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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봄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 마흔 살 전후의 여자 셋이서 아파트 커뮤니티 독서실에서 함께 공부를 했다. 고요하기만 한 독서실을 탈출해 봄볕을 맞으며 도시락을 먹는 짧고 귀한 시간은 우리에게 유일한 소통의 시간이었다. 제한된 시간 내에 응축된 분량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느라 별거 아닌 일상도 우리는 웃느라 정신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로의 시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며 분위기는 급 전환 됐다. <재력가 시댁 A> A의 시댁은 재력이 있어 자식들에게도 지원을 든든히 해주는 편이다. 그만큼 고부간의 친분도 두터웠으며, 며느리는 시어머니께 '엄마' 라고 부를 만큼 잘 따랐다. 시어머니도 친 딸처럼 며느리를 사랑해준다. 하지만 시댁의 간섭은 깊었고, 금전지원에 대한 치레는 감수해야 한다. <몸빵 시댁 B> B의 시댁은 재력은 없지만 맞벌이 하는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손주들을 모두 돌봐준다. 집은 따로 있으나 같이 살다시피 한 세월이 많아 고마운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공존한다. 서로를 생각하고 위해주는 마음은  다른 집에 비해 큰 편이다. 그런데 상호 간에 금전 적인 도움은 별로 없다. <무관심 시댁 C> C의 시댁은 위 두 집에 비해 자유방임 주의다. 안주고 안 받는 사이인 만큼 시댁의 간섭이 일절 없다. 어떨 땐 며느리 입장에서 너무 안 해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시댁에서는 자식 된 도리로 해야 할 의무(용돈요구)에 대해 당당한 편이다. 대부분 금전으로 마음 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수록 며느리는 시부모님께 미안하던 마음마저 깨끗이 사라졌다. 먼저 A가 불만을 토로했다. 주말에 자신의 스케줄이 별도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부모님은 시댁행사에 참석하라는 통보를 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A는 시댁에 내려가지 않기 위해 끝까지 고집을 피웠다. 며느리의 고집은 쉽사리 꺾이지 않았다. 그러자 A의 시부모님은 향후 새아파트 입주시 금전적 제공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히든 카드를 암묵적으로 꺼냈고, A는 결국 돈 앞에 무릎을 꿇으며 불만을 품은 채 시댁에 내려가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 스트레스를 견디기 힘들어 B와 C에게 속내를 털어 놓았는데, A의 말을 한참을 경청하던 C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이봐 A! 만약에 당신의 시댁과~ 우리들 시댁을 바꾸자고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어? 재력이 있지만 간섭하는 시댁 VS 간섭이 없는 대신 재력도 없는 시댁..." 그러자 A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힘들어도 견뎌... 그 상황에서 시부모님이 재력까지 없다고 상상해봐.. 얼마나 더 싫겠어... 지금 우리에게 없는 게 당신에게 있고, 당신에게 없는 게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신께서 우리의 성향을 미리 아시고 우리 그릇에 딱 맞는 시댁을 계획해 주신거야.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이 다른 집들 보다 부부 사이가 좋잖아.. 그 정도도 감사해야지." 그 한마디에 모두들 숙연해졌다. 모두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이었다. 그래.. 나에게 맞는 사람을 점지해 줬다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 여겨 큰 불만으로 삼지 않을텐데... 어떻게 든 상대를 내 마음에 들게끔 움직이려 하고, 자신은 굴복하지 않으려는 그 마음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도 예전엔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서로를 위해주며 잘 지낸다. 시어머니가 잘 해주셔서? 아니면 내가 좋은 사람이라서?? 둘 다 아니다. 시어머니는 민첩하면서도 성격 급한 경상도 분이고, 나는 '느림'의 대명사 충청도 며느리였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시어머니와 제일 느린 며느리가 만났으니 얼마나 안 맞았을 지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으리라.  어머니는 느리적 거리는 며느리가 답답했을 테고, 나는 별 것도 아닌 것에 난리법석인 어머니가 별나다 생각했다. 신혼 초기에는 어린 마음에 시댁에서 쌓인 불만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가 가끔씩 가는 친정집에 방문할 때마다 여과 없이 풀어 놓곤 했다. 시댁 흉을 보고 내편을 확고히 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이자 내가 살아갈 원동력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것은 친정 아빠의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였다. "그러면, 너는!! 네 시어머니가 너를 봤을 때, 얼마나 마음에 드는 며느리일 거 같으냐!!?" 충격이었다. 친정 식구라면 무턱대고 내 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질책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첫번 째 충격이었고, 그 동안 시어머니에 대한 허물은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서도 나에 대한 잘못은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두번 째 충격이었다.  그 이후 시댁에 불만이 생길 때 마다 이 문장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았다. 친정아빠의 한마디 덕분에 지금까지 시어머님과 큰 트러블 없이 잘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님도 내게 많이 참으셨고, 나도 어린 나이에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제법 다듬어졌다. 시어머니와 15년을 함께 동고동락한 지금은 서로에게 고마움도 표현할 줄 알고, 싫은 것은 내색하지 않을 줄도 알며 서로를 배려하기에 큰 불편함이 없다.지금 이대로만 계속 유지된다 해도 나는 만족한다. 지금의 시부모님이 계셨기에 내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더 사랑하는 자식들을 품에 안게 되었다. 결국 내가 가진 것은 바라보지 않고 내게 없는 것과 남이 가진 것만 바라보며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는 지. 지난 날 내가 살아온 궤도를 돌아보면 뭐가 그리 힘들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며 살았을까 싶다. 결국엔 이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데도, 정작 그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했다. 바로 그 것이 불행의 씨앗은 아니었는 지 자문해 본다. 쎄이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9시 30분에 밥을 먹으며 뉴스를 봤다 아카데미 시상식을 곧 한단다 '맞다 오늘 10시라고 했지' 언젠가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얘기가 계속 나와서 언제 하나 검색해 놓고 그새 잊어 먹었다 지금은 사정이 있어 그만둔 라디오 방송을 다시 들어보기도 했다 영화를 본 느낌을 주고 받는 방송이었는데 난 기생충을 꼭 하자고 주장했고 녹음했다 파일이있어서 올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른다 그동안 상받은 후 소식만 들었지 생방송으로 하는 줄 몰랐다 목욕가려고 짐 싸 놓은걸 보며 '방송 보고 가자'며 눌러앉아서 보기 시작했다 기생충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다는 얘기가 되겠다 드디어 시상식 시작 요즘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다보니 아는 얼굴들이 가끔 보인다 소개해주는 영화들을 나중에 봐야지 하며 메모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얘기 배우들의 나이든 모습을 봤다 브래드 피트도 나이를 먹었다는 🌴 '이렇게 난리치다 하나도 못 받으면 어쩌지' 각본상! 시작부터 받으니 기분 좋고 다행 🌴🌴 '당연히 받을거라고 하는 상, 못받으면 역시 어쩌지 욕심이 많지 두개까지 주겠어' 국제장편영화상!! '이런 장난 아니네' 같이 기생충 방송을 했던 분에게 카톡을 했더니 보고 계시단다 반가워라 이후 카톡으로 감동을 같이 했다 🌴🌴🌴 남은건 가장 중요한 상 두개, 두개 받았는데 감독상 작품상까지? 그럴리가 받으면 당연히 좋지만 그런 기적이... 감독상!!! 대박 🌴🌴🌴🌴 '세개나 받았으니 이건 안 줘도 실망 안한다 진심 절대 이것까지 줄 리 없다 하지만 말 안되지만 일단 기대해본다' 작품상!!!! 친정 단톡에 썼다 '미친' '작품상' 몇 시간 하는건 줄 모르고 꼼짝 않고 봤는데 진행자 말이 세시간 반이었단다😏 모두 기립박수를 네번이나 쳤다 톰행크스도 기생충팀을 보며 열렬히 박수를 믿기지 않는 모습이다 나도 "와~" 하며 혼자 박수를 쳤다 네번ㅎ 봉준호 감독의 재치있는 소감, 다른분을 띄워주는 센스까지 최고였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우린 뭐든 할 수 있다는걸 보여줬다 기생충이🍀 서쪽하늘
🥬20대 자취하면서부터 배추김치며 열무김치를 담아서 먹었던 나였다. 결혼 후 더 열심히 김치를 담아서 먹었다 30대 40중반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40대 후반이 되고부터 갱년기 손님이 찾아와 모든 게 귀찮아지고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어졌다 그렇지만 주부이기에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건 해서 먹었다 🥬김치 한 번 사 먹지 않았던 내가 여수 갓김치를 주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아는 지인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무슨 일 있어, 어디 아픈 거야. 김치는 다 담가서 먹었던 사람인데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변의 말을 건넸다. 내가 담가 먹는 것도 좋지만 남이 해준 것도 한 번쯤 먹고 싶어서 주문했어요라고~~~ 🥬그런데 주문했던 갓김치가 도착했다 식사때마다 여수 돌산갓을 놓는데 남편과 아이들은 손도 안된다. 나만 먹을 뿐이다. 그래서 어제 오후에 큰 맘먹고 일을 벌렸다. 진짜 오랜만에 김치를 담갔다. 친정 언니가 시골에서 직접 농사지은 아주 달큼한 무우로 깍두기를 담그고 배추 두 포기로는 겉절이식으로 담갔다. 🥬저녁식사 때 배추 겉절이를 접시에 한가득 올려놓자 순식간 사라지고. 또 한 접시를 또 한 접시를 내 놓기를 반복하였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맛있다고 배추 겉절이에 밥을 한 그릇 비우는 것이다. 🥬주문해서 온 여수 갓김치는 손도 안되더니 내가 담가놓은 배추 겉절이는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고 있다보니 미안해지는 마음이 커졌다. 저렇게도 잘 먹는데 내가 힘들다고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 마음속에 가득 밀려왔다. 이제부터라도 다시 요리에 흥미를 불어넣어 식구들에게 내가 만든 맛있는 요리들로 매일매일 행복하게 해주도록 노력해야겠다. 아이미소
매연을 마시며 기침을 내뱉고, 길에서 사람들이 무심코 버리고 가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들로 매번 뿌리가 찢기는 듯한 고통을 느끼는 나무는 오늘 결국 무거운 한숨을 토해냈다.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정겨운 나뭇잎들도 더 이상 붙잡아줄수가 없다. 나무는 이미 너무 다쳤다. 나뭇잎들은 바닥에 바로 떨어지지 않고 바람을 맞으며 여행을 떠난다. 나무와 헤어지는 것이 슬프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을 설레게 만들었다. 오른쪽으로 솔솔 왼쪽으로 솔솔. 살랑살랑 바람을 느끼던 그들은 갑자기 강풍을 맞닥뜨린다. 모두가 흩어져버렸다. 혼자가 된 한 꼬마 나뭇잎은 친구들을 찾기 위해 바람에게 부탁했다. "시원한 바람 아저씨.. 제 친구들이 아저씨 때문에 전부 흩어져버렸어요.. 제 친구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바람은 자신 때문에 그 꼬마 나뭇잎이 친구들을 잃어버렸다는 말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곤 대답했다. "그랬구나 꼬마야. 아저씨가 조심했어야 했는데 미안하게 됐구나. 내가 꼭 친구들을 찾아주마." 나뭇잎이 기쁨에 가득찬 얼굴로 말했다. "고마워요! 바람 아저씨!!" 꼬마 나뭇잎은 바람 아저씨의 힘을 빌려 친구들을 찾으러 나섰다. 인도를 날아다니던 꼬마 나뭇잎은 한 나뭇잎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나뭇잎은 하수도 속에서 익사하여 이미 죽어있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바람 아저씨.. 제 친구가 저 하수도에 빠져서 죽었어요.. 저렇게 고통스럽게.." 꼬마 나뭇잎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나무가 기침을 몇 번 내뱉을때마다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랐기 때문에 꼬마 나뭇잎에겐 너무 이른 충격이었다. 바람 아저씨가 말했다. "꼬마야.. 너무 상심하지마렴. 분명 다른 친구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너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꼬마 나뭇잎의 기분은 금방 풀릴것 같지 않았다. 친구의 죽음을 너무 빨리, 그리고 너무 잔인하게 마주친것 때문이다. 바람은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서둘러 달려보았지만 꼬마 나뭇잎의 친구들은 모두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람들의 발에 잔인하게 밟혀 몸이 찢기고 쓰레받기에 쓸려 냄새나는 쓰레기들과 함께 버려지고 벌레가 득실득실한 하수구에 빠져죽고.. 꼬마 나뭇잎의 친구들이 모두 죽은 것을 보고 그는 매우 침울해졌다. 슬픈 목소리로 꼬마 나뭇잎이 말했다. "바람 아저씨.. 나 목말라.." 바람 아저씨가 놀란 눈으로 나뭇잎을 쳐다보니 뻣뻣하게 수분을 잃고 곧 바스러질것 같은 늙은 낙엽이 꼬마 나뭇잎이 있던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 아저씨.. 나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어. 내가 태어난 곳. 나를 돌봐준 나무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어." 바람 아저씨는 속도를 올려 나무에게로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늙은 낙엽이 금방이라도 바스라질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가 늙은 낙엽의 온몸을 들쑤시고 있었음에도 늙은 낙엽은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5일같던 5분이 지나고 드디어 늙은 낙엽은 나무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나무의 모습은 너무 초라했다. 한 명의 나뭇잎도 붙잡지 못한 채 외롭게 남아있었다. 늙은 낙엽이 말을 걸었다. "나무야.. 왜 이렇게 외롭게 서있어.." 늙은 낙엽은 나무 옆에 다가가 몸을 기댔다. 조금씩 바스라지던 몸이 더이상 버티지 못하여 형태를 잃어갔다. 늙은 낙엽이 겨우 말을 붙였다. "나무야.. 나 떠나면 혼자 괜찮겠어..?" 나무가 말했다. "내년이 되면 또 나뭇잎들이 풍성히 나타나 나에게 말을 걸어줄꺼야.. 걱정 말고 이제 편히 쉬어. 친구들 찾느라 고생했어.." 늙은 낙엽은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참 슬픈 일이라고. 늙은 낙엽은 힘겹게 마지막 한 마디를 바람에게 건넸다. "바람 아저씨.. 고마웠..어..." 늘 하던 존댓말마저 하지 못하고 늙은 낙엽은 숨을 거뒀다. 나뭇잎이 살아가기엔 너무 가혹한 삶이었다. 하늘링
요즘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나의 작은 정원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의 정원은 '올라가야' 해요 내가 사는 집은 지은 지 20년도 넘은 주택입니다 예전에 옥상마다 노란색 물탱크가 있었죠 쓸모없이 방치되어 있던 물탱크를 반으로 잘라 나만의 정원을 만들었답니다 철물점에서 거친 톱을 사서 몇날며칠 톱질을 했습니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집안일 하고 옥상에 올라가 흥부가 박을 썰듯 나는 혼자 씩씩거리며 물탱크를 톱질했습니다 생각보다 힘들었고 오래 걸렸어요 쪼갠 물탱크에 흙을 채우는데 또 한참이 걸렸구요 그게 10년전이예요 10년된 나의 정원엔 대추나무와 살구나무와 무궁화, 아로니아가 있습니다 대추가 열 몇개쯤 열리는 키 작은 대추나무와 살구는 안 열리고 꽃만 피었다 지는 역시 키 작은 살구나무가 있어요 이 살구나무로 말할 거 같으면, 어느 봄 심지도 않은 싹이 쑥쑥 나오더니 겨울이 되도 죽지 않고 계속 키가 부쩍부쩍 크는 거예요 처음엔 잡초인가 했는데, 제법 나무처럼 모양이 나오더군요 나는 부지런한 농부는 아니라서, 그냥 냅뒀어요 어느 싹인지도 모른채 부쩍부쩍 키가 크던 어느 날, 집에 다니러온 엄마에게 보여주었어요 이게 제작년부터 이렇게 자란다고 "도대체 얜 누구지?" "이거 살구나무인데?" 엄마의 답에 그제야 살구나무라는 것을 알았어요 할머니의 옛집 앞마당엔 살구나무가 있어요 그걸 엄마가 나눠주었는데 다 먹고 살구씨를 모아 물탱크 정원 한 귀퉁이에 버렸었죠 그 살구 씨가 몇년에 거쳐 키가 크고 나무가 되고 꽃을 피웁니다 지금 살구꽃이 한창입니다 외출을 자제하는 요즘, 나는 꽃구경을 하러 나의 정원으로 '올라갑니다' 나는 늘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랐어요 엄마는 늘 마당에 뭔가를 심고 가꾸었죠 마당이 없는 집으로 이사를 갔을 때는 벽돌을 쌓아 마당 한켠에 흙을 채워 꽃밭을 만들고 나무 묘목을 심고 맨드라미와 과꽃 씨를 뿌렸어요 오래 살던 집에서 다시 이사를 해야했을 땐 마당에 심은 모과나무를 두고 와야하는 걸 제일 아쉬워하셨지요 지금도 우린 가끔 옛집의 모과나무 이야기를 하곤 해요 그래서였을 거예요 씨를 뿌리고 싹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사루비아 꽃을 쪽쪽 팔아먹고 봉숭아 꽃물을 들이던 그 마당을 보며 자란 어린 날들의 추억 비 온 다음날의 흙냄새 같은 것들 벌이 윙윙거리던 소리들 키가 크고 작은 여러 꽃들이 어울려서 피고 지던 그런 꽃밭을 나도 갖고 싶다... 그러니, 흥부가 쪼갠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온듯 드디어 노란 물탱크가 두 쪽으로 쩌억 벌어지던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얼른 흙을 채우고 얼른 꽃씨를 뿌려야지, 마음이 급했었지요 해바라기가 왔다 갔어요 국화와 코스모스, 바질과 토마토도 이곳에 있었지요 그러다 언제는 먹고버린 참외씨가 자라 참외 두 개를 수확합니다 나의 작은 정원엔 작은, 신기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살구꽃이 지고 나면 연구빛 잎들이 나올 거예요 여름이면 작은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불 때마다 잎들이 차르르 부딪치는 소리도 들을 수 있지요 가끔 새도 그 가지 위에 앉아 쉬어갑니다 내가 나가면 놀라 날아갈까봐 더 앉았다 가라고 옥상 문앞에 멈춰 새소리에 귀기울이곤 해요 피고 지고 자라고 키가 크는, 종종 새나 잠자리, 벌과 나비가 다니러 오는, 나는 아주 작은 정원이 있답니다 그 정원에 지금 살구꽃이 한창입니다 바그다드카페
삶은 각종 차별과의 기나 긴 싸움이 아닐까.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이라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차별에 체념하고 익숙해야 하는가 아니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인가. 나 혼자만의 숙제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공동체가 힘을 합쳐 지혜를 모아서 해결해 나가야 하는 명제인가. 부지불식간에 차별을 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본인이 부족하고 나약한 탓이라고 치부하며 자책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부당한 차별은 이겨내려는 개인적인 의지 못지않게 제도적으로 차별 방지를 위한 법률적 수단이 강제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누구이든 철들기 시작하면서부터 한번 쯤은 겪게 되는 차별이라는 것,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를 꺼내 본다. 차별금지법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7년 발의하였으나 현재까지 표류하고 있다. 입법 과정에서 여러 이익 단체, 종교 단체에 휘둘리는 국회의원들 탓이다. 자기 가족이자, 이웃이 겪는 어려움이요, 억울함이고 설움이라 한다고 해도 그러할까.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에게 되묻고 싶다. 소신, 가치관이 있어 반대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19년 KBS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무려 70%가 혐오 표현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고 인종·성별·장애 등등을 이유로 한 모든 종류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3명 가운데 2명이 찬성했을 만큼 많은 국민들은 법 제정을 원하고 있다. 13년 전 첫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그나마 18대, 19대에선 두세 건씩 발의 되었지만 현재의 20대 국회에선 아예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직장에서 일상에서 직간접적으로 겪은 차별에 관한 경험담 몇 가지이다. 국세청의 특별 세무 감사는 이삼십여 명이 투입되기에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사무 공간의 제공이다. 책상, 인터넷, 사무 비품등등 뿐만 아니라 사무 보조 여직원 한 명도 배치해야 한다. 나름 신경 써서 빠릇빠릇하고 일 잘하는 여직원을 배치하였더니, 상사가 단박에 지적을 하는 것이 능력 여부를 가리지 말고 제일 예쁘고 상냥한 여직원을 선발하라는 것이다. 그 속이 헤아려져 즉시 교체를 했다. 왜 나는 그러한 생각에 미치지 못했을까. 결과적으로 용모의 차별(?)이 된 것이고 세상사 그런 것이려니 수긍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기억이 남아있는 에피소드이다.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현장 소장으로 부임한 동료는 외동딸을 혼자 둘 수 없어 아내와 함께 이주를 하게 되었다. 공사가 준공되어 귀국 후 수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혼기에 접어든 딸이 신랑감이라고 집에 데려 온 사람이 흑인 청년이었다. 기겁할 만한 일이다. 기가 막힌다고, 딸아이를 부임지에 데리고 간 것이 후회막급이라고는 하지만 어찌 자식을 이길 수 있겠는가.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매사에 합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던 동료이건만 인종 차별(?)의 벽을 넘기기는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다. 청년이 마지막으로 예비 장인을 설득한 말이, ‘내가 흑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흑인이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하소연 하더라는 이야기가 아직껏 잊혀지지 않는다. 사실 차별이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만의 노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서럽고 억울한 것 아닐까.비교적 지역, 학력 차별이 없었던 직장이었음에도 출신학교, 특정 지역 출신 직원들을 차별하며 하대할 뿐 아니라 폄훼하고 노골적으로 모멸감을 안겨주는 직장 상사 몇몇이 있었다. 나름 공정한 인사고과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차별받는다 싶어 억울할진대 당사자들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공공연한 지역 감정을 드러내는 수준 미달의 인간들이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내심, 경멸하였다. 은퇴 후 이러한 선배들은 소소한 OB 모임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찌 직장 뿐이겠는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고질적인 병폐중 하나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민중은 개, 돼지'일 뿐이라는 인간, 그것도 명색이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라는 고위 공무원의 말이다. 지역 차별을 넘어 조선 시대의 班常 반상을 구별 짓는 신분 차별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되어 나온 발언일 것이다. 뉴스를 접하고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에 탄식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다.국내에서 탈북민, 연변 조선족 동포들과 외국 근로자들이 받는 부당한 차별은 불과 한 세대 전, 중동에서 우리 근로자들이 사람 취급 제대로 받지 못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다. 재일 교포가 일본에서 받는 차별 또한 엄연한 국적 차별이다. 비근한 예로 지난 10일 일본 사이타마시 행정당국이 코로나 19에 대비해 마스크를 시내 어린이와 노인 시설에는 배포하면서 조선 유치원은 제외한 사건이 발생하여 우리의 공분을 일으켰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속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집값 떨어진다고 이웃에 특수학교 시설 건립을 서슴없이 반대한다는 보도를 접하면 가슴이 턱 막힌다. '왜 사느냐' 고 반문하고 싶다.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의 심정은 피눈물이 날 것이다.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 또한 마찬가지이다.1976년 출판된 알렉스 헤일리(1921~1992) 소설 ‘뿌리 Roots’: The Saga of an American Family,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다. 헤일리 외가 쪽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으로 1767년 감비아에서 납치되어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쿤타 킨테’ 와 후손들의 삶과 고난을 그린 소설이다. 이를 원작으로 하여 1977년에 미국 ABC의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졌고, 국내에서 옛 동양방송과 KBS를 통하여 더빙 방영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접한 인종 차별을 주제로 한 아주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이다. ‘뿌리’ 이후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주제로 한 영화, 드라마는 헤아릴 수 없다. 최근에 우연히 흑인 천재 피아니스트가 겪는 차별과 이에 당당히 맞서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린 북’을 시청하면서 생각이 나서 찾아본 시, 흑인 시인 랭스턴 휴스 의 ‘나 역시 미국을 노래한다’ 이다. 나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어떻한 종류의 차별이건 무조건 반대하고 분노하는 사람이다. *영화의 제목 ‘그린 북’ 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출간된 ‘흑인 전용 여행 가이드 북’으로 흑인 여행자들이 이용 가능한 숙박 시설, 레스토랑, 주유소 등의 정보가 들어 있는 책자이다.나 또한, 미국을 노래한다      - 랭스턴 휴스나는 검은 얼굴의 형제이다.백인들이 들어오면나는 부엌으로 쫓겨나서 밥을 먹어야 했다.하지만 나는 웃으며맛있게 먹고건강하게 자랐다.내일이면백인들이 들어와도나는 식탁에 남아 있을 것이다.그 때에는                  아무도 감히"부엌에 가서 먹어" 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게다가그들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될 것이며스스로도 부끄러워하게 될것이다.나 역시 미국을 노래한다.I, too, sing America.     By Langston Hughes(1902-1967)I am the darker brother.They send me to eat in the kitchenWhen company comes,But I laugh,And eat well,And grow strong.Tomorrow,I’ll be at the tableWhen company comes.Nobody’ll dareSay to me,“Eat in the kitchen,”Then.Besides,They’ll see how beautiful I amAnd be ashamed—I, too, am America. 거유당
어제 너를 보내고 너와 마지막 인사를 할껄하고 후회했다.차마 너의 마지막모습을 볼수없어 아빠만 너랑 병원에 가라고하고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핸폰에서 톡알림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먹먹해지곤했는데..나의 아가.5시에 드뎌 널 잘보내고 고통없이 편히 잠들었다는 톡을 받고 이 엄만 가슴이 쿵 해지더라.내대신 아빠가 마지막인사를 해줬다며 엄마가 많이 사랑한다고 대신 말해줬다고...그말을 보는 순간 참던 눈물이 흘러 주위 사무실 동료들이 눈치를 챘더랬어.집에 와 나도 모르게 늘 젤 먼저 반겨주던 네 모습을 찾느라 순간 흠짓했단다.이제 내곁에,이세상에 없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않나지만..그래도 추운겨울이 지나고 따스해지면서 꽃들이 피기시작하고 네가 좋아하는 벗꽃이 필때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서 다행이야.내아가.거긴 어떠니? 이젠 아프지않지? 엄마가 너무많이 우리 머니 보구싶다.너와 마지막 인사를 할것을..너무너무 후회돼.차마 내손으루 널 보내고싶지않아서 안갔는데..그래도 내손으로 보내줄껄..너의 그 따스했던 체온을 이젠 느낄수없다는게 넘 가슴아프다.사랑하고 사랑한다..나중에 그곳에 이엄마,아빠 마중나와 줄거지? 혹시 그곳에서 먼저간 지니를 만나거든 엄마가 너무 미안해하고 언제나 사랑하고 기억하고있다고 전해주렴.거기서는 열씸히 뛰어놀고 행복한 나날들이길..지난밤 엄마,아빠는밤새도록 낑낑거리던 너의 환청속에서 너의 모습을 찾다가 새벽을 맞았어.아마도 얼마간은 이렇게 밤을 보낼거 같구나.내 아가..이젠 이렇게 사진속에서 볼수밬에 없네..언제나 엄마아빠 가슴속에서 영원히 기억할께..아가,내 아가 머니야 안녕... 마녀키키68
묻지 말았어야 했다. 지금 같은 때는.  가끔 뭔가 일을 해놓고서는 '내가 왜 그랬을까, 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후회를 한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마스크 수량이 남아 있는 약국을 찾았다. 사람들이 대여섯 명 정도 줄을 섰다. 이 정도면 바로 사겠다 싶었다. 약국이 좁아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한 사람씩 들어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약사 혼자서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이지만 약국 안에는 약사와 방문객 한 사람씩만 들어가 있으니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내가 들어갈 차례다.  내가 들어가려고 하니 옆에 이비인후과를 나온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약사가 다음에 들어오라고 한다. 나가 있으라고. 한달 치 약을 사는지 시간이 좀 걸린다. 약 복용법도 알려준다. 몇 번 온 사람이었는지 지난 번 약과 차이점도 설명을 한다. 다음에 들어가면 되겠지 싶었다. 병원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나왔다. 눈치를 살피다 마스크 줄 서 있던 사람들 맨 끝으로 갔다가 잠시 후 약국안으로 들어온다.  처방전을 들고 들어간 남자가 약사에게 '줄 서 있는데 금방 되느냐'고 미안한 듯 묻자', "괜찮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게 먼저다, 저 사람들은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분들"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게 들린다.  바로 들어가면 될 것을 순서를 놓친 게 아쉽고 마스크 사겠다고 줄 서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이렇구나, 하는 마음에 씁쓸했다. 내 마음의 기다림이 부족한 건지. 돈이 되는 것과 돈이 되지 않는 것의 차이일까, 단지 일회성으로 마스크를 사러 온 사람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고객이라는 걸까. 마스크를 사는 줄이나 처방전을 받는 줄이 한 줄에 같이 서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처방전을 들고 온 분이 먼저입니다라는 안내문이 있었다면 마음이 좀 달라졌을까.   약사분들의 수고와 어려움에 수고한다는, 말을 하거나 힘드시죠, 라는 말을 하고 나왔었다. 아무 말이 나가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 참 속 좁다. 두 장의 마스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열대여섯 명 정도 줄을 서 있는 것 같다. 로비를 나와 청계천 쪽으로 길을 걷다가 보니 한 50명 정도 줄을 섰다. 마스크를 사는 줄이다. 일상적인 풍경이 되었다. 막 뛰어가는 두 사람이 마지막 줄을 선다. "마스크 사시려고 하나요? "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해서 그런지 잘 못 알아 들은 건지, 낯선 질문에 당황한 건지 모르겠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답을 건넨다.  "아, 네." "저 건너편 빌딩에 줄이 거의 없어요, 거기서 지금 팔아요." 그냥 지나치면 좋았을 뻔했다.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그냥 그 줄에 그대로 서 있다. 마음을 써야 할 때와 쓰지 말아야 할 때를 아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고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마음을 비우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도시산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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