증명사진을 붙이고, 다용도실의 박스에 처박아둔 자격증도 찾았다. 무려 1992년도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발행한 사서자격증이다. 삭지 않고 남아있어 고마울 지경이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몇 개의 이력을 더한 서류를 오후 10시 30분에 메일로 전송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그 공간에 매력을 느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점심을 먹고 나면 도서실(도서관이라고 차마 못하겠다 교실 두 개 터서 만든 공간이니)로 후다닥 뛰어가 책을 빌렸다. 우리 학교는 딱 점심시간에만 도서실을 개방했다. 평생 읽은 세계명작들은 그 시절에 다 읽은 것 같다. 폭풍의 언덕, 제인 에어, 좁은 문, 여자의 일생. 책 속의 내가 가보지 않은 세상과 풍경, 주인공들의 서사에 설레고 종종 잠을 설쳤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이루고 싶어 대학 졸업 후 사서교육원을 다시 다녔고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몇 번 계약직으로 근무했을 뿐 취업은 쉽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그래도 도서관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어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늘 회원가입을 하고 이용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꾸준히 도서관을 다녔고, 공공도서관 자원봉사나 학교의 명예사서로도 활동했다.  1차 서류심사를 합격했다며 면접일정을 알려주는 연락이 왔다. 전업주부로 오래 지내다 어딘가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경험도 오랜만이라 새로웠는데 1차 합격이라니 기분이 좋았다. 초단기 초단시간 근무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지원했다고 해서 놀랍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 서류심사 합격했대!” 문자를 받자마자 딸에게 자랑을 했더니 대단하단다. 딸에게 칭찬받으니 더 기뻤다. 드라마에서나 봤던 대기실과 면접장 분위기. 막상 면접관 앞에 앉으니 어찌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면접관은 편하게 하라고 했지만, 몹시도 불편한 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 그 순간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참 많이 떨고, 질문에 대해 조리 있는 답변도 하지 못했고, 자신감도 없어 보였다.  “본인의 컴퓨터 활용능력은 5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면접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나의 답변은 “저는… 4점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함께 면접을 본 파트너(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단다)의 답변은 “저는 4.5점이요.” (졌다) 며칠 뒤 문자가 왔다. ‘먼저 저희 도서관 단시간 근로자 채용에 임하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불합격이라는 말씀. 나의 도서관에서 일해보기 도전은 아쉽지만 불합격으로 끝났다. 그렇지만, 나이이거나 부족한 경력을 이유로  머뭇거리지 않고 도전을 해봤다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고 기다리던 일들이 조금 설레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시도하는 내가 좋다. 앞으로도 나는 실패나 불합격을 미리 겁내지 않고 해보고 싶은 것은 일단 한번 해볼 것이다.  새로운 경험들이 쌓이는 것 같아 재미도 있다.  도서관에서 ‘일’ 하기는 실패했지만. 도서관에서 ‘책’ 읽기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나 떨어뜨렸다고 결코 삐치지 않아요) 상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대출권수가 천 권이 넘었고, 이천 권을 욕심내 보려고 한다. 도서관에 가면 아직 내가 미처 발견 못한 보물 같은 문장들이 여전히 많다. 책을 고르다 가끔 잘못 꽂힌 책을 발견하면 그걸 제자리를 찾아 꽂는데 그게 또 쾌감이 있다. 함께 사서교육을 받은 친구에게 그 얘길 했더니 자기도 그런단다.  우리는 배운 걸 써 먹는 여자들이랍니다. 앞으로도 나는 뭐든 기회가 생기면 일단 해볼 것이고, 실패한 미래의 모습을 미리 그리지 않을 작정이다. 그래서  불합격했습니다만…나는 괜찮아요. 바그다드카페
우리집 큰공주는 고구마 튀김을 좋아해요 어릴 때 휴게소에 들리면 꼭 하나씩 사먹곤 하던 추억의 간식이죠 다 큰 아가씨가 된 지금도 휴게소에 가면 꼭 먹고가자 하는... 고구마튀김이 먹고 싶어 길을 따라 나설때도 있을만큼 좋아하죠 아시죠? 우리 어릴 땐 시내노점상에서 다라이에 산더미같이 쌓아두고 종이봉다리에 담아 팔던 그 고구마튀김 요즘은 시내서 보기가 힘들고 휴게소에서 파는 건 인도네시아산이라 튀긴지 오래되어 고소하지도 않고 비쥬얼도 그닥 좋지않아 언제부턴가 제가 직접 튀겨주기 시작했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고구마란 놈은 써는게 쉽지는 않죠 그러나 저는 일상이 수행(?) 인지라 고구마를 가늘게 채 썰면서도 도(?) 닦는 마음으로 참아야 하느니라 ...다 내 탓이다...마누라도 옛날엔 천사였다... 마음을 다듬으며 정성을 다하지만 아직 내공이 짧아 마음같지는 않아요 처음엔 쪼잔 소심의 대명사 답게 이렇게 겨우 라면 한그릇 끓이는 작은 냄비에 기름을 조금부어 튀겼었는데 냄비가 작다보니 사방팔방 기름이 튀어 마누라가 쌩zr을 해서 큰 맘 먹고 통닭 한마리 통째로 튀길 수 있는 전기튀김기를 샀어요 바닥에는 달력종이를 찢어서 깔고 튀어봤자 종이위니까 득의양양하게 " 이제 기름 안튀니까 됐제? " 했는데 돌아온 답이 뭔지 아세요? #아이고이화상아그기름다우얄래? 였습니다 그랬습니다 튀김솥이 크다보니 기름을 두 통이나 부었어요 앞으로 일주일쯤은 돈가스 튀김만두 등 튀기는 간식만 해얄까봐요 초고급 인력이 한시간동안 고구마 채썰고 튀긴 결과물이 요만큼이랍니다 파는 곳만 있다면 사 먹는것이 훨씬 경제적인데 다혜는 아빠가 만든게 제일 맛있다고 하니 마누라한테 욕 얻어 먹어도 계속 해야할까봅니다 욕 얻어먹고 욱해 반항심에 꼬푸 하나 질렀습니다 맥주도 전용잔에 마시니 더 맛있는 것 같아 꼬냑 전용잔을 구입했어요 역시 우리 마누라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 그거 왠거고? " 해서 홈땡땡에서 휴지 사니까 낑가주더라 했습니다 " 우째 얄브리한기 딱봐도 싸구려 같네 " 하고 넘어가주니 다행이죠 옛날에 함께 백화점 가서 크리스탈 양주잔 한 개 골랐다가 맞아 죽을 뻔 했는데 이건 그것보다 더 비싼건데 바보같이... 사람들이 이 잔에 술을 마시면 향기가 죽여준다고 했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잔이 얼마나 큰지 내 얼굴이 쑥 다 들어갈것만 같아요 과연 빈잔끼리 부딪히니 맑은 종소리가 나는게 술을 채우면 어떤 음악이 될지도 모르겠어요 오늘밤 모두가 잠들고 나면 찬란한 음악속에 빠져 봐야겠어요 길위에선바람
저는 현재 33살 14개월 남자 아이와 이제 5주된 태아를 품고 있는 엄마입니다. 고등학교때부터 째내는 것을 좋아해서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 오며 대학까지 나에게 필요한 것들도 사고 핸드폰 요금과 용돈도 스스로 해결 했습니다. 주로 주중에는 식당이나 레스토랑 홀써빙을 했고 주말에는 대형마트 캐셔를 하며 조금씩 적금도 들고 사고 싶은 것들도 사고 나름 행복하게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집이 풍족 한 것도 아니였고 그렇게 부족 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한편으로 생각 해 보면 엄마의 짠내 나는 삶이 싫어서... 그래서 내가 벌어서 당당히 쓰자 라는 마음으로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사회에 발을 내 딛었던 것 같습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술도 마시고 클럽도 다니며 제 나름대로 즐기면서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유아교육과를 나와 B+ 정도의 성적으로 졸업도 순탄하게 하여 유치원 정교사로 취직을 하게 됩니다. 그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했다면 못 논것에 후회가 있을 것임에 네버 잘 한 것 같네요. 학생인 나는 오직 나만을 위해서 나름 열심히 살아가며 제 인생을 즐겼습니디. 부모님은 내가 언제 들어오나 언제나 전전긍긍... 제가 들어 올 때까지 거실 불은 항상 켜있었죠. 유치원 교사로서 나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지도 하려고 노력 했습니다. 이때도 난 나 하나만을 보며 부모님의 항상 걱정어린 시선을 무시하며 7년 이라는 사간을 보냈네요. 유치원 교사로 재직중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지방에서 경기도로 와서 바로 다음날 부터 유아 학원 교사로 이직을 했습니다. 이때도 바로 이직을 해서 정신없이 신혼을 보냈습니다. 남편과 서로 서로 맞춰가며 유치원 교사 보다는 비교적 여유롭게 나만을 위한 삶을 보냈습니다. 다음해 아이가 생기고 조산 징조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대학때부터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삶에서 아이의 삶으로 전환되는... 엄마의 길이 시작 됩니다. 아이를 위해 나보다 더 깨끗하게... 더 소중하게 ...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 까지 이제는 내가 아닌 모두 아이를 위한 삶이네요. 사랑의 헌신이 이제 시작된 저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한 어른이 되어 우리의 삶을 잘 살았듯이 젊었을 때의 우리 엄마처럼 ...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잘 해낼 수 있겠죠? 그렇게 육아와의 전쟁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감사함으로 이겨내 보려고 합니다. 엄마는 결혼하면 다 한다고 청소, 빨래, 음식등 집안일은 저에게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한번씩 뒤집어져 있는 제 방을 보고 엄마의 잔소리 폭탄으로 투덜대며 제 방 청소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의 엄마의 마음을... 엄마가 된 나는 이제야 알게 되네요 ... 엄마의 마음을 우리 아기에게 전달 될 그날까지 엄마로서 요동치는 제 마음을 잡아 봅니다. 지금까지 퇴근 못 하는 남편 ... 힘들지만... 이겨내야겠죠? 모든 독박 육아 중이신 우리 엄마들 힘내세요~ 우리 아이의 삶을 위하여 ~~ 트리뿜뿜맘
11월 엄마생신 12월 아빠생신 그래서 11월 둘째주 시간을 내서 친정에 왔습니다. 남동생을 일로 바빠 타이밍이 안맞아 못보고 엄마는 아빠 세끼, 저희들 세끼 밥차리느라 거의 보지 못하고 아빠는 바둑하시느라 못보고.. 왜 3시간을 걸려 왔을까 싶다가도 친정간다고하면 설레는 마음은 어쩔수없나봅니다. 오늘은 조금 슬픕니다. 매번 친정올때마다 그랬지만.. 오늘은 더 그렇습니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아빠가 계속 술을 먹고 엄마를 힘들게했다는말에 화가나고. 못먹고 죽은 귀신이 집에있나 그렇게 밥밥밥하는 엄마도 답답합니다. 아빠한테 뭐라고 하고싶은데 그럼 또 우리가 가면 엄마한테 뭐라할껄 알기에 꾹참습니다. 사실 얘길해도 들으실 분도 아니고. 예쁜 케이크와 꽃다발을 엄마를 위해 사와도 다시 가져가라는 말에 힘이 풀립니다. 같이 바람쐬러 근처라도 가자하면 춥다고 뭐하러나가냐고 역정부터 내는 엄마가 속상합니다 그리곤 엄마는 같이 나갈껄 후회하시고 저는 좀더 설득할껄 후회하고..매번 반복입니다. 저번에 시어머님의 상황도 그렇고 엄마의 상황도 그렇고 참 우리네 엄마들은 왜 그렇게 힘들어야하며 우리네 아빠들은 왜 그렇게 본인 아내 소중한지 모르실까 너무 안타깝습니다 술이 문제인지..이 사회가 문제인지 본인들의 문제인지. 요즘 82년 김지영 영화가 인기라고합니다 너무 슬플까 보기가 꺼려집니다. 참 인생이라는게 비슷하기도 한가봅니다 저는 이번에도 엄마한테 화를내곤 이내 또 눈물을 삼킵니다. 그래도 손녀보시고 이뻐하고 즐거워하시는게 다행입니다.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해결할수는 없겠지요 평생 저도 안고가야할 짐인가봅니다. 환영받지 못하는 꽃과 케잌은 그래도 두고가야겠습니다. 초롱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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