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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마음 깊숙이 담아둔 마음을 다 전하지 못해 글로써 그 고마움을 전하고자 합니다. 작년 8월 갑작스럽게 수술로 그리고 이석증으로 힘들어하고 있을때였습니다. 저희집으로 복숭아 한상자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인생락서에서 만난 한분이 저에게 먹고 힘내라며 보낸 것이였지요? 얼굴도 뵌 적도 없고 인생 락서를 통해 쪽지로 댓글로 친분이 오고 가는 중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나를 생각해주시구나 하는 마음에 무척 아프면서도 행복했답니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혈연관계도 동생이 아파 수술했다 하는데도 와보지도 않고 문자만 "괜찮니 ".라고 보내는 세상인데~ 저 사실 많이 울었습니다. 복숭아도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남편이 아이들도 안 주고 오직 저만 주더군요? 누군가가 나를 위해 먹고 힘내라고 보내준 그 마음이 내 마음에 가득 차서 울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카톡 문자로 몸은 좀 어때요? 괜찮아요?라고 이렇게 매일 물어봐 주는 그런 분이 있을까요? 피를 나눈 가족들도 자기 살기 바빠서 일주일에 한 번이나 통화를 할까 말까 하는 세상인데 아침마다 뭘 먹었냐고 몸은 더 좋아졌냐고 물어봐 주는 그분이 계셔서 지금까지 제가 인생 락서에 머물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이 안 계셨더라면 진즉 인생 락서에서 탈퇴했을 수도 있었겠지요~^^ 친동생처럼 살뜰히도 챙겨주시고 감사합니다. 올 11월 딸이 수능을 보았는데 찹쌀떡까지 챙겨 보내주셨더군요? 찹쌀떡 때문이지 수능시험도 잘 치른 것 같아요?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좋은 게 있으면 보내주고 싶는 마음이 드는 건 그분을 늘 제 맘속에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며칠 전 예쁜 꽃 접시를 선물 받았는데 보는 순간 그분이 생각났습니다. 꽃 접시라서 그분이 좋아하실 거라는 나의 생각이지만요? 오늘 나의 맘에 담아두었던 고마움을 이 글로 다 표현 못 하지만 그분이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사랑 주신 만큼 다 하지 못한 맘 이해해주시고 2020년에도 인생락서에서 쭉 좋은 인연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해주실꺼죠~^^ 사진이미지:다음검색 아이미소
아주 오래전에 인간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백혈병에 걸려서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독한 항암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져서 듬성듬성한 행색으로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도저히 안되겠는지 어린 자녀들을 데릴러 가야 한다며 울고불고 밖으러 나가려던 한 엄마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기어서 살아도 좋으니 생명연장만 가능하다면 어떤식으로든 살아서 어린 아이들에게 뭐 라도 해 줄 수 있지 않겠냐며 울먹이며 인터뷰하던 그 젊고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엄마의 모습을 말이다. 방영되던 장면이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던 어린시절의 나이였는데도 그 장면을 보고 폭풍오열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든 살아서 아이들에게 그늘막이 되어 주고 싶다던 처절한 엄마의 절규가 아마도 전국에 방송되던 시청자들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을 것이다. 그 엄마의 생업이 땅콩빵장사 였는데 아픈 몸을 이끌고 자기도 없이 살면서 오는 손님들에게 땅콩빵을 있는데로 막 종이봉투에 막 넣어주던 모습을.. 모든 손님의 가정사를 훤히 꿰 뚫어보고 있는걸로 보아서 아마도 한 두 해를 장사한 분이 아니고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신 모양인데 모든 단골손님들의 취향이나 가족사까지 알고 있을 정도라면 얼마나 친분관계가 돈독 했을지 짐작이 갔다.일하는 와중에 공중전화로 집에다 전화를 걸어 어린 자녀들의 걱정으로 장사도 미쳐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전전긍긍 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슬프고 가슴이 아프던지 너무 울어서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자녀들은 남매였던걸로 기억이 나는데 연신 엄마는 누나에게 동생을 잘 챙기라며 신신당부를 한다. 없는 살림에 그래도 어린 자녀들을 위해서 반찬을 신경써서 밥을 차려놓고 장사를 하러 나오면 차려놓은 밥을 먹었는지 걱정이 되어서 매 10분마다 공중전화로 집에다 전화를 걸어서 애들이 들어왔는지 밥은 먹었는지 자녀들이 뭐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앞으로 같이 있을 시간이 많지 않을 걸 알기 때문에 자꾸만 어린 자녀들의 안부가 궁금해 지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린 남매가 장사하는 엄마가 보고 싶어서 두 남매가 손을 꼬옥 잡고 엄마를 보러 가는 모습이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나오는 동화의 한 장면 같았다. 힘겹게 마주한 아이들과 엄마는 장사는 뒷전이고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연신 끌어안으며 행복해 하는 모습들...하던 장사를 마지 못해서 접고 같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며 즐거워 하는 모습들.. 집에 도착하자말자 남매의 누나는 엄마에게 밖에서 추운데 고생했으니 엄마는 누워서 쉬라고 하며 혼자 부엌에 나가서 라면을 끓이고 어린 남동생을 씻기며 엄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들이 담겼다.함께 다 불어터진 라면을 먹으면서 엄마는 그새 또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 누나고 따라서 울고 그러면 혼자 남은 남동생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표정으로 대성통곡을 한다. 엄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로서 자식을 낳았는데 책임도 다 하지 못한 엄마가 정녕 엄마의 자격이 되는건지 부모로서 자식에게 어떻게 살아라고 감히 말 할 수 있는건지 의심하고 자학하고 자괴감을 느끼니 세상에서 한 없이 불쌍하고 화가 나고 참을 수 없는 분통과 불만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질병을 나에게 준 하늘을 원망하며 불쌍한 어린 자녀들을 바라보면서 어쩌질 못해 힘겨워 하는 엄마의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기가 힘이 들었다. 결론은 인생은 해피엔딩이면 참 좋겠지만 결국엔 엄마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아이들만 덜렁 남겨져 슬퍼하는 모습으로 프로그램이 끝이 난다.영화처럼 각색을 해서라도 행복한 결말로 끝을 내고 싶지만 현실이 이렇게 비정하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의 사연을 프로그램화 시켜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감동과 눈물샘을 자극한 프로그램이다. 이들 어린남매는 엄마의 친언니인 큰이모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결국엔 친정엄마인 외할머니댁으로 가게 되었다. 차라리 그 때 큰이모에게 맡겨지는게 더 낫은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외할머니가 알코올중독자시다. 예전에 개인 양조장을 운영 하셨는데 거대 양조장 업체가 옆에 떡 하니 생기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망하시고 실의에 빠지신 뒤 식사는 일체 안하시고 담궈둔 그 많은 술로 세월을 보내시다가 중독자의 길로 빠지셨다. 하루에도 술을 드시지 않으면 금단현상 때문에 몸을 떨거나 환각증세를 보이신다. 신기한건 술만 드시면 지극히 정신이 바르시다보니 자식도 알아보고 기본적인 이성적인 판단을 하셨단다. 작은 딸이 죽고나서 불쌍한 어린남매를 무조건 돌봐야 한단 마음으로 데리고 오셨는데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안하시니 생활비라던지 애들이 다녀야 할 학비마련에 노심초사 하셨을 것이다. 외할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나마 물려받은 작은 밭뙈기를 팔아서 술을 사 잡수시고 버티셨다고 하는데 갑자기 손자와 손녀들의 뒷바라지를 하시게 되셨는데 하루에도 여러 번 술힘으로 남의 밭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산나물을 뜯어다 장터에서 팔면서 뒷바라지를 하셨단다. 그도 얼마간의 조모의 노력이었고 결국엔 사고를 치시고 말았다. 한 날은 과음을 하신건지 부뚜막에서 불을 지피시다가 조셨는데 앞으로 넘어지면서 머리가 부뚜막으로 들어간지도 모르고 기절을 하신 모양이다. 다행히 손녀가 부엌으로 들어와 보지 않았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다. 불을 붙어서 머리카락은 홀라당 다 타고 두피마저 완벽히 익어버렸는데 피하 지방층까지 깊이 손상되어서 피부신경과 혈관이 모두 파괴되어 통증마저 느끼지 못하는 중증3도 화상을 입으셨단다. 말 그대로 피부이식까지 해야 하는 큰 상처인지라 오히려 손자와 손녀를 돌보기는 커녕 도리어 병수발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이 소식을 들은 큰이모는 한 걸을에 시골로 내려오셨는데 시골에서는 치료를 할 수 없는 큰 화상이라서 대학병원을 가야하기에 할머니와 어린 남매와 같이 큰이모가 사는 도시로 올라왔다. 하루 아침에 알코올중독과 중화상을 입은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고 어린 조카들고 돌보아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 큰이모는 얼마나 상심이 크셨을지 상상이 된다. 남편의 내조도 해야하고 자녀들도 돌보아야 하고 살림도 살아야 하고 자기일도 해야하고 어린 조카와 친정엄마를 같이 돌보아야 하는 일생최대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그래도 불쌍한 어린 조카들과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는지라 힘겹게 버텨내셨다고 한다. 다른 건 그나마 참을 수 있다고 하는데 한 번씩 병원에서 할머니가 사라지는 통에 할머니를 찾는게 제일 힘이 들었단다. 술을 하루라도 드시지 않으면 환각증세와 금단현상으로 인해서 버텨내질 못하시니 술을 찾기 위해서 병원을 돌아다니거나 밖으로 나가서 술을 찾는데 혈안이 되는 것이다. 환자복을 입고 머리에선 피고름을 철철 흘리시면서 술을 찾기 위해서 마트를 헤메고 다니셨다고 하는데 보는이가 말하길 실로 너무나 끔찍해서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돈이 없으니 당연히 술이 있어도 살 수는 없고 술병을 들자말자 바로 병나발로 술을 들이키니 마트 점원들이 얼마나 경악을 하셨을래나? 경찰에 신고를 해서 경찰이 할머니를 모시고 환자복을 보고 병원으로 모시고 오면 큰이모는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할머니를 마중 나가는데 병원 바닥에서 대성통곡을 하신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셨단다.하도 할머니가 말썽을 부리시니 결국 병원에서도 쫒겨 났는데 이 병원 저 병원 모두 퇴짜를 맞다보니 결국엔 집에서 할머니를 돌보셨다.거즈와 소독제와 항생제를 받아와서 직접 치료를 하셨는데 매일같이 술을 드시다보니 상처가 아무질 않는단다. 술을 드시게 되면 열이 두피로 올라오기 때문에 상처가 전혀 치료가 되질 않아서 오히려 더 악화되는 통에 정말로 힘드셨다고 한다. 술을 안주면 일체 사람들을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심하실 땐 뇌전증 환자처럼 거품을 무시는 통에 안 드릴 수도 없다보니 매일 고정량의 최소량만 주면서 돌보셨다. 잠깐 사이에 문을 열고 술을 마음대로 드시기 위해서 밖으로 사라져 버리시니 문을 잠구고 다니셨는데 문이 안 열리니 하도 문을 두드려서 옆집에서 민원도 들어오고 혹시 납치나 노인학대 아니냐면서 경찰들에게 오해도 받고 그러셨단다. 그렇게 고통의 나날속에서 힘겹게 6년을 버텨내고 계셨다는데 어느날 갑자기 술도 드리지도 않았는데 집에 와보니 큰이모댁으로 오실 때 입으셨던 한복을 말끔하고 차려 입으시고 화장을 하신 채 다소곳하게 앉아 계셨단다. 오로지 술만 드셨기 때문에 영양공급이 되지 않다보니 기력도 없으시고 여전히 6년동안 두피화상은 낫지도 않았으니 거즈와 붕대를 감은 채 모든 가족들을 알아보시고 안부도 물으시며 웃으시며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그렇게 식사를 하신 뒤에 다음 날 아침에 곱게 무지개 강을 건너셨다고 한다. 치매를 앓으시는 어르신들이 마지막에 그렇게 온정신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떠나신다고 하더니만 정말로 그렇게 하셨다. 참 보고싶은 막내이모와 외할머니를 그렇게 떠나보낸 나의 가족들에 관한 사연이다. 어찌보면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애써 너무 진솔하게 쓸 필요도 없는 사연이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추억을 그리며 써 본다.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고 계실 천사같은 작은이모와 너무나 보고 싶은 외할머니에게 새해인사를 전하고 싶다. 계신 곳에서는 절대 아프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남은 가족들이 항상 두 분을 많이 사랑하고 잊지 않고 그리워 하고 있다는 걸 알아 주십시오. 영원히 사랑합니다^^ 은갱아슈슈
제게는 아들과 딸 둘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들 대로, 막내딸 역시 제 앞가림을 하는 터에, 늘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둘의 중간인 큰딸도 스스로 뭐든지 잘 합니다. 믿음직해서 다 잘 할 거라 믿고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요. 여고 때 태권도 4단을 땄으니 ‘감히 누가 건드려’ 어디 내놔도 든든했고, 딱 부러진 성격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제 일을 잘해, 란이는 내 마음의 큰 기둥이었지요. 타 지에서 대학을 다닐 때도 란이는 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줬습니다. 막내가 함께 같은 대학에 다니게 되자 동생의 일상을 거뒀습니다. 아르바이트에, 동생 보호자까지. 대학 4년 올 장학금을 받아가며 열정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어느 때, 란이 장학금을 받았다고 하는데 ‘응. 잘했다.’ 한마디 하고 그냥 지나갔는데, 어느 날 길에서 란이친구 엄마를 만났어요. 란이 엄마 참 좋겠어요. 네. 무슨 말씀이시지요? 에이그, 란이 장학금 받는다면서요. 울 애가 장학금 받으면 난 업고 다닙니다. 란이한테 칭찬 좀 해 주지 ‘응 잘했다’ 했다면서요? 그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란이에게 전화했습니다. 란이 고생 많이 했다. 야~ 얼마나 자랑스럽냐~ 하자, 딸이 엄마 왜 그래요. 아니~ 울 란이 넘 예쁘고 자랑스러워서~. 실은 란이에게 처음으로 미안함이 태산만 해지고 먹먹함으로 눈물이 밀려왔습니다. 언제나 제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아이, 늘 직장에서도 열정을 불태우던 당당한 아이, 그러던 애가 어느 날 할 말이 있다며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저를 부릅니다. 엄마 나 할 말 있는데요. 그래 해봐~. 저는 그냥 편안하게 내던지듯 대꾸했습니다. 내가 암이라고 하네요. 뭐라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해? ○ 모 병원에서 검사 다 받았는데 확실하다고 했어요. 가망성도 없고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치듯 기운이 쭈우욱 빠졌습니다. 하늘도 무심하지 어떻게 나이든 나도 아니고 아직 젊디젊은 딸에게 몹 쓸 병이라니. 소리도 못 내고 혼자서 밤새 얼마나 울었습니다. 딸은 나를 안심시키려고 엄마 보험도 들어가 있으니까 염려 마세요. 보험이 문제니. 다른 병원에 가서 검사는 받았어? 아니요 아직 다른 병원은 가지 않았어요. 그럼 서울에 있는 큰 대학병원 먼저 가 보자. 그 길로 ○서울병원에 예약을 하고, 진료를 받는 한 달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갖가지 검사를 받고. 진료 예약한 날, 진료실을 향해 갑니다. 제발 아무 일 없게 하여 주소서. 딸에게 아무 일 없게 해 주세요. 제가 대신 아플 수 있게 해 주세요. 신이란 신은 다 불러내 기도를 올렸습니다. 진료실 문이 열리며 딸의 이름을 부르는데 저승사자가 부르는 것 같아 속이 탔습니다. 드디어, 교수님의 한마디, 어머니 걱정마세요. 따님 암 아닙니다. 대신 한 달에 한 번 6개월 동안 검사를 받아 보시게요. 확실하게 암은 아닙니다. 나주로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란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꿋꿋한 척했지만 속으로 무서웠다며 엄마가 있어 다행이라고 그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왜 란이라고 무섭지 않았겠어요? 잠깐의 퉁명스러움은 죽음에 대한 저항이자 죽음을 준비하는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란이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챙기며, 오늘을 삽니다. 암 오진은 제게 큰 반성과 깨달음을 준 것으로 상쇄해야 할까 봐요. 만약에 이런 사건이 없었다면 란에게 ‘사랑해~’ 말 한마디 못한, 표현하지 않는 나쁜 엄마로 남았겠지요. 우습게도 그러나 현실은 지금 매일매일 딸에게 잔소리하는 엄마로 변해 있습니다. 사랑하는 란아, 그동안 너에게 표현하지 못해 미안해. 든든한 큰딸 란아, 엄마는 진심으로 너를 많이 사랑해~ 터푸우먼
‘366 Self Motivating Essays for Students & Adults’, 자기계발, 자기발전에 도움이 되는 책으로 1년 366일 매일 매일 先賢 선현들이나 유명인사의 어구를 주제로 하여 쓴 수필집이다. 예를 들면 1월 1일은 'Know thyself', ‘너 자신을 알라’ 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警句이고 2월 25일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인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아 냈다. 영어 공부도 할 겸 해서 한 시절 내 손을 떠나지 않았던 책 중 한 권이다. 이십 여년 전, 이 책을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작은 아들이 캐나다로 유학을 떠날 때 손에 쥐어주었다. 이제 홀로서기 할 터이니, 네 곁에서 많은 도움을 줄 책이라 믿고 틈틈이 읽으라는 당부도 함께였다. 어찌 어찌 인연이 닿은 인생락서에 글을 올린지 1년을 넘겼다. 그간의 所懷 소회와 自評 자평을 남기고 싶다. 우선은 초지일관, 꾸준히 글을 썼다는 것에 좋은 점수를 매겨본다.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왕성한 필력을 보여주시는 글 벗님들과 비교하면 부끄러울 뿐이고, 새벽이면 어김없이 카톡! 하는 소리와 함께 날라오는 친구의 글을 읽으면 그의 노익장이 부럽다. 아직까지는 열정이 부족한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마음 내킬 때만 쓸 수 있다. 글을 매끄럽게 또 재미있게 풀어가는 재주도 많이 부족함을 자인해야겠다. 매달 주어지는 객관적인 평가가 입선, 장려 수준에서 맴돌기 때문이다. 오직 내 스타일대로 목적에 충실하여 쓸 뿐이라고 위로하며 자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나아진 점이 있다면 써놓은 글에 대한 꾸준한 첨삭이다. 예전에는 한 번 써 놓은 글은 다시 쳐다보기가 싫었는데 이제는 읽고 또 읽어 본다. 맞춤법은 맞는지, 오타는 없는지 사실관계에 부합한 글인지 내가 전하고져 하는 메시지는 충분히 담아냈는지 등등이다. 공감의 하트도 부족하고 댓글과 구독수도 많지 않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글을 쓰는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아우들 그리고 조카들이 훗날 나와 같이했던 시간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면서 나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얻은 지혜와 어려움에 닥쳐 이겨낼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아름다운 시와 함께 하는 일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있다. ‘366 Self Motivating Essays’의 형식이나 목차를 참조하여, 평생 딱 한 권의 책에 366 개의 글만 남길 생각이다. 지난 1년 180여 개의 글을 썼으니 앞으로 최소한 1년은 더 걸릴 작업이다. 이후에는 수정에 보정을 계속하면서 내 평생의 모든 것을 精緻 정치하게 담아 볼 계획이다. 끝없는 작업일 것만 같아서 도서 출간은 포기했다. 한번 인쇄되면 다시는 손댈 수 없는 책과는 달리 손쉽게 수정이 가능한 ‘디지털 북’으로 만족해야겠다. 미래 도서 환경에 부합될 듯 싶기도 하고 용돈 절약은 물론, 물자 절약이 환경보호와 맥을 같이 할 것이라는 주제넘은(?)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글쓰기의 효험은 내면 깊숙이 새겨졌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느낌일 것이다. 무언지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어져 후련한 감정을 맛볼 수 있었다. 자기 자신과의 의미있는 화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 같기도 하다. 허겁지겁 쫓기며 사느라 되돌이켜 볼 시간조차 없었기에 글을 쓰면서 내가 누구인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다. 그렇다고 자서전이라고 해서 살아온 모든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는 없다. 설움과 고통을 안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 일들도 있는 것이다.  내가 가장 부러워 하는 사람이 제 하고픈 말 다하며, 산다는 사람이다. 나 살겠다고 남의 가슴에 대못 박힐 말, 나는 못 하겠다. 글로서도 그 누군가에게 상처 줄 말은 남기고 싶지 않다. 묵히고 삭혀서 말갛게 정화시켜 스스로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할 일이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전문이다. 시인도 나와 같은 性情일 것만 같아 무척이나 반가웠던 기억 속의 詩 이다.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 나태주       사랑하는 마음  내게 있어도  사랑한다는 말  차마 건네지 못하고 삽니다  사랑한다는 그 말 끝까지  감당할 수 없기 때문  모진 마음  내게 있어도  모진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나도 모진 말 남들한테 들으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기 때문  외롭고 슬픈 마음  내게 있어도  외롭고 슬프다는 말  차마 하지 못하고 삽니다  외롭고 슬픈 말 남들한테 들으면  나도 덩달아 외롭고 슬퍼지기 때문  사랑하는 마음을 아끼며  삽니다  모진 마음을 달래며  삽니다  될수록 외롭고 슬픈 마음을  숨기며 삽니다. 거유당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에 새로 올라온 기사부터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아침 확인한 확진자 증가 기사도 착잡합니다 2009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하던 시기 우리집에도 확진환자가 둘이나 있었어요 어린이집 다니는 아들과 초등학교 다니는 딸이 연달아 확진 판정 받고 간호하느라 애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확진환자를 검색해 보니 70만명이상... 오늘 하루 200명 이상 확진자가 늘어났으니, 이제 그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겠지요 정부도 의학계도 이미 지역사회 전파를 인정했으니까요 내일 아침 뉴스를 보기가 어쩐지 겁이 납니다 그동안 가볍게 생각하고 점심은 식당에 나가 사먹고 영화도 보고 했는데 움츠려드는 게 사실입니다 늦기 전, 소독제와 마스크를 더 사야하나 고민하다 소독제를 주문했습니다 이미 주문폭증으로 배송지연이 될 거라네요 27일 이후 순차적으로 배송이라니 그게 언제일런지.. 이러다 주문취소를 당하고 은근슬쩍 가격을 올리더라는 말도 들었는데 느긋하게 있다가 여간 낭패가 아닙니다 만들어 써볼까 했는데 이미 동네 약국마다 에탄올은 다 동났다네요 아침부터 마음이 심난합니다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에서는 아직 개학연기라는 문자는 없는데, 일주일 후 학교에 가도 걱정이구요 개인위생에 더 신경쓰는 수밖에요 다니던 문화센터 강좌는 회원들끼리 인사할 틈도 없이 문자로 종강을 해버렸고 봄학기 개강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한 달에 3, 4일 나가던 알바도 다 취소되었죠 자영업을 하는 어느 사람은 코로나 보다 월세가 더 무섭다고도 했는데... 이렇게 난데없이 어떤 일이 벌어질 때마다 평범한 일상의 일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게 되지요 뭔가를 사거나 배우러 다니는 일 풍경을 보러 어딘가로 가는 일 다정한 누군가를 만나 밥을 먹는 일들요 지루하고 반복적인 어제도 그제도 똑같은 심심한 일들이요 뉴스를 보다 TV를 껐어요 그리고 옥상에 올라가 미루던 화분정리를 시작했어요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해진 흙을 뒤집고, 잡초를 뽑았어요 구르다 구석에 모인 마른 잎들도 빗자루로 쓸어 담아 버렸어요 흙냄새도 흙을 만지는 감촉도 좋아요 평생 농사를 짓던 할머니를 보고 자라서인지, 아니면 어린 시절 늘 마당이 있고 그 마당에 뭔가를 심고 키우던 집에서 커서인지 난 흙이 좋아요 흙을 만질 때 부산스럽던 마음이 고요해지죠 흙물이 들고 손톱아래가 까맣게 된 내 손이 꽤 마음에 들어요 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이 평생 그러했죠 농부였던 그들의 삶을 존경해요 마른 잎들 사이에 새순은 돋고 있었죠 이 아이는 달맞이꽃입니다 몇번쯤 눈을 맞고 비바람을 맞고, 그러다가 어느날 노란 꽃을 피울 거예요 이름처럼 둥근 달을 닮은 꽃을요 몇년 전, 엄마네 옥상에서 한 포기 얻어와서 심었는데, 저 혼자 피고 지고 피고 지고... 꽃씨가 떨어져 다시 새로운 꽃이 피고... 신기하게도 잎을 다 떨군 채 월동 중인 나무수국 화분엔 옆 화분에서 날아온 상추씨가 싹을 틔워서 자랐어요 나는 나무수국화분에서 상추 한 포기를 곧 수확할 예정입니다 다 지나갈 거예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비 오는 날도 바람 부는 날도 다 지나갈 거예요 내겐 그랬어요 어떤 일들은 한참 머물렀다가 어떤 일들은 찰나였다가 그래도 결국은 다 지나갔어요 그러다 선물처럼 달맞이꽃 피는 날도 오고 나무수국 화분에서 상추 한 포기를 얻는 그런 웃기는 날도 오고 한참 불행하다가도 그런 사소한 것들에 기쁨이나 행복을 느끼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감사를 느끼고 그러니 나는 어제와 같이 단골카페에 가서 고소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리고 재래시장에 가서 떡볶이와 제철과일도 사먹고 아들 방은 블루로 딸 방은 바이올렛 색으로 봄맞이 셀프 도배도 하고 오늘 정리한 화분에 바질이나 메리골드 씨앗도 뿌리며 그냥 일상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바그다드카페
37편. 뉴욕 1  –  5th Avenue   뉴저지에서 태어나 최초의 idol 가수라던 1940년대의 스타 '프랑크 시나트라'가 부른 노래 중에 유명한 ‘New York, New York’이 있다. 블루스 풍으로 약간은 음울한 맛을 풍기는 이 노래는 잠들지 않는 도시의 중앙에서 성공하고 싶은 남자의 야망을 노래하고 있다. 이 노래의 백미는 마지막 부분에 있는데 “~뉴욕, 뉴욕”을 꿈꾸듯 읊조리며 이 도시에 도전하는 꿈과 욕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잠시의 머물음 이지만 우리도 야누스 같은 다양한 모습의 뉴욕을 느껴 보겠다는 희망으로 첫 날 일정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뉴저지를 출발하여 맨해튼으로 향했다. 허드슨 강을 넘어가면 바로 맨해튼으로 같은 생활권이라지만, 북쪽 지역 통로인 ‘조지 워싱턴 다리’나 ‘링컨 터널’을 건너기가 쉽지 않다. 도심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후 5TH Avenue를 따라 걷기로 하고 링컨 터널로 들어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1시간 이상이 걸려 센트럴 파크 북쪽 인근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대도시답게 뉴욕의 첫인상은 러시아워의 교통체증과 하루 65$이라는 도심의 비싼 주차비로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5TH Avenue를 북쪽에서부터 출발하여 트럼프 타워와 애플 스토아를 거쳐 록펠러 센터에 도착했다. 걷기에 만만치 않은 거리이기도 했지만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목적지를 찾는 것도 힘들고 화장실도 자주 들러야 하는 등 서서히 피곤함이 몰려와서 모두의 걸음은 더디기만 했다.  맨해튼의 중심으로 1939년에 완공되었다는 ‘록펠러 센터’는 거대한 빌딩들의 집합체이다. 70층에 이르는 GE 빌딩을 중심으로 총 19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건물들의 저층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만국기가 펄럭이고 프로메테우스의 황금동상이 빛나는 반지하의 카페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하면서 다시 기운을 찾는다. 주변의 테라스, 계단, 조각상 등이 의외로 익숙한 느낌이다. 아마도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리라. 겨울이면 스케이트장으로 운영된다는 작은 광장은 생각보다 작은 크기로 아담했다.  세계최대의 역이라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건축된 바로크 시대의 성당 같은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1913년 완공 당시에는 뉴욕의 중심이었겠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는 메인 도로의 뒤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주변에 높은 빌딩이 많이 들어서서 상대적으로 낮은 높이의 터미널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입구를 들어서면 건물의 웅장함에 깜짝 놀라게 된다.  중앙 홀은 광장 같은 넓은 규모로 바닥은 흰색 대리석으로 빛나고, 높은 아치형 천장에는 녹색 하늘을 배경으로 황홀한 별자리 그림이 장식되어 있었다. 햇살을 잔뜩 머금어 환한 격자무늬의 거대한 창문들과 잘 조화되어 공간 자체가 거대한 미술품 이었다. 100년도 더되는 옛날에 미국은 열차가 다니는 역사도 이렇게 멋지게 지었구나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한 때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라는 명성을 누렸다. 이제는 뉴욕에서도 높이로는 3번째에 불과하지만 오랜 명성으로 아직도 마천루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엘리베이터를 갈아타며 86층 전망대에 올랐다. 102층이라지만 실제 사용가능한 공간은 86층이 끝이다. 이 위는 16층짜리 콘크리트 안테나로 이루어져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뉴욕은 어느 쪽으로 보아도 빌딩의 숲이다. 숲 사이에 엠파이어 스테이트는 발군의 높이와 규모로 주변을 압도하며 우뚝 솟아있다. 과거 야간에 이 광경을 보았던 E의 표현에 의하면, 발아래 주변 빌딩들이 어둠 속에서 조명으로 꿈틀되며 살아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명불허전이다.  브로드 웨이로 접어들며 세계의 교차로로 유명한 ‘타임스 스퀘어’에 이른다. 뉴욕 타임스의 본사가 있어 이름이 지어진 이 거리에는 하루에 300만 명 이상이 지나다닌다고 한다. 온갖 인종의 남녀노소가 각가지 패션으로 길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작은 공연도 열리고, 다양한 마임 행위와 유명인으로 치장하여 사진을 함께 찍는 호객꾼들도 가득하다. 야간까지 머물며 브로드 웨이에서 연극이나 뮤지컬 한 편을 보는 것도 좋을 법한데 나그네의 마음에는 여유가 없다. 디즈니 토이 스토어에서 손주들 에게 줄 인형을 사며 향수를 달랜다. 다시 북쪽으로 향하여 센트럴 파크로 향한다. 뉴욕의 자랑으로 맨하탄의 반을 차지한다는 공원은 무려 100만 평이 넘는 규모이다. 거대한 콘크리트 빌딩의 숲 속에 자연경관을 그대로 살려 인공 공원을 만든 뉴요커들의 안목이 존경스럽다. 공원 지도에 의하면 여러 개의 산책로와 자연림, 호수와 연못, 동물원과 정원, 분수 등이 길쭉한 직사각형의 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다. 하루 종일 이만 보 이상을 걸어 조금은 지쳐있는 우리가 공원을 만끽하기에는 여러 가지로 역부족이었다.  2시간 가까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기부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편의시설이 많다는 것이 놀라웠다. 벤치 하나에도 기부자들의 명패가 붙어있어 기부행위를 장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공원은 우리나라에 비해 정돈되어 있지 않아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규모야 작지만 아름답게 꾸며져 깔끔하게 관리되는 우리 공원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며 뉴욕 구경 첫날을 마감했다. 돌아오는 길에 빌딩 사이의 공원으로 유명한 ‘하이라인’을 둘러보기로 했던 계획은 취소했다. 빌딩 사이로 떨어지는 노을이 멋지다고 하여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 한 잔하려 했지만 뉴욕의 교통상황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저녁 식사는 호텔 옆 아르헨티나 식당에서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질 좋은 소고기로 유명한 나라의 식당답게 적절한 가격에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여사장이 멀리 극동에서 온 손님들을 환대하는 서비스도 훌륭했다.  사    진       1      록펠러 센터의 테라스 카페 입구              사    진      2     GE 빌딩 입구 사    진       3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중앙 홀              사    진      4     중앙 홀의 별자리 그림(복사) 사    진       5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사    진      6     전망대 사    진       7      전망대에서 바라본 미들 맨해탄               사    진      8     타임스 스퀘어 사    진       9      센트럴 파크  오매불망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활짝 핀 봄꽃처럼 아이들도 느려도 "괜찮아 " 라고 기다려주면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시간입니다. "힘내" 하고 격려하는 것도 좋지만 "괜찮아 힘들었지 잘했어" "니곁에는 엄마 아빠가 있어" 라고 해주면 더 잘 할 수 있는 아이들 입니다. 어느덧 아이들이 십대를 벗어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기쁨과 자라면서 주었던 행복들은 잊어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때 그 순간만을 생각하면서 잘잘못을 따지고 있는 제가 좀 그렇습니다. 다 못난 제 탓이겠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은 제가 어렸을때 보았던 부모의 모습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부모님에게 바라는 것보다는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부모가 먼저 뭔가를 해주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나도 어렸을때 이 아이들 처럼 잘하지 못했고 민들레 홀씨처럼 불면 여기저기로 흩어져버리는 여린 마음을 갖고 있었을 텐데 어른이 되었다고 어릴때 기억은 잊은체 "하면 되지 할 수 있어 " 라고 격려만 해 주었습니다. 힘들고 아플때 꼭 안아주지 못했고, 돈번다고 곁에 있어주지 못했던 때도 아이에게 든든한 버팀목인 부모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 깜짝할사이 성장해서 자기 몫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로서 역활이 크다는 것을 더더욱 느끼는 시절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저희들을 키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이며 시집 장가간 이후로도 겪으셨을 자식에 대한 애뜻한 마음을 어찌 말로 설명이 되겠습니까. 자식을 키우면서 늘 자식이 잘되기만 바라섰던 부모님이 생각나고 부모로서 역활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스한 햇살이 창가로 가득 밀려들어 옵니다. 봄은 이렇게 다가오나 봅니다. 저는 아이들과 매순간 헤어지고 만나는 시작과 끝에 아들 딸에게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합니다. 주말이라고 잠깐 늦잠을 잤더니 아들이 말도 안하고 운전면허 준비로 아침을 거르고 나갔습니다. 제 품안에서 재롱부리던 아이, 아직 응석을 부려도 밉지 않을 아이인데 엄마 아빠 늦잠 자라고 배려해준 아들 녀석이 돌아오면 포옹후 아침 겸 점심으로 맛있는 갈비 김치찜을 만들어 주어야 겠습니다. 봄이 가까이 와 있는 것처럼 아들녀석 마음이 따스하게 전해지는 하루가 행복할 것 같습니다. 나들이
많은 즐거운 일이 있지만 오래 키우는 반려식물의 잎이 자라고 새순이 나오는 것을 보는 것만한 즐거움이 없다. 봄이 좀더 크게 보이는 요즘 잎들이 자기 몫을 다하며 열심히 커나가는 것을 보면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진다.  배란다 쪽에 놓은 금전수도 어디서 나올까 싶은데도 새로운 줄기를 밀어내며 열심히 올라온다. 붙어 있던 잎들이 기지개를 펴듯 잎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많지 않은 식물이지만 어디 있다가 저렇게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일까 신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모른척 가만 두어야 잘 자라는 식물이 있는가하면 온 신경을 다 써야 잘 크는 식물도 있다. 식물을 키우는 금손이있는가 하면 사는 것마다 죽이는 똥손도 있다. 베란다 식물을 키우는 많은 분들을 보면 그 수고로움도 있지만 식물을 향한 마음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나는 키운다고는 말을 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 다만 죽지 않고 잘 자라주고 있는 일이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뭐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이미 자기들이 제 자리를 잡고 살아갈 만큼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리라.  힘이 없어 보일 때 화장실로 데려가 흠뻑 적셔주고 물이 빠지면 그것을 다시 옮겨 놓는 정도. 있는 듯 없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지켜주는 삶은 늘 든든하다.  사파이어는 잎 색깔이 독특하다. 나는 이런 식물이 좋다. 물론 오직 한 가지 색만으로 온 신경을 집중하게 하는 식물도 좋지만 다양한 색을 갖고 있는 식물도 좋다. 잎이 풍성해서 좋다.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햇빛과 물, 흙 등 신경써줘야 할 일이 많지만 고개 돌려 바라볼 때 그 살아 있음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또한 나는 느낀다.  그런 풍성한 잎들 속에 한 잎이 제 생명을 다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잎들에 비해 허약한 것인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꽃가위로 잘라줄 일이지만 지금까지 버텨준 것에 대한 고마움으로 손을 넣어 잎 끝을 붙잡고 잘랐다.  "아아" 잘라야 할 노란 잎을 떼어내지 못하고 그 옆에 있던 잎을 끊었다.  나라는 사람 참.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구분하는 일에 눈에 보이는 것처럼 쉬운 게 없지만 가끔 이렇게 엉뚱하게 일을 만든다.  오늘도 헛다리 집지 않는 삶을 위해 생각하며 살아낼 일이다.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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