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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새벽 공기를 가르며 구슬프게 흘러나오는 해녀들의 노랫소리가 9살 어린 소녀 진주는 참 싫었다. 그럼에도 이곳엔 사시사철 바다를 보러 먼 길을 마다않고 온 사람들로 늘 붐볍다. 별 볼 것도 없는 곳에, 여름엔 덥다고 오고 겨울엔 춥다고 오는 게 진주는 신기했다. 고작 20미터정도의 바다를 보며 행복해하는 관광객들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진주에게 바다는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다. 바다는 아주 아주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이었다. 할머니의 눈물, 그리고 어머니의 눈물. 9살 이후 진주는 늘 바다가 무서웠다. 수영장은 매일 찾았지만 바다에 몸을 담근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시라도 그 커다란 눈물에 맞기라도 한다면 죽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을까? 열차 유리창 너머로 빠르게 풍경이 지나갔다. 어린 아이의 모습은 간데없고 어느새 서른 살이 된 진주가 좌석에 다리를 꼰 채 앉아있다. 하지만 아직도 어렸을 때의 앙증맞은 모습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살짝 튀어나온 이마와 한쪽만 들어간 보조개까지. 지적인 이미지까지 더해져 아주 매력적인 여성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흘깃흘깃 쳐다볼 그런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 있었다. 인기척을 느낄 새도 없이 커다란 덩치의 민호가 진주에게 다가와 가만히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진주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민호는 캔 커피를 한 손에 든 채 그녀를 보며 따뜻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짧은 머리의 그는 부드럽고 밝은 인상이다. 조금 촌스러운 거 같은데 오히려 그게 그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었다. “무슨 생각해?” “기억나? 18년 전, 할머니가 9살인 나를 시집보내려 하셨던 거.” “당연히 기억하지. 어떻게 그걸 잊겠어. 내 운명의 날이었는데. 난 지금도 생생해.” 진주가 기억하는 그날은 하늘에 구름이 잔득 끼어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들어간 할머니의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좁고 낡았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 줄 위로 고무로 된 잠수복이 곱게 걸려있었고 방문 앞에는 “고길자” 라 쓰인 둥근 태왁이 신주단지마냥 잘 모셔져 있었다. 진주는 태왁은 해녀들이 물질할 때 쓰는 바구니로 해녀에게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란 걸 곧 알게 된다. 턱! 방문이 거칠게 열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늙은 여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바로 진주의 할머니 고길자다. 70대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눈매가 사납다. 처음 9살 진주가 고길자를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눈을 뜨고 다니냐고 진주는 묻고 싶었지만 너무 무서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길자는 그 서슬 퍼런 눈으로 하늘을 치켜보았다. 아마 물질을 할 수 있는지 없는 지 가늠하려 하려 하는 것이 분명한데 왠지 노려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진주의 눈엔 하늘도 무서워하지 않는 거 같았다. 마치 ‘한 판 붙을래?’ 하고 시비 거는 모습이랄까? “아이고! 뭔 날씨가 이렇게 뒤숭숭하냐? 물질하다 뒤지기 딱 좋은 날씨네.” 길자는 기합을 넣듯 킁! 숨을 뱉으며 마당으로 나섰다. 그러더니 잠수복과 태왁을 거침없이 들었다. 해안도로를 걷는 길자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기 그지없다. 마치 ‘이 구역은 내꺼야 ’하고 시위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붙는 젊은 해녀들이 길게 줄을 이었다. 아마도 걷는 순서에도 나름 위계질서가 정해져 있는 게 분명하다. 바다로 향하는 해녀들은 모두 각각의 이름이 쓰인 잠수복과 수경을 넣은 노란색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그때, 수더분하게 생긴 민자가 길자의 팔짱을 키며 다정하게 안겼다. 언뜻 보기에도 아마 꽤 친한 사이가 틀림없다. “형님~우리 형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너 이년, 나한테 빚진 거 안 잊어먹었지?” “아이고. 그 빚 한번 오래가네. 무슨 이침 인사가 그래요? 동상, 잘 잤냐? 좋은 꿈은 꿨냐? 뭐 이런 거 물어봐야지.” “내가 부탁하면 뭐든 들어준다고 약속했어. 잊어먹지 마.” “그럼 얼른 부탁을 해요. 10년 동안 한 번도 안 해놓고. 요즘엔 왜 매일같이 확인하는데요? 수상하네.” 뽀글뽀글 파머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민자가 의아한 얼굴로 길자를 뚫어지게 보았다. 하지만 길자는 그런 그녀의 면상에 세게 콧바람을 쏠 뿐이었다. 틱! 길자의 콧물이 민자의 얼굴에 튄다. ‘아참!’ 화들짝 놀라 물러서며 손으로 얼굴을 닦는 민자의 모습이 우습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노는 건 모두 역시 똑같다. “흥! 니가 노망나 까맣게 잊어버릴 까봐 그런다!” “형님! 말이 씨가 돼요! 내가 노망나면 형님은 멀쩡할 줄 알아요? 고슴도치도 형님보단 부드럽겠네! 나나 되니까 옆에 붙어 있지! 누가 있겠어요?” “안 붙잡아. 가. 평생 귀찮게 하는 게 누군데.” “정말 내가 사람이 좋아서 문제야. 하지만 천성인 걸 어떻게. 내가 참아야지.” “염병.” 길자가 매몰찬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민자를 뒤로하고 앞서 걷는다. 시쳇말로 그녀는 누구하고도 어울리고 싶지 않은 그런 부류다. 무엇이 그녀를 이렇게 고독하고 고집 세게 만들었을까? 17년 전 먼저가 남편 때문일까? 아님 20살에 엄마가 싫다며 떠난 하나밖에 없는 딸 정미 때문일까? 아니면 이놈의 깊고 찬 바다 때문일까? 민자는 몰래 뒤에서 길자의 뒤통수에 대고 주먹질한다. 하지만 이내 좋다고 주인 따르는 강아지마냥 쫄랑쫄랑 길자의 뒤따라간다. 겨울바다는 차다. 차다 못해 시리다. 물에 들어가면 온 몸에 바늘이 박히듯 아프다. 바로 그곳이 해녀들의 일터다. 일터치곤 정말 최악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길자 역시 일주일에 두 번쯤 나오는 바다지만,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그 거대한 눈물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항상 겨울바다에 들어가기 전에 해녀들은 바위에 둥글게 모여 앉아 불을 피우고 얼은 몸을 녹인다. 하지만 오직 길자만 떨어져 묵묵히 몸을 풀뿐이다. 아마도 그녀는 바다와 자존심 싸움을 하는 게 아닌 가 싶다. 맹수에게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절대로 약한 모습이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사실 원래 약하면 잡아먹으려 달려드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길자가 이제 다시 싸움을 치루기 위해 불턱에 앉았다. 길자가 찬 바닷바람을 맞으며 시꺼먼 잠수복으로 갈아입는다. 마지막으로 꽉 끼는 고무 모자를 힘겹게 머리에 쓴다. 무겁고 딱딱한 고무를 뒤집어쓰는 게 이젠 힘이 드는 듯 숨을 몰아쉬는데 이미 잠수복을 갈아입은 민자가 약을 한 움큼 손에 쥐고 다가온다. “형님, 약 먹었어요?” 길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미간을 찌푸리는 게 아마 헷갈리는 게 분명하다. 민자가 그녀의 손에 약을 쥐어준다. “형님, 늙어서 그런가? 자꾸 깜박깜박하는 거 같네. 치매 아닌지 몰라. 병원 가요.” “뭐?!!터진 주둥이라고! 이년이 막 지껄이네!” 길자가 주먹을 들고 때리려 하면 민자가 재밌어 죽겠단 표정으로 바다로 후닥닥 도망간다. 민자가 때려보라는 듯 자신의 엉덩이를 내밀고 흔든다. “누가 저걸 환갑이라고 하겠어? 환장한 년이라고 하지.” 길자가 손에 가득 진통제를 쥐고 한 번에 꿀떡 삼킨다. 이 약은 해녀들이 보통 먹는 진통제로 깊은 바다에 무산소로 들어갈 경우 수압으로 강한 두통이 유발되기 때문이다. 매번 해녀들은 물에 들어갈 때마다 이 약을 먹는다. 바다로 들어간 길자가 태왁을 두 손으로 붙잡고 능숙하게 헤엄쳐 나간다. 이미 멀리 상군들이 깊은 바다로 나가는 것이 보인다. 상군은 가장 실력이 뛰어난 해녀를 말한다. 그 밑으로 중군, 하군이 있다. 길자는 부드럽게 헤엄쳐 하군들이 모여 있는 얇은 곳으로 가 물질을 시작한다. 아마도 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어 깊은 바다에서 물질하는 게 힘에 부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는 날렵하게 물구나무서듯 몸을 숙여 바다 속으로 잠수할 수 있다. 어두운 물 속. 길자가 여기 저기 살피다 소라무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헤엄쳐간다. 그렇게 무섭던 바다가 막상 들어오니 아랫목에 몸을 지지는 것처럼 포근하기 그지없다고 길자는 생각했다. 어느 순간은 소금이 되어 영원이 이 바다 속에 온 몸이 녹아버린 건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 아니 바랐는지도 모른다. 사실, 바다 속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맑거나 깨끗하지 않다. 거의 몇 미터 앞이 안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녀들은 자신들의 경험과 감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물속에 있을 때 그녀는 마치 18살 소녀처럼 날렵하고 유연하기 그지없다.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자유였다. 3시간가량의 물질 후 양 손에 소라를 주은 길자가 비로소 오늘 일을 마무리하려 뭍으로 헤엄친다. 해가 중천에 뜨고 해녀들이 태왁 가득 소라며 문어를 잡아가지고 바다에서 나오고 있다. 그녀들은 몇 시간의 물질로 많이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걸음걸이다. 생각해보면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이건 능력도 아니고 재능도 아니다. 다만 오랜 기간 참아온, 살아야 한다는, 자식을 먹어야 한다는 집념이다. 거룩한 희생이 아니라 무서운 생존본능이다. 뭍에서 담배를 피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남편들이 지게를 들고 아내들을 향해 후닥닥 뛰어간다.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디 그녀들이 보란 듯이, 해녀들은 자랑스럽게 태왁을 던져놓는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다시 바다로 향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일까? 남편에게 태왁 가득한 해산물을 건네는 해녀들의 표정이 뿌듯하다. 목숨을 건 오랜 노동의 대가가 보상받는 순간이다. 그에 반해 남자들은 ‘이게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 값이 잘 나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물론 남편들은 그런 아내가 고맙고 미안하고 또 무사한 걸 안도한다. 그렇게 내색 아닌 내색을 하며 아내의 태왁을 들고 나가는 남편들. 하지만 남편이 없는 길자는 무거운 태왁을 혼자 짊어지고 운반해야 한다, 민자는 오리발을 벗고 해산물로 가득한 태왁을 어깨에 이고 걸음을 옮긴다. 어쩌면 이 순간이 물속보다 뭍이 더 그녀들에게 힘들어 보인다. 이런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길자에게 더 큰 골칫거리가 다가오는 줄이야. 아마 이런 악몽은 꿈조차 꾸지 못했을 것이다. 저녁 7시10분. 습한 공기를 뚫고 기차가 플랫 홈에 도착한다. 30중반의 정미와 9살 진주가 어두운 얼굴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짐가방을 든 정미와 공주가 그려진 책가방을 든 진주 사이에 냉기가 흐른다. 이 나이차이 많이 나는 두 여자는 아마 오는 내내 기차 안에서 싸운 게 분명하다. 똑같이 생겨 같고 서로 쳐다보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그리고 두 사람의 얼굴에 길자의 얼굴이 군데군데 묻어난다. 역 앞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타는 두 사람. 정미와 진주를 태운 택시가 복잡한 기차역을 떠나 아름다운 풍광 속을 달린다. 잠시 후 드디어 멀리 바다가 나타난다. 여전히 인상 쓰며 창밖만 보던 진주는 바다를 보자 와!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9살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넓고 파란 바다는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파랗다.” 바다를 보는 정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아니 그녀는 무서워하는 것이 분명했다. 지긋지긋한 바다. 영원히 벗어나고 싶었던 바다. 그녀를 항상 울게 만들었던 바다.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는 엄마가 어린 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익숙한 동네에 들어서자 택시가 멈추고 진주와 정미가 내렸다. 맘씨 좋게 생긴 나이든 기사가 인사하는 진주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트렁크에서 큰 가방을 꺼낸다. 힘이 드는지 ‘크응’ 하는 신음소리가 절로 터졌다. 먼지를 일으키며 택시가 떠났다. 덩그러니 두 사람만 길에 남았다. 진주는 멀어지는 택시에서 눈을 때지 않았다. ‘덜그럭’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정미가 트렁크를 끌고 길자의 집으로 향했다. 길자의 집 대문 앞에서 우뚝 멈춰 선다. 진주가 쪼르르 뒤따라간다. 정미,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인다. “엄마, 여기가 할머니집이야?” “응. 맞아.” “근데 왜 안 들어가? 할머니....무서워?” “아니야. 좋은 분이셔.” 정미는 그때야 진주의 손을 잡았다. 진주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주는 아팠지만 꾸욱 참았다. 왠지 그래야 할 거 같았다. 두 사람은 길자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잠수복을 정리하던 길자와 정미의 눈이 마주쳤다. 길자의 무서운 표정에 놀라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진주가 정미의 뒤로 숨었다. 길자는 굳은 표정으로 정미를 노려보았다. 정미 역시 지지 않고 길자를 바라보았다. 진주는 눈을 굴리며 두 사람은 번갈아 훔쳐보았다. 겨울 추위보다 더 찬 바람이 길자와 정미사이에 불고 있었다. “엄......마. 무서워.” 탁! 길자가 잠수복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진주는 그만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다. 쪼그려 앉아 있던 길자가 일어나 잠수복을 빨랫줄에 걸었다. 그러더니 휙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진주야, 들어가자.” 정미가 진주의 손을 잡고 방으로 향했다. 진주는 안 들어가려 다리에 힘을 줬다. “그럼 너 혼자 여기 있을 거야?” 바람이 차갑게 진주의 볼을 때렸다. 댓돌 위에 나란히 놓인 신발 세 켤레가 놓여있다. 방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방안에 앉아 있는 길자와 정미 그리고 진주가 작은 밥상 앞에 앉아 밥을 먹고 있다. 진주는 길자와 정미의 눈치를 보느라 먹는 둥 마는 둥이다. 모녀의 냉기가 어린 소녀에게까지 충분히 전해진다. 벽을 향해 돌아앉은 길자. 그런 그녀를 지지 않고 바라보는 정미. 정미가 진주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주야, 밥 다 먹었으면 잠깐만 작은 방에 가있어. 엄마가 할머니랑 할 얘기가 있어.” “무슨 얘기? 나 엄마 옆에 있을 거야.” “그냥 어른들 얘기야. 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엄마가 조금 있다 갈게.” “싫어. 여기 있을 게. 조용히 암말도 안하고 있을게. 응?” “엄마 말 들어.” 진주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천천히 일어나 방을 나간다. 길자는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복잡하다. 정미, 진주가 나가자 무릎 꿇는다. 정미, 참았던 눈물이 뚝 떨어진다. 한 번 터진 눈물이 주책없이 창피하게 계속 흐른다. 눈물이란 게 참 창피한 것도 모르는 천치바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부탁하는 거 염치없다는 거 알아요. 내가 엄마한테 못되게 굴었어. 나도 알아. 하지만 이 섬을 미치게 떠나고 싶었어. 넓은 세상에서 화려하게 살고 싶었단 말이야. 평생 엄마 고생한 것만 봤는데. 어떻게 내가 엄마처럼 살수가 있어? 엄마처럼 물질하고 농사짓고... 골병들면서 늙으라고?!” “안 그럼?! 밥이 하늘에서 떨어져!” “알아! 아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난 너무 싫었다고! 엄만 내 생각이 어떨지. 내가 어떤 기분인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엄마 물질 가면 올 때까지 암 것도 못하고 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엄마 기다린 거 모르지. 혹시 엄마가 안 오면 어떻게 하나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알아?” “그럼 넌 그걸 잘 알아서 나한테 진주를 맡기러 왔냐? “난 죽을 거 같아도 한 번도 널 남한테 맡긴 적 없다.” 정미가 입술을 꽉 다물며 길자를 바라본다. 길자는 매정히 정미를 외면한다. 언제나 그랬다 왜 그렇게 했는지 모르지만 늘 뜻대로 안 되고 자기 멋대로인 딸이었다. 지금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딸이 정말 밉다. 왜 이러고 사는지. 좀 잘살고 있을 순 없는지.......왜 자신의 모습을 닮아 가는지 산다는 게 참 무섭고 징하단 생각이 든다. 길자에게 거절당하고 방으로 돌아온 정미가 곤히 자는 진주를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불쌍하고 가여운 생각이 울컥 치솟는다. 그녀가 딸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어느새 다시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역시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어디서 나오는지 끝이 없다. 꼭 바다 같다. 그래서 정미는 바다가 정말 싫다. 그날 밤. 진주는 시커먼 잠수복을 입은 할머니한테 잡아먹히는 꿈을 꾼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진주에게 커다란 고래 혹등고래가 다가온다. 고래가 순간 잠수복을 입고 있는 할머니로 변해 진주를 삼켜버린다. 비명도 못 지르고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진주. 어둠과 소용돌이가 그녀의 몸을 감싼다. 새벽. 정미가 작은 가방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서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잠시 걸음을 멈추지만 이내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집을 떠난다. 붉은 해가 뜨고 아침이 밝아왔다, 방문이 열리더니 상기된 얼굴의 진주가 뛰어나왔다. 누군가를 찾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울음이 터진다. 목이 터져라 운다. ‘엄마~~~’울음소리에 놀란 길자가 속옷차림으로 방문을 열고 나왔다. 뭔가 짐작하고 진주의 방문을 왈칵 열어젖힌다. 정미의 흔적은 온 데 간 데 없다. 그사이 진주는 맨 발로 마당을 뛰어 나간다. 쫓아와 붙잡는 길자의 손도 뿌리친 채 대문 밖으로 뛰어간다. 길자는 걱정스럽게 한숨을 내쉰다. “모진 년......” 길자가 물질도 없는 날인데 한 움큼 약을 챙겨 먹다 문득 밖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인다. 어느새 훌쩍이는 진주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먼일인가 문을 열고 내다보려는데 동시에 벌컥 방문이 열린다. 움찔 놀란 길자가 약을 뒤춤으로 감춘다. 진주가 도끼눈을 뜨고 방안을 훑듯 엄마를 찾는다. 하지만 마주치는 건 노한 길자의 얼굴뿐이었다. “할미가 니 엄마 숨겨놨을 까봐 그렇게 노려보냐?” 길자가 마당에 난 쑥을 캔다. 진주가 뒤에 서 그 모습을 바라본다. 잠시 후 진주가 옆에 앉아 길자가 하는 대로 쑥을 캔다. 길자는 진주의 반응이 어이없지만 입술을 꾹 다문다. 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진주가 작은 손으로 손톱이 시커메질 때까지 열심히 쑥을 캔다. 길자가 쑥으로 수경을 닦는다. 진주가 옆에 앉아 그 모습을 본다. “왜 쑥으로 수경을 닦아요.” “이렇게 쑥에 침을 묻혀 안경을 닦으면 물에 들어가도 습기가 안찬다. ” “정말요? 책에 나와 있어요?” “할미도 엄마한테 배웠어.” “할머니도 엄마가 있어요?” “엄마 없는 사람이 어딨어?!” 진주가 길자의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새벽이 되어 속이 아파온 길자가 약을 가지러 일어나려는데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진주를 본다. 길자는 혹시나 진주가 깰까봐 앉은 채로 약봉지를 끌어당겨 약을 먹는다, 진주와 수북한 약봉지를 번갈아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속이 쓰린지 인상 쓰며 손으로 배를 쓰다듬는다. 길자가 조용히 마루로 나간다.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거는데 신호만 가고 받지 않자 음성안내가 나온다. 길자가 하늘을 보며 길게 한숨 쉰다. “어린 거 맡겨 놓고 어딜 싸돌아 다니냐? 내 죄다. 내 죄. 나 떠나가면 저거 누가 보살펴 주나.......세상 참 모질다 모질어. 왜 이리 팔자가 박복하냐.” 오전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끼니도 거른 채 골머리를 않던 길자는 결국 진주를 데리고 민자의 집으로 간다. 이제 그녀는 아껴 뒀던 비장의 무기를 쓸 생각이다. 민자의 가족이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데, 길자가 진주의 손을 잡고 안방으로 들이닥친다. 위풍당당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길자를 보니 낯설고 왠지 두렵다. 길자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신세지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이건 뭔가 커다란 파도가 이 집에 들이닥칠 거란 전조와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직 민자만 길자가 자신의 집에 찾아와 점심을 같이 먹는 게 좋기만 하다. 민자가 제일 큰 계란말이 반찬을 진주 밥 위에 올려준다. 까치집 머리를 한 민호가 진주를 보며 좋아서 헤벌쭉 웃고 있다. “진주 많이 먹어라. 형님도 밥 좀 많이 먹어요. 그래서 물질 나갈 힘이나 있겠어요.” “너나 많이 처먹어. 남 먹는 거 신경 쓰지 말고.” “손녀도 있는데 말 좀 곱게 쓰세요. 애가 서울 가서 선생님한테 뭐라 하겠어요. 울 할머니는 넘 무식해서 하루 종일 욕만 들었어요. 이럴 거 아니에요.” 계속해서 자신을 보고 배시시 웃는 민호가 진주는 너무 싫다. 길자는 민자와 낮부터 시원하게 막걸리를 마신다. 갑자기 술을 들고 온 길자가 의아한 민자는 이상했지만 한 잔 들어가자 마냥 좋았다. 길자가 무섭게 웃으며 민자에게 잔을 건넨다. 민자는 오늘따라 길자가 웃으니 더 무섭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너 나한테 빚 진거 갚고 싶다 했지. 그럼 진주 야를 니 손자며느리 삼아라.” “쟤가 몇 살인데 그런 말을 해요? 지금이 조선시댄 줄 알아요?” 길자가 치마를 들쳐 속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 민자 앞에 내 놓는다. 민자가 펴보니 꽤 많은 액수가 찍혀있다. 잘못 봤다 아들에게 건넸는데 액수가 맞단다. 민자의 가족 모두 놀라는 데 퍼뜩 술이 깬 민자가 화들짝 놀라 통장을 길자 쪽으로 밀어낸다. “내가 얼마나 살겠냐? 손녀 시집가는 거나 보자. 마지막 소원이다.” 민자는 이런 갑작스런 상황이 어이없다, 흥분되는지 자기 손으로 따라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 그렇게 마셔도 취하지 않으니 그게 더 이상할 노릇이었다. 어서 취해 쓰러져 자면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마루에 앉아 어른들 얘기 엿듣고 있는 진주와 민호의 표정이 상반된다. 좋아 죽는 민호와 싫어 죽는 진주다. 할머니의 황당한 말에 진주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민호는 부끄럽기도 하고 신나기도 한 모양으로 연신 입이 귀에 걸려 싱글벙글한다. 진주가 확 민호를 밀쳐 넘어뜨린다. 진주 벌떡 일어나 울면서 집밖으로 뛰어 나간다. 사실 길자는 아프다. 그것도 심각하다. 길자는 동네 사람 누구라도 볼세라 시골의 작은 병원에 혼자 들어선다. 그녀는 병원 안에서도 누가 볼까 연신 주위를 살핀다. 파티션으로 진료실과 병실(침대)이 구분되어 있는 구조의 병실에 들어서야 겨우 안도하는데. 진료 책상에 앉아 있는 의사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차트를 보고 있다. 길자가 맞은편 의자에 앉아있는데 귀엽다는 듯 서른이 다된 의사선생님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린다. “크기가 아직 똑같냐?” “예. 다행이 더 커지진 않았습니다. 약은 잘 드시죠?” “안 빼먹고 먹지. 참 신기해. 그렇게 무식한 어미한테서 어떻게 이렇게 똑똑한 자식이 태어났는지. 내가 볼 땐 너 주워온 자식이 틀림없다.” “근데 전 어떻게 어무이랑 붕어빵으로 닮았을까요?” “나도 그게 신기하다.” 넓은 밭. 머리에 수건을 쓴 할머니들이 쪼그려 앉아 일하고 있다. 작업복을 입은 길자와 민자도 시금치를 캐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힘든 일에도 뭐가 좋은지 서로를 보고 웃기 시작하는 해녀들이다. 손이며 얼굴에 검은 흙이 훈장처럼 잔득 묻어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진주가 길자를 보고 있다. 길자는 아픈 허리를 피다 진주와 눈이 마주친다. 진주가 때를 기다리다 할머니에게 달려온다. 그런 진주를 바라보는데 그놈의 핏줄이 뭐라고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길자와 진주가 앉아 시금치를 보고 있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진주가 팔딱팔딱 앞서 뛴다. 길자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통증을 느낀 길자가 힘겹게 숨을 고른다. 앞서 있던 진주가 길자에게 놀라 달려온다. 길자가 스르르 의식을 잃는데 눈에 어린 손녀가 밟힌다. “할머니!!” 진주가 길자를 안고 울부짖는다. 민호부가 길자를 업고 들어온다. 진주가 울면서 쫓아온다. 의사와 간호사가 분주하게 길자의 상태를 살핀다. 진주가 고개를 무릎에 묻고 울고 있다. 어린 진주가 안쓰러운 민자는 진주를 꼭 안아준다. ‘으앙’ 울음을 터뜨리며 민자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진주가 울자 덩달아 훌쩍훌쩍 민호가 따라 운다. 진주는 자신과 함께 울어주는 민호가 너무 고맙다. 아마 혼자였다면 정말 창피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자는 부쩍 쇠약해졌다. 그녀는 곤히 자는 진주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머리 쓸어준다. 그녀가 빨래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는 진주의 원피스, 티셔츠, 팬티, 양말을 본다. 어느새 손녀가 자신을 찾아온 지 반년이 다 되간다. 아직 딸은 감감무소식이다. 어디 가서 죽지나 않았나? 잠을 못 이룬 날이 더 많다. 이제는 제법 친해져 서로에게 익숙해진 할머니와 손녀. 어쩜 그렇게 똑같이 생겼을까? 길자는 진주를 보며 어렸을 적 정미가 떠오른다. 마루에서 진주의 머리를 묶어주고 시장에서 구두를 사주고 학교 가는 진주에게 손 흔들어 준다. 그 옛날, 정미에게 해줬던 것처럼. 이 녀석도 다 잊겠지. 그리고 날 원망하겠지. 하지만 괜찮다. 그게 내 팔자라면 어떡하겠나. 살아야지. 참고 살아야지. 아파도 참고 슬퍼도 참고 미칠 것 같아도 참고. 그렇게 잘 살아오지 않았나. 길자는 성게 알을 까며 자신을 보고 웃고 있는 진주를 본다. ‘잘 살아야 한다. 제발 잘 살아야한다.’ 소원한다. 진주가 학교체육대회에 시합에 나가기 위해 줄넘기연습을 하고 있다. 일등해서 할머니한테 자랑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진주는 백번을 넘은 뒤 커다란 돌멩이를 한쪽으로 옮겨놓는다. 세 개의 돌멩이 중 두 개가 모였다. 진주가 거친 숨 몰아쉬며 힘들어하다 다시 하나, 둘, 셋...줄넘기를 넘는다. 길자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식은땀 흘리는데. 밖에서 줄넘기 넘는 진주의 목소리 들린다. 그녀는 약봉지를 찾아 약을 꺼낸다. 물과 함께 마시는 데 벌컥 문이 열리고 진주가 들어온다. 길자가 얼른 눈을 감고 자는 척 한다. 진주는 길자의 모습을 지켜보곤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나간다. 가스레인지 위의 양은냄비를 국자로 저어가며 밥을 끓이고 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뜨거운 냄비를 잡으려다 손을 데는 손을 호호 불며 조심조심 죽 냄비를 상에 놓는다. 상에 죽과 함께 김치와 수저를 가지런히 놓는다. 길자가 어느새 나와 부엌문 밖에서 진주의 모습을 보고 있다. 가슴이 저려온다. “할머니! 일어났어요?” “니가 끓였니? 할미 먹으라고? 우리 아기 참말 시집가도 되겠다.” 길자와 진주가 나란히 누워 있다. 진주는 피곤했는지 코까지 골며 잠들어 있다. 길자가 진주의 빨갛게 부어오른 손에 연고를 발라준다. 길자는 진주의 손을, 볼을, 머리를 한없이 쓰다듬는다. “형님!! 어딨소! 형님!” 민자가 정신 나간 사람마냥 맨 발로 뛰고 있다. 길자의 집 마당으로 들이 닥친다. 두여자가 바닷가 불턱에 앉아 있다. 민자와 길자가 나란히 앉아 하늘을 본다. 민자의 눈에서 눈물이 뚝 바다로 떨어진다. 눈물이 바다로 바다로 흘러간다. “민자야.” “왜요?” “민자야?” “왜 자꾸 불러요. 반갑지도 않은데. 누가 들으면 민자가 아니라 임자로 들리겠네.” “너랑 나랑 물질할 때가 젤 좋았지? 죽어서도 그게 젤 그리울 거 같아.” “고마웠다.” “제가 더 고맙죠.” “우리 진주 잘 부탁한다. 불쌍한 애다.” 거센 파도가 치는 바다. 바람이 분다. 옷을 두껍게 껴입은 해녀들이 종종거리며 불턱으로 모여든다. 차가운 바다로 입수하는 해녀들.......길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길자는 수척한 모습으로 방안에 누워있다. 그 주위로 민자, 민호부, 형자, 민호가 앉아 있다. 그리고 길자의 바로 옆에서 진주가 길자의 손을 꼭 잡고 있다. “형님! 일규가 정미 찾았네요. 힘 내시우. 정미는 보고 가야지. 절대기운 잃지 마요.” “민자야, 나 죽으며 내 관 속에 꼭 넣어줘야 할 거 있다. 나 묻을 때 내 관속에 같이 넣어줘. 나 저승 갈 때 꼭 가져 가야하는 물건들이야. 알았지?” 민자, 눈물을 흘리며 보자기를 본다. 보자기를 보는 길자의 눈에도 눈물이 흐른다. 의사의 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다. 정미가 초조한 표정으로 보조석에 앉아 있다, 그녀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다. 차가 집에 도착하자 정미가 미친 사람처럼 뛰어온다. 의사가 그 뒤를 따르는데. 벌컥 문이 열리고, 정미가 들어온다. “엄마........” 민자가 정미의 손을 잡아끌어 길자 앞으로 데려와 앉힌다. 길자는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기적처럼 눈을 뜬다. 그녀가 팔을 움직이는데 힘이 없다. 정미가 길자의 손을 잡는다. 길자가 천천히 정미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정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준다. 진주에게 손을 뻗으면. 진주도 다가와 길자의 손을 꼭 잡는다. 길자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정미와 진주를 본다. 딸과 손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으려는 듯 그렇게 한참을 보다 이윽고 눈을 감는다. “엄마!” “할.......머니!” 따뜻한 봄날.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이렇게 맑은 날이 있나 쉽을 정도다. 길자의 집 마당에 장례준비가 한창이다. 정미와 진주가 상복을 입고 있다, 의사와 민자의 가족들이 모여 있다. 민자와 일규가 길자가 싸 둔 보자기를 풀어 본다. 곱게 접힌 손수건. 앙증맞은 어린이 수경. 배냇저고리 등등 모두 정미의 물건들이다. “이게 뭐냐?” “정미 초등학교 입학 사진이네요. 이건 배냇저고리 같은데요?” 초등학교 입학식. 긴장한 아이들 틈에 서 있는 진주 또래의 여자아이. 코를 훌쩍이다 콧물이 흐르자 가슴에 달고 있던 손수건으로 콧물을 닦는다. 손수건 위에 붙어있는 이름표. '김정미‘ 정미가 무서운지 손수건을 끌어안고 흐느낀다. 정미는 보자기에 싸인 상자를 들고 나온다. 상자가 길자인 것처럼 두 손으로 꼭 가슴에 안는다. 길자의 영정사진 들고 앞서가고. 길자의 관을 든 민호부와 의사 등이 뒤를 따른다. 입술을 앙 다문 진주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떨어진다. 어느새 옆에 다가온 민호가 진주의 손을 잡아준다. 진주가 민호를 본다. 민호의 손을 꼭 잡는다. 민자의 곡소리 울려 퍼지고.. 슬픔의 눈물 흘리며 길자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가족과 해녀들의 행렬 길게 이어진다. “미안해 엄마. 나 이제 다시는 진주 두고 떠나지 않을게. 잘 키울 거야. 지켜봐줘.” 빨랫줄에 길자의 잠수복이 걸려있다. 진주가 민호와 선물을 한 아름 안고 걸어 들어온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정미를 보는 데 정미가 그녀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정미는 길자의 잠수복을 입고 태왁을 들고 있다. 진주가 선물을 바닥에 놓고 숨차게 뛰어와 정미와 와락 포옹한다. 투덕거리며 걸어가는 네 사람 뒤로 푸른 바다가 반짝반짝 빛난다. “아침부터 또 물질한 거야?” “그럼 해녀가 물질하지 뭐 하겠어!” “엄마 점점 말투가 할머니랑 똑같아져. 알아?” “그럼 그 피가 어디 가냐?! 너도 똑같아!” “할머니, 저 결혼해요. 18년 늦었지만 바보 민호한테 시집가요. 할머니가 9살때 점찍어줬잖아요. 축하해 주세요. ” 진주는 먼 바다를 바라보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외할머니. 오늘따라 사무치게 보고 싶다. 끝 어머니와 누님 히비스커스
아찔함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다. 가수 이적은 이걸 아주 잘 아는 사람이다. 음의 끄트머리에서 음을 가늘게 튕겨 올리는 그의 기교가 그것을 드러낸다. 진성과 가성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그 소리는, 섹시하다. 삑사리와 삑사리 아닌 것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이 묘한 음 처리 방식은 부정의 여지없이 매력적이다. 정해진 선을 벗어난 음의 일탈이라고 하면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의 일탈이 그러하듯이 아무래도 교과서에 나올 것은 못 된다. 따라하면 목 나가니까. 따라해 봐서 안다.초등학교 2학년 1학기 즐거운 생활 수업에서 '맨손으로 빌딩 등반하기'를 즐길거리랍시고 소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그곳엔 아찔함이 있고, 아찔함에는 사람을 끄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적의 그 줄타기는 유독 사랑스럽다. 의도적 삑사리라니. 게다가 아무도 따라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반항아적이고, 어긋나 있고, 매력적인가. 이러니 나는 이적이라는 가수에게 빠질 수밖에 없다.‘개드립.’ 내 지인들에게 나를 설명해 달라 부탁하면 아마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이 단어를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부정할 생각도 여지도 없다. 의도였든 아니든 간에 말장난은 내게 있어 일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 버렸다. ‘위로가 필요한 당신, 엘리베이터를 타세요.’ 이 따위의 헛소리들을 틈이 날 때마다 주워섬기는지라. 개드립도 재판정에 서야 할 사유가 된다면 아마 나는 순순히 내 죄를 시인해야 할 테다.내 말장난 뒤에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따라다닌다. 참신한 노잼이라는 비교적 호의적인 평에서부터, 아재(이건 비교적 귀여운 편이다.)나 한국어 낭비, 아무 말 대잔치처럼 명백히 적의를 담은 이야기까지. 어쨌든 호감은 차치하고, 다들 별로 재미없어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다만 아무리 짜증나는 성질의 것이라도 극에 다다르면 인기가 생기긴 하는 모양이다. 나는 이 재미없는 말장난으로 대학교 대나무숲 베스트 댓글란에 꽤 자주 이름을 올린다. 한 번은 어느 인터넷 신문 기자가 그걸 따다가 뉴스에 올리기까지 했으니, 이쯤 되면 도가 텄다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너무 긍정적인 단어 선택인가 싶기도 하지만, 왜, 도둑질에도 똑같은 표현을 쓰는 판에 개드립이라고 해서 못할 건 없지 않나.물론 이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정도의 범행을 저지르려면 범행동기 정도는 있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재미없는 걸 듣고 얼굴을 찌푸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재미있어서.’는 당연히 아니다. 하긴, 그런 걸 보고 즐거워하는 악취미가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그건 제일가는 사유가 되기에는 박력이 좀 부족하다. 그보다는, ‘내가 세상을 보려는 각도의 문제’가 좀 더 박력 있는 주인공의 위치에 적당하지 않을까.'핀트의 묘한 어긋남'이라고 하면 좋을까. 정석적인 위치에서 벗어난 상태로 세상만사를 보면 어디엔가 묘한 틈새가 보인다. 그 틈새에는, 짜릿함이 있다. 마치 이적의 삑사리 줄타기 같은. 그것이 내가 그 사이를 파고들어가는 이유이다. 많이도 안 되는, 약간이어야만 하는 그 약간의 비틀림. 시선의 일탈. 그것이 가지는 그 묘한 마력을 나는 언제나 거부하지 못한다.말장난을 할 때 우리는 그 단어의 표면에 집중하지 않는다. 약간 비스듬하게 눈을 째뜨고 그 단어의 스펙트럼을 본다. 정면 돌파가 아니라 측면 공략이다. 그래야 틈새가 보인다. 그 틈새를 잡고 쪼개어 그 말이 가지는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안 그래도 못생긴 내 얼굴이 부으니까 신문의 부음 기사에 올라올 수준이 되어 버렸지 뭐야.’ 따위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그것이 내가 주목하는 비틀림이다.그나마 글다운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저 비틀림에 집중해 왔다. 어떤 잘 배운 듯한 양반들은 내 글을 읽고서 글에서 키치가 보이네 뭐네 하기도 한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그냥 저 삑사리가 좋다.나는 천부적으로 소심한 반항아였다. 악센트는 소심함 쪽에 두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반항심을 표출하고 싶었으나 소심함 탓에 스스로를 좌절시킨 나의 최종적 선택지가 바로 저 삐딱선이었으니까. 주어진 것을 괴상하게 해석하는 것이 내가 반항심을 표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느 케이블 TV 회사에서 주최한 백일장에 참가한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였다. 그 회사는 한창 디지털 방송 서비스를 런칭하고 있었다. 축복이라도 받고 싶었는지 그 양반들이 내건 글 주제는 ‘디지털 세상’이었다. 교과서 글쓰기 테마로 나오면 딱 적당할 종류였다. 끔찍하게 싫었다. 그래서 나는 ‘디지털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아날로그적 가치들에 대한 회상’을 주제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 결국 ‘나는 디지털이 싫다’라는 말과 함께 글을 마쳤고,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하나같이 내게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다. 나는 그 백일장에서 수필 부문 2위를 기록했다. 아마 삐딱선 중독의 단계까지 다다른 것이 그쯤부터였을 거다.중독이란 단어를 썼다. 그래. 확실히 중독이었다. 어쩌면 반항아의 뉘우침일지도 모르겠지만.나는 확실히 이 비틀림을 사랑한다. 헌데, 이 욕망을, 이 비틀림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요즘 들곤 한다. 내가 좋아해서 이걸 하는 건지, 아니면 이 각도가 아니고서는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건지. 확실치가 못한 것이다. 아무 데서나 아무 때에나 삐딱선을 타 버리면 좀 곤란하지 않은가.밴드를 했었다. 보컬이었다. 잦은 삑사리로 리더의 골머리를 썩게 만드는. 나는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삑사리를 냈다. 고음에서도 냈고 저음에서도 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망치고를 둘 다 혼자 해냈다. 보컬인데 북도 치고 장구도 치고 혼자 다 해냈다. 참 착하기도 한 우리 밴드 멤버들은 내가 삑사리를 낼 때마다 내가 민망하지 않게 한껏 유쾌하게 웃어줬고, 나름대로 우습고 귀여운 별명까지 붙여 주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이것이 밴드 보컬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임은 명백했다. 우리 멤버들이야 웃으면 웃는 거라지만, 관객들도 웃어버리면 그건 좀 곤란하니까. 이 문제도 해결할 겸 노래 실력도 향상시킬 겸 보컬 학원에 등록했다.트레이너는 정말 생각도 못한 진단을 내놓았다. ‘습관적’인 삑사리라는 것이다. 어느 정도 압력이 가해지면 내 목이 습관적으로 삑사리를 내버린단다. 사실이라면 그것 참 끔찍한 습관이었다.이적의 창법이 너무 좋았다. 중학생 때, 지금처럼 노래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부터 나는 이적을 모창했다. 그 매력적인 삑사리까지. 이적을 따라하고 따라하고 또 따라했다. 그러다 보니 목이 그것의 모양대로 굳어 버린 모양이었다. 내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되어 버린 모양새인 모양이었다.어쩌다 말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상황이 늘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들 그렇듯 와글거리며 사나운 말을 주고받다가, 상대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진다. 내 말의 요점이 지금 그게 아니잖아. 그 소리를 들으면 조금 멍해진다. 밀리기 시작한다. 벌어진 틈새를 보다 보니 핵심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측면을 보다 보니 앞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핵심과 앞모습을 보아야만 할 순간에서조차도. 그래. 대화에서 삑사리가 나 버린 것이다. 매력적인, 섹시한 그거 말고, 무대를 망쳐 버리는. 음의 일탈이 아니라 음의 이탈. 이를 마주하는 순간의 관객이 일반적으로 웃음이 아니라 분노로 화답한다는 점은 보통의 삑사리보다도 더 끔찍했다. 가끔 더럭 겁이 난다. 이 비뚤어진 시야를 계속 안고 가다가 어느 순간에는 보통의 대화마저 어려워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음 하나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목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물론 나는 나의 시선이 좋다. 이 묘하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약간’ 틀어진 이 각도가 좋다. 내가 이적의 그 창법을 여전히 좋아함과 마찬가지로.어떤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어조는 옛날 괴기 동화풍의 것이 어울릴 것 같다. 둘이 너무 좋아해서 항상 손을 꼭 붙잡고 다니던 자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손이 서로 붙어버려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게 되었다더라, 뭐 그런. 이 자매는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노력을 좀 해야 할 것이다. 손이 서로 붙은 상황에서 싸우기라도 하면 그거 참 답 안 나오는 상황일 테니. 그 이후에는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워야겠지. 어차피 계속 그렇게 살아가야 할 거라면.내게 요구되는 답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 시선을 계속 사랑하고, 이 스타일을 어떻게 하면 멋지게 써먹을 수 있을까 궁리해야겠지. 평생 붙어있을 거라면, 쓸모 있는 게 붙은 쪽이 나으니까.요즘은 이적의 스타일을 제법 비슷하게 따라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 노래를 해야할 땐 모창을 그만두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의 매력적인 삑사리가 내 창법 구축에 큰 몫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그에 익숙해지고, 컨트롤 능력이 나아졌고, 결국은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아직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목에 가해지는 압력을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무기 중 하나가 되었다. 정석과 내멋대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삐딱한 시선이 그렇듯이.일탈을 시도하다 실수로 한 발짝 더 뻗어 이탈을 해버려도 별 수 없다. 삐끗함에 멈출 발걸음이었다면 진작 멈추었을 테다. 나는 아마 계속 숨 쉬는 듯한 말장난을 할 것이고, 틈새가 보이면 비집고 쪼개보려 들 것이다. 앞에 뭔가 보이면 옆모습을 보려 하겠지. 내가 살아온, 사랑한 방식대로. 내가 살아갈, 사랑할 것이 틀림없는 방식대로.왜냐면, 그게 섹시하니까. 굽기
사랑하는 나의 친구 D에게. 오랜만이야. 어디서 뭐하고 지내냐며 따지듯이 온 너의 편지 제목에 나는 쿡쿡 웃고 말았어. 어디를 가든 항상 주목을 받던 대학생 때 너의 모습이 편지 제목에 고스란히 묻어 있더라. 너는 잘 지내니? 몸은 건강하고? 나도 건너 건너 네 이야기를 들었어. 나와는 여러모로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같이 다닐 땐 넌 주로 네 이야기만 했었지.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 이제는 내 이야기, 들어줄 거지?  대학 졸업 후 너와 연락을 끊었던 건 미안하게 생각해.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서울로 올라간 너와는 달리,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학점 관리에 소홀해 취업에 실패한 나는 작은 공장에 취업을 했어. 대학 다닐 때 휴학을 하고 작은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일을 했었는데, 이게 내 적성에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루 중 근 10여 시간을 똑같은 자세로 똑같은 일을 하는데 몸은 힘들어도 왠지 마음은 편하더라. 내 분수에 맞는 것 같았어. 그래서 주저 않고 졸업 후 공장으로 들어갔어, 물론 이력서에는 졸업한 고등학교만 적었지. 아주머니들의 텃세, 불량률, 만성 통증, 더위, 추위 등등은 힘들었고 또 지금도 힘들지만 어찌어찌 10년을 넘게 버텨왔네. 너도 알다시피, 나 원래 참는 거 잘 했잖아.  여기 공장 관리자 중에 나와 비슷한 나인데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남자가 있었어. 보통 현장 관리자들은 나 같은 작업자들을 신경도 안 쓰거나 무시하기 마련이거든, 근데 이 사람은 달랐어. 한여름 기계 열기에 땀을 주르륵 흘리며 부품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어느 샌가 내 옆에 선풍기를 갖다 놓고 간다거나, 손가락에 물집이 잡혀 잠시 장갑을 벗고 있으면 슬며시 반창고를 갖다 주고 가는 뭐 그런 것들 있잖아. 아주머니들이 그 사람에게 나와 잘해 보라며 농담조로 말을 하곤 했다던데, 그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지었대. 그 미소 때문인가, 희미한 인상의 그와 나도 모르게 희미하게 시작했던 것 같아. 그것도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야 말이야. 그는 말이 거의 없었어. 사귀는 사람끼리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면 알게 모르게 티가 나기 마련일 텐데, 아주머니들 아무도 눈치를 못 챌 만큼 그는 티를 내지 않았어. 그저 공장 마당에 나타난 사마귀를 보고 놀라면 어디선가 나타나 손으로 슥- 치워주는 게 다였어. 아니다, 내 손에 미지근한 자양강장제 드링크를 몰래 쥐어주고는 사라지곤 했지. 드링크가 미지근했다며, 왜 시원한 걸로 주지 않았냐며 퇴근 후 투정 섞인 물음을 내비치면, 그는 나에게 줄 타이밍을 재느라 바지주머니 안에 내내 넣고 다녔다며 씩 웃었어. 정말 좋았어. 시골 출신인 그 사람은 순박함 그 자체였어. 그의 미소를 닮은 아이를 낳고 싶어 졌어. 정말로. 그에겐 남에게 말 못할 사정이 있었어. 20살 때 멋도 모르고 삼촌에게 명의를 빌려줬는데, 삼촌이 그의 이름으로 장사를 하다가 잘 안됐나 봐. 그의 앞으로 큰 빚이 생겨버린 거지. 외삼촌은 야반도주를 해버렸고, 그 빚을 오롯이 그 혼자 감당하다보니 많이 힘들었나 봐. 단 둘이 있을 때 그는 혼잣말로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내뱉곤 했어, 나는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가로 저으며 괜찮다고 말했어. 그리고 나 역시 대학 학자금 대출이 아직 산더미만큼 남았다며 그를 위로했어. 나는 정말로 괜찮았어. 그와 먹는 길거리 떡볶이도 맛있었고, 그와 함께 손 잡고 타던 동네 공원의 그네도 재밌었거든. 그의 팔을 베고 잠이 들 때면 평생 이렇게 잠 들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부모님 두 분 다 안 계셔서 외로운 마음에 그에게 의지를 한 건 절대 아니었어. 나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니까.  그래서 내가 먼저 용기를 냈어. 연차를 내고 시내 번화가에 있는 액세서리 가게에 들러 반지를 한 쌍 샀어. 반지 안에는 조그맣게 ‘스테인리스’라고 영어로 각인이 되어 있더라. 녹이 슬지 않고 영구적으로 낄 수 있는 스테인리스 반지가 마음에 쏙 들었어. 비록 아무 무늬는 없지만 색깔만은 영롱한 ‘골드’인, 도합 1만 원짜리 반지를 고이 사서 바지 주머니 안에 넣고는 꽃집으로 향했어. 가장 예쁘게 생긴, 프러포즈용 장미꽃 한 송이를 포장해서 들고 버스를 타고 그의 자취방으로 갔지.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쓰레기를 내놓고 나니 어느덧 그가 퇴근할 무렵이 되었어. 혹시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시들라, 음료수 병을 깨끗이 씻어 물을 채워 장미꽃을 꽂아 두었어. 바지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수건으로 조심히 닦았지. 나의 스테인리스 반지는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아주 고급스럽게 반짝이고 있었어. 가슴이 왠지 설레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 방 안에 서서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거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했지. 그의 손에 반지가 맞지 않으면 어떡하지? 바꾸러 갈 때 버스비가 더 들 텐데, 아니 교환은 해 줄까?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해야 프러포즈를 멋있게 하게 될까? 나랑 결혼해 줘. 빚은 같이 갚아 나가면 돼. 아니 아니, 좀 더 멋있게 해야 그가 감동을 받지! 혼자 연극을 하듯 그에게 할 말들을 천장에 대고 수백 번 읊조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어. 진짜 그 날 오지 않았다니까. 다음날 공장에 출근해서야 알았어. 그가 자취방에 오지 않았던, 아니 오지 못했던 이유를 말이야. 그가 퇴근 전 프레스 기계가 고장이 나 살펴보다가 기계가 오작동하는 바람에 그 사이에 껴 버린 거야. 시체는 일찍이 치워버려서 없었고, 단지 그의 것으로 보이는-하지만 그의 것이라고 믿기지가 않는-머릿가죽 조각과 한 움큼도 안돼 보이는 머리카락 그리고 피가 기계 위에 있었어. 나는 오히려 차분해졌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가족이지만 가족보다 못한 남 때문에 큰 빚을 지고, 아등바등 살려고 갖은 노력을 해 보았지만 결국은 살지 못하고 죽은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그의 모습은 단지 신체 일부분 뿐이라는 것.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그가 실천하고 갔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실소가 나와 버렸지. 내가 사둔 반지라도 미리 끼고 있었다면 그는 마음이라도 부자인 상태로 떠났을까?  그가 흔적을 남겼던 프레스 기계는 캄보디아에서 온 22살 청년이 조작하고 있어. 나는 그 기계를 등지고 서서 절단된 부품들을 선별하고 가지런히 상자에 담아 차곡차곡 쌓는 일을 해. 이젠 내가 미지근한 음료수 따위를 아직 앳된 얼굴의 캄보디아 청년에게 건네고, 청년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어 주지. 마당에 간혹 나오는 각종 벌레들을 딱딱한 안전화로 밟아 터뜨려버리는 덴 거리낌이 없어. 불가에서 살생은 금하라고 하지만, 내가 행한 만큼 돌려받는다는 인과의 법칙이 있다지만, 아무 이유 없이 내 사랑하는 남자를 살생한 저 기계는 멀쩡히 잘 굴러가고 있잖아? 인과응보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벌레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어. 오히려 사마귀는 날 향해 앞다리를 번쩍 들어서 위협을 하지 않겠어? 난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말이야...... 죽이는 게 더 나은 존재야.  어때? 내가 들었던 너의 이야기를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꾸며 봤는데 마음에 드니? 신문 기사에는 동료와 말다툼 끝에 그 동료를 홧김에 찔렀고, 평소 남자친구의 죽음 때문에 우울증을 겪어서 힘들어 했었다고 적혀 있더라? 마지막으로 사겼던 남자친구를 정말로 사랑하긴 했나봐? 우울증이라니. 내가 알던 D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서 말이지. 그러게 평소에 언행 좀 조심하지 그랬어. 대학 다닐 때도 그렇게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이간질 하고 다니더니, 공장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도 그랬나보네? 근데 그 아주머니들이 그런 면에서 너보다 한 수 위인 건 몰랐구나. 네 맘대로 잘 안되니 칼을 휘둘러? 나이가 들더니 여우 같던 너의 모습은 사라져버린 것 같네. 바로 도구를 써 버리다니 말야. 밤마다 네 자취방으로 드나들던 남자들 중 한 사람이라도 기억나는 얼굴은 있어? 아 맞다, 그 남자들 중에 H선배의 남자친구도 있었는데 설마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 탄원서는 절대 못 써줘, 네가 잘못한 행동은 네가 달게 받아. 나는 인과응보를 믿거든, 네가 부모님 돌아가신 보험금으로 공부 안하고 놀러다닐 동안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갔어. 너와 달리 나는 한 남자만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어. 솔직히 너 같은 존재, 역겨워. 다시는 그런 기분 나쁜 편지 보내지 마.     너의 S로부터. 머임마
백호 꿈을 꾸고 이쁜 딸을 낳은지 1년이 지난 날 매일이 너무 행복했다. 신이 계시다면 내게 인생의 큰 행운을 선물해주셨다. 그렇게 육아에 전념하며 보내다가 꿈을 꿨다. 꿈속에서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있었다. 교복을 입고 점심시간에 교실 뒤에서 친구들 여덟명과 당시 유행하던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 노래에 맞춰 사바사바를 외치며 한손으로 허벅지를 '탁탁탁' 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학교 축제가 일주일후에 열리는데 반대표로 참여하게 되어서 틈나는대로 연습을 했다. 나의 단짝인 친구 '혜은'이는 동작이 안되는 부분이 있으면 나에게 개인지도까지 해줬고 함께 연습을 하며 추억을 쌓았다. 늘상 보충수업을 연기하고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한켠에서 연습을 하다 지치면 학교 앞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오뎅, 순대를 주문해서 먹었다. 뭐가 그리도 할말이 많고 좋은지 매운 떡뽁이를 먹으면서도 웃음도 끊이질 않고 말도 끊이질 않는다. 분식집에서 나와 혜은이와 집으로 가는길에 그녀는 나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은미야. 넌 원하는 대학 가고 졸업하면 뭐하고 살거야?" "글쎄~ 어릴적이나 뭐가 되고 싶다. 그런게 있었지. 뭐 지금 난 그후까지 생각은 안해봤어. 일단 지금은 연세대학교 합격하는것이 우선이니깐~" "그래? 난 있잖아~대학보단 노래연습 좀 하고 나도 룰라 채리나언니처럼 랩도 하고 춤도 잘추고 싶어. 졸업하면 바로 서울로 상경하려고." 혜은이는 가슴 벅찬 미소를 지으며 마치 미래를 상상하는것처럼 보였다. 꿈을 가지고 산다는건 행복과 희망을 동시에 품으며 살아가는거라고 생각한다. 꿈이 없으면 인생의 종착지까지 부정적이거나 아무런 기대 없이 무의미한 삶일 것 같다. 서로의 꿈을 우리는 말로 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힘껏 응원하고 있었을 것이다. ******* 기다리던 축제날이 되었다. 가을날이라 단풍잎이 붉게 물들어 우리들의 꿈 색깔처럼 보였다. 유명연예인과 가수들도 초대되어 검은색 길다란 차 몇대가 학교 운동장까지 들어와 주차까지 한다. 하지만 순서가 될때까지 차안에서는 그 누구도 내리지 않았다. 재학중인 학생들의 초대로 학교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군인아저씨도 보이고 갓 대학생이 된 사람들도 보이고 옆학교의 학생들과 주변 여러학교들의 학생들로 붐볐다. 학교에서 항상 클래식 음악만 들려주다가 오늘은 특별히 유행가요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더 좋은건 오늘만큼은 사복을 입고 엉성한 화장도 할 수 있다. 교복에서 벗어나 약간의 어른티를 내본다. 그래도 고등학생은 고등학생으로 보인다. 드디어 축제가 시작되었다. 우리 반 차례에 앞서 다른반 학생들이 준비한 무대가 펼쳐졌다. 화음을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우리반처럼 유행가인 디제이덕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특히, 이렇게 춤을 추면 축제를 구경 온 사람들의 환호성이 저멀리 다른 우주행성까지 들릴것 같았다. 단연 춤이 인기다. 축제의 사회자는 재미없고 무뚝뚝한 학생주임인 체육선생님이었다. 소개할때 목소리가 우렁차게 해서 시원시원하지만 애드립이란건 하나도 없고 재치도 없다. 앞에 종이에 쓰여있는데로 읽을 뿐이다. 그렇지만 축제분위기는 점점 젊은이들의 열기가 뜨겁게 달궈지면서 무르익어갔다. 기다리던 중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아 그럴꺼야 나를 아낄려고 굳이 내게 말 안하고 멀리 떠나갔던가 아 그럴꺼야 나를 아낄려고 굳이 네게 말 안하고 멀리 떠나갔던가 아 그럴꺼야 나를 아낄려고 굳이 네게 말 안하고 멀리 떠나갔던가 아 그럴꺼야 나를 아낄려고 굳이 네게 말 안하고 멀리 떠나갔던가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천사를 찾아 사바 사바 사바 ` 노래에 맞춰 여덟명이 똑같은 동작으로 춤을 춘다. 혜은이는 룰라의 채리나처럼 카리스마가 돋보였다. 얼굴도 까만콩처럼 까무잡잡해서 실제로 학창시절에 채리나 닮았다는 소리를 듣곤 했었다. 나는 혜은이가 특별지도까지 해줬는데도 내몸이 아닌 듯하면서 내몸이 알아서 가볍게 춤을 추었다. 우리가 준비했던 무대가 끝이 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채리나. 채리나`를 외쳤다. 축제에 모인 모두가 혜은이를 보고 앵콜을 외치기까지 했다. 혜은이는 내게 말했던 그 순간처럼 굉장히 벅찬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날 보며 환하게 웃으면서 눈물이 또르르 흘렀다. 그리고는 일상처럼 아기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혜은이는 지금쯤 뭐하면서 살고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야했기에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겼다. 요즘 많이 한다는 인스타그램에서 혜은이 이름을 검색해봤다. 혜은이 이름이 흔한가보다. 그래도 일일히 클릭해서 얼굴만 확인해보고 또다른 혜은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보는걸 반복했다. 하지만 끝내 찾지는 못했다. 이번엔 페이스북에서도 찾아보았지만 가입을 안한건지 찾을수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몇명의 연락처는 알고 있었기에 연락을 해보았다. "여보세요." "지은이니? 나 은미야. 오랜만이다. 잘지내지?" "오~ 은미. 오랜만이네. 나야 뭐 그럭저럭 지내지. 네도 잘지내고?" "응. 애키우면서 잘지내. 나 사실은 물어보고 싶은게 있어서... 혹시 혜은이 연락처 아니?" "어떡하지.나도 혜은이랑 연락 안하고 지내서..." "그렇구나. 그래. 우리 언제 시간 되면 보자. 안본지도 오래 됐네." "그러자~우리도 언제 만나자. 오랜만에 통화인데 미안한데 나 지금 사무실 들어가야해서 다음에 또 통화하자. 수고해." "응. 그래. 너도 수고해." 다른 친구에게도 연락을 해보았지만 혜은이의 근황은 알수가 없었다. 졸업하고 한번도 펼쳐본적 없는 졸업앨범을 책장에서 먼지를 툴툴 털어내며 꺼내었다. 졸업장이 날카로워 한장 한장 조심스럽게 넘겨보다가 맨 뒷장에 있는 혜은이 주소와 연락처가 보였다. 적혀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해보았더니 없는 번호로 안내되었다. 주소는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옛날주소여서 바뀐 도로명주소로 검색이 되어 안도의 숨을 후~하고 내뱉었다. 주말에 남편과 함께 혜은이가 살던 집으로 향하였다. 그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내가 살았던 집이 있었는데 집은 온데간데 없고 사우나건물이 지어져있었다. 어릴적 기억이 지워진것처럼 찬바람이 머릿속과 마음속 공간에 불어와 허전하고 씁쓸해진다. 마치 내가 살던 집이 영원할거라고 믿었던 순수한 감정의 파괴를 일으키는 듯 했다. 한참동안 큰 규모의 사우나건물 앞에서 공허함이 가득한채로 쳐다본 뒤에 혜은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족히 30년은 되보이는 다가구주택 앞에 다다랐다. 건물의 페인트는 벗겨지고, 깨진 창문의 틈새는 천으로 돌돌 막아져 있다. 집과 집사이의 거칠거칠한 촉감의 시멘트 계단이 훤히 보이고, 진갈색의 테두리가 두터운 유리문을 지탱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살고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공터처럼 텅 빈 느낌이다. 차에는 혼자 내려 c동 104호만 찾았다. 남의 집 방문에 초인종을 누르는데도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스스로 진정시키고 초인종을 꾹 눌렀다. '띠리리띠리리리' 새소리 비슷한 큰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요즘도 이런 초인종 소리를 사용하는구나 나름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는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초인종을 누르고 싶었지만, 반감이 느껴지는 소리에 누르지 않고 한손을 살짝 꽉 지은다음 문을 똑똑 두들겼다. 역시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또 한번 놀랐다. "누구세요? 거기 우리집인데." "안녕하세요. 혹시 이집에 혜은이라는 사람이 살고있는지 찾으러 왔는데요. 오래전 주소라서..." 검정색과 흰색이 섞여 어두운 회색, 머리색을 지닌 중년여성은 나를 보며 갑자기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름이 더 깊게 보이며 부어있던 눈이 더 부풀어진다. "우리 혜은이 친구에요?" "네. 혜은이 고등학교 친구 은미라고 합니다." "우리 혜은이한테 다녀오는길이라우. 납골당에..." "네?" 너무 놀란나머지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거지? 혜은이가 뭐? 납골당? 분명히 내 꿈속에서 나타나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는데 이세상 사람이 아니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혜은이 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눈물을 훔치시며 그간의 얘기를 꺼내셨다. 아~~ 혜은이는 그렇게 지냈었구나. 진작 이렇게 찾아와서 연락하며 지낼걸... 후회가 파도치듯 훅 밀려왔다. 혜은이는 고등학교 졸업후 서울에서 자취하며 가수 준비를 하면서 몇번의 사기를 당했고 화장품 가게나 고깃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 유지를 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가수의 꿈은 절대 놓을수가 없었다고.. 어렵게 기회를 잡으면 소속사에서는 무리한 성형과 다이어트 요구를 했고, 회복기간을 거치고 나면 레슨비를 요구했다고 한다. 점점 나이가 드니 걸그룹 결성도 어려워지고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흘러가다 극심한 우울증으로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오늘이 혜은이가 세상을 떠난지 1년되는 기일이었다. 그동안 혜은이는 힘들었을텐데 나만 행복하게 지낸것 같아 미안했다. 눈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이제서야 친구를 찾아왔는데 다시는 만날수 없다니... 너무 늦게 찾아와서 미안해. 꿈속에선 혜은이가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같은 무대에서 섰던 여덟명 중에서도 관중들은 오직 혜은이만 바라보았다. 유난히 눈부시게 빛이 나던 별이었다. 아름다운 별, 내 친구 혜은이... 그 곳에서는 행복하길... 이쁜다인
"아이고, 어떡하니. 어떡하니. 앤, 너네 엄마 어떡하니."나를 붙잡고 한참을 운다. 그러나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어쩜 저렇게 고생만 하다가 떠나니. 속상해서 어떡하니."한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저 사람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나를 쳐다 보고 있는 거겠지. 저주, 증오, 절망 등... 나도 그를 노려보았다. 그도 나를 노려보았다. 상중이다 보니 무언의 시선으로만 서로를 탓할 뿐이다. 똑같이 상복을 입고 있으나, 서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아들로, 나는 딸로 상복을 입었다. 아들인 그도, 딸인 나도 울지 않았다. 장례가 모두 끝날 때까지. 그의 엄마는 떠났고, 나의 아빠는 곁에 있다. ...수능을 치루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수능이 끝나자 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점수 맞춰보기? 틀린 문제 뭔지 확인하기? 내 점수로 어느 대학교 갈 수 있나 확인하기? 아니다. 엄마와 약속한대로 영화관에서 수능일에 영화를 봤다. 그리고 바로 영화관 근처 알바생을 모집하고 있다는 가게를 교복 입은 그 상태로 들어가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제가 아직 고 3이에요. 수능은 끝났어요. 학생이라 좀 부담스러우시죠? 학교에서 일찍 마치니까 저녁마다 와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서요. 이력서는 여기 적어왔어요. 딱히, 이력이라고 할 건 없지만 싹싹하게 일 잘할 자신 있어요. 열심히 할게요. 사장님. 제가 학비를 마련해야 해서요. 동생이랑 엄마도 돌봐야 되고..."삼겹살집, 떡볶이집, 백화점, 마트, 공장 알바... 시간을 쪼개고 쪼개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학비 마련을 위해서. 뒤늦게 학교에선 경사가 났다. 그럴만도 하다. 이런 시골 학교에서 서울 상위권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라니. 나의 최대 관심사는 '돈' 이었다. 대학교를 들어가서도 수업을 열심히 듣되, 공강시간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과외를 했다. 단칸방에서 엄마와 동생이 고생하고 있는데 깔끔한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려니 엄마와 동생에게 너무 미안했다. 기숙사에는 바퀴벌레와 개미가 없었다. 그것만으로 난 너무 감사했고 행복했다. "엄마, 여기 진짜 좋아. 깔끔하고. 어서 내가 성공해서 엄마랑 동생도 같이 서울에서 살자. 힘들지? 조금만 더 힘내."나만 너무 편하게 지내는 것만 같아 더 이 악물고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4년 전액 장학금, 외부장학금까지 받아 서울 대학 생활이 마냥 어렵고 힘들지만은 않았다. 시골 촌뜨기가 나름 성공한 것 같기도 하고. "앤, 나다. 잘 지내냐?"오랜만에 걸려온 전화. 아빠다. "서울이지? 이야기는 들었다. 혹시, 오늘이나 내일 오전 일찍 여기 좀 내려와 줄 수 있겠냐?"새엄마와 살다 홀로 단칸방에 사시는 엄마네 집으로 온 뒤, 단 한번 연락 없으셨던 분이. 이제서야 연락을. 그리곤 무턱대고 지방으로 다시 내려와달라니. 무슨 경우인가. "왜요?""엄마가 돌아가셨다.""...엄마? 엄마? 새엄마요?"...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연락을 받자 마자,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엄마, 그 여자 죽었대. 잘 죽었어. 그렇게 나쁜 짓을 하니 천벌을 받잖아. 권선징악. 엄마 아프게 하고, 나랑 동생 힘들게 하고. 잘 죽었지. 잘 죽었어."대낮,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즉사라고 한다. 무단횡단도 아니었고, 운전자가 술에 취한 상태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상황. 잘 죽었다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목소리도 좋지 않으셨고 나 또한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여자임에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그 여자가 내게 해 준 말이 생각났다. "앤, 넌 내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겠지. 그런데 그 마음만큼 나도 죽을 각오를 하고 네 아빠 선택한거야. 엄마가... 그러니까 너한텐 외할머니지. 외할머니가 말렸어. 부산에서 용하다는 점집에 갔는데 네 아빠랑 재혼하면 내가 죽는다고 그랬대. 그런데도 재혼할거냐고. 그럴만도 하지. 내가 배아파 낳은 아들도 남편이 죽으니 빼앗기듯이 할머니, 할어비지가 데려가버렸고. 외할머니 입장에선 딸인 엄마의 인생이 걱정인거야. 넌 이해가 안되겠지만, 그렇게 반대하셨는데 난 죽어도 좋다며 너네 아빠 택한거야.""...앤, 난 사랑이야."사주, 그리고 권선징악. 엄마에게 자주 이야기 했었다. 새엄마는 벌받을거라고. 우리 가정을 파탄내고 절대 행복할 수 없을거라고. 권선징악. 그러나 그녀가 죽음으로서 그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가슴을 자꾸 먹먹하게 했다. 순식간에 나를 이 악물고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던 증오의 마음의 방향을 잃었다. 그토록 증오했던 사람이었는데, 내 목숨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증오하던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죽었는데 왜 후련하지 않지? 왜 먹먹하지? 왜일까...그녀가 죽고 사십구재를 지내던, 정확히 그때부터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고 난 후, 감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십구재 마지막 그 날,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그 곳에선 행복하시라고. P.S : 연재를 계획하고 있으며, 제 이야기는 처음으로 써 보네요. ^^ 빨강머리 앤에 착안하여 제목은 그렇게 잡았습니다. 빨강머리 앤 처럼 늘 긍정을 품에 안고 있답니다. 드라마를 보면 시시할 정도로 제 인생이 꽤나 드라마틱하답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01 헤어지지 마세요! 제발!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0359#02 그녀를 죽여주세요!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0510#03 새엄마가 엄마가 될 수 없는 이유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1261#04 최고의 복수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1566#05 그 남자의 사정 그리고 그 여자의 사정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1568#06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는 이유https://mystory.samsungcard.com/openBoard/21920 억수로
어느새 반백살이 넘어선지도 3년이 지나간다. 인생의 전환점이라 했는가 보통 인생의 전환점은 환갑이 되는 시기라 한다. 왜 환갑일까? 느끼기엔 예전엔 환갑잔치를 많이 했지. 지금은? 거의 없어지고 이제 고희연으로 옛날엔 환갑잔치를 한 이유가 60세 까지 1갑자 살기 힘들었지 때문이겠지 지금은 60세도 청춘이란다. 그러나 60세가 되는 시기가 퇴직하는 시기라.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수 있을것이라 본다 퇴직. 60세 그 이후엔? 과연 나는 아직도 시간과 날이 많이 남아 있는데? 그동안 쉼없이 달려왔다. 그런데도 뭐하나 이룬것은 없다. 모든 세상 부모들이 그럴까? 힘들게 자신보다는 직장을 그리고 자신보다는 가정을 생각하며 달려왔을거야 가진거 없어도 자식이 자라는 모습만 봐도 흐믓하고 행복한 시간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고지식한 내성격. 엄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우리 칠남매 큰형님이 내초등학교 들어갈때 제대를 했는데 강원도 철원에서 전라도까지 택시를 타고온적이 있었다. 70년대중반 방구석에 무참히 두둘겨 때리던 아버지. 내가 봐도 커서 생각해보면 미친짖이었다. 택시를 타고 오다니. 그땐 집이 어느정도 잘 살았다. 내 고등학교 졸업후 대학 1년때 기울기 시작한 집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모든게 넘어갔다. 난 군대를 지원해서 가고 아버지를 보러갔을때 아버진 병원에서 시체를 씻어주고 있었다. '여기는 왜왔어' 화를 내더니 군대간단 말도 못하고 왔다. 우리집은 파란만장하다. 공부잘하던 누님은 대학을 가고자 했으나 여자가 무슨 대학. 그러자 가출 큰누님은 아버지가 무서워 10년을 집에도 안왔으니 장남은 그 좋은직장 퇴사하고 이민을 가고 난 이런 아버지를 담지 않을려고 무단한 노력을 했다. 그래서 결혼후 울 자식들에게 화를 안내고 회초리를 들려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성격들이 나오나 보다 큰아들이 중 1때 나도 모르게 또 매를 들자 아들이 울면서 하는 말. '아빠 얘기좀 해' 아빤 너무 급한 성격 왜 우리에게 다그치는지. 너희가 한번 말함 들어야하는데 말을 안들으니 아빠가 그런거 아니야? 차분히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때부터 매를 들지 않았다. 이젠 아들들과 대화도 많이 한다 그런 아들들이, 벌써 군대에 가고 대학을 다니고 이렇듯 가정과 직장 쉼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아직도 달려야한다 반백살이 넘었으면 인생의 전환점을 겪어 내인생 설계를 해야하는데 아직 그럴 여유가 없다 작년엔 위암 판정도 받았다 얼마나 쉼없이 달려오고 직장에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업무와 여러가지 일들을 하지만 쉴 시간이 아직도 없다. 위암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빨리 가지면서 내인생을 설계하고자 하지만 아직 대학들을 다니는 아이들. 그리고 결혼 그때까진 내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가질 시간이 없다 나뿐만이 아닐거라본다 우리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 반백살시 넘어 환갑이 되어서도 쉴새없이 달려야한다. 그러나 인생의 전환점을 다른뜻으로 해석하자. 아직도 달려야하지만 마음을 편히 가져보자구 직장에서 스트레스 떨쳐버리고. 마음편하게 생각하면서 일해보자구 다짐한다 그러먼서 퇴직을 염두한 인생설계도 해보자. 반백살도 더 넘어 대학을 또한번 가보자 원서도 냈다. 머리가 뇌가 잘 따라줄까? 그래도 도전해보기로 한다. 우리모든 부모.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쉼없이 달려왔지만 우리가 죽을때까지 달려야하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그 인생을 남이 살아주는것이 아니므로 마음 편한 인생의 전환점이 언제인지 돌이켜보고 그 전환점을 생각해 이행해보자. 도시정벌
어린날의 자전거                                                          유 재 용  6박 7일이라는 포상휴가 첫 날. 그 황금 같은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한 결과 친구들과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게 가장 뿌듯하리라 생각했다. 집 근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하여 자전거를 타고 나가려던 나를 어머니께서 만류하셨다. ‘어두우니 사고가 날 것 같다.’는 매번 똑같은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씀. 그러나 친구들과 만나 마실 맥주 생각에 어머니의 말씀은 들리지 않았다.약속장소는 집에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올림픽공원. 갑자기 비가와도 끄떡없는 공원 앞 자전거주차장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묶어놓고 친구들을 만날 계획이었다. 해가 져 꽤 어두컴컴한 밤이었기에,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았다. 밤이라고 해도 여름은 여름, 한낮의 햇살을 받은 지면은 더웠고 팔을 스치는 공기는 꽤나 습했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시간을 즐기는 입장에서 밤공기는 한없이 산뜻한 피서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달리는 페달도 내 마음만큼이나 가벼웠다. 옆 도로의 자동차들마저 모두 어딘가로 놀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평소 같으면 소음이라고 여길 자동차 소리도 페달 위에서 달리는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즐거운 비명으로 들렸다. 맥주 첫잔이 휴가 첫날처럼 짜릿하게 미끄러져 들어가고, 한참 후 그럼 다음 휴가를 기약하자는 마지막 잔을 아쉽게 내려놓고 온 사이, 자전거는 나를 떠났다. 언제나 당연하게 나를 기다려주던 자전거는 거짓말이라도 하듯 사라졌다. 어머니께 전화로 이 사실을 말씀드리고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갈 때, 수많은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누군가 묶어놓은 자전거를 절단하여 가져간 것일까, 아니면 이제까지 그를 지켜주던 자물쇠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까. 지난 시간동안 변할 만큼 변한 나와 그 녀석은 흘러간 시간만큼 연(緣)이 어긋나 이제 더 페달을 밟을 수 없게 된 걸까. ‘함께 공원에 참 많이 왔었는데, 이제는 같이 올 수 없겠지.’하는 생각은 가뜩이나 취기가 돌아 무거워진 발걸음을 붙잡았다.처음 그 자전거를 만난 건 15년 전, 한창 어린이용 두발자전거에 달았던 빨간 보조바퀴 두 개를 제거하고 다시 걸음마를 배우는 심정으로 쉴 새 없이 넘어지던 때였다. 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중심을 맞춰가며 방향전환이 가능하게 될 무렵, 아버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은색 21단 기어변속 자전거를 선물해주셨다.그 당시 자전거는 나와 함께 하기엔 너무 컸다. 조절 가능한 안장 높이를 최대한 낮췄으나 두 다리를 쭉 뻗어도 지면에 닿을 수 없어 굉장히 불안했다. 멈춰 서 있을 때 한쪽 다리로 위태롭게 자전거의 무거운 몸통을 지탱해야 했지만, 커진 바퀴 덕에 훨씬 높고 넓은 시야에서 운전할 수 있었고, 그 덕에 흡사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곤 했다. 그와 함께 나의 ‘운전’ 기량은 차차 향상되었고, 그는 나를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해주었다. 21단 기어변속으로 평소에는 오를 엄두도 못 내던 가파른 오르막길도 문제없었다. 시작은 아파트 앞 놀이터였지만 자전거는 올림픽공원, 한강 등 가보지 못한 여러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2년간 우리는 단짝 친구가 되어 여기 저기 쏘다녔다.그렇게 한창 어린 날의 추억을 만들던 때에, 갑작스런 이별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아버지의 회사 발령으로 온 가족이 인도네시아라는 생소한 나라로 떠나게 되었다. 당시 어렸던 나에게 인도네시아라는 나라로 향하는 것은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컸다. 자전거와 함께 인도네시아에서 살게 될 집 주변부터 서서히 새로운 곳을 탐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치안이 좋지 않은 인도네시아에서 자전거 탈일은 없을 거라며 그를 한국에 놓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여름 방학 동안 잠시 한국에 올 때면 제일 먼저 자전거가 잘 있나 확인했다. 용케도 자전거는 먼지를 푹 뒤집어쓴 채 아파트 복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는 뿌연 먼지로 덮여졌고, 바퀴 바람은 다 빠져버렸지만 쓱싹쓱싹 마른 걸레로 닦아내고 공기 펌프로 타이어에 공기를 채워 넣으면 마치 새 생명을 불어넣은 것처럼 자전거는 쌩쌩 잘도 달렸다. 테니스를 치러 갈 때, 수학 학원에 갈 때, 영화관에 갈 때, 나는 대중교통 대신 자전거를 택했다. 나에게 커서 버거웠던 자전거는 어느새 내 몸에 딱 맞았고, 나의 이동수단 첫째는 늘 자전거였다.그 후 미국으로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 한동안 한국에 들어올 수 없었다. 인도네시아 국제학교에서 여러 시험들을 치러야 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에서 입학 허가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큰 여행가방 두 개를 양손으로 낑낑대며 한국으로 돌아온 나를 처음으로 맞이한 건 바로 복도에 그대로 서 있던 자전거였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쭉 그 자리에 있었기에 더 이상 대수롭지 않았다. 마치 베란다 밖 풍경을 보듯, 언제 봐도 새로울 것 없는 기억 속의 배경이 된 것이다. 이제는 그 녀석과 함께 달릴 수 있었다. 자전거는 먼지가 쌓이고 고무바퀴가 갈라져 바람이 잘 세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에게 시간은 비껴가지 않았다. 사탕을 입에 물고 학원에 가던 조그마한 나는, 이제 비싼 미국대학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영어 꽤나 하는 해외파 과외선생님이 되어 이곳저곳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어느새 키는 훌쩍 커 버려 자전거 안장을 아무리 높여도 자전거가 작게 느껴지게 되었다. 무리한 기어변속으로 낡은 자전거의 체인이 빠질 때마다 손수 기름때로 얼룩진 체인을 다시 기어에 끼워 맞추는 일도 귀찮아지고, 친구들이 더 크고 세련된 자전거로 바꿀 때마다 나도 새 자전거를 구입할까도 생각하게 되었다. 군 입대 전 부모님은 더 이상 필요 없는 자전거를 사촌동생에게 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지만, 그래도 그와 든 정 때문인지 차마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적어도 휴가 나왔을 때, 이제 어른이 되어 변해버렸지만 여전히 사탕을 물고 있을 것 같은 친구들과 그 자전거는 함께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은연중에 스쳤다.자전거를 잃어버린 후 휴가 복귀 날까지 매일 그곳에 가서 혹시라도 돌아왔을까 확인하였지만, 사라진 자전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공원 근처에서 하염없이 자전거를 찾다가 문득, 그 녀석과 비슷한 생김새의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를 보았다. 예전의 나처럼 안경을 끼고 비틀거리며 뒤에 계신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가며 자전거를 타던 그 꼬마는 어린 시절의 나와 영화처럼 포개어졌다. ‘이제, 놓아 줄 때인가?’ 어른이 다 된 나를 먼지만 쌓여가며 기다리기보다, 함께 눈을 맞추며 내가 기억하는 올림픽 공원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줄 15년 전 나와 비슷한 친구를 만나는 일이 어쩌면 운명이었을까.그 꼬마를 보며 마음속으로 손을 흔들었다. 15년 전의 시간 속에서 자전거를 타고 올림픽 공원을 달리던 나에게도 손을 흔들었다. 자전거를 타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자전거 없이 걸어야 할 때가 됐다. 다만 언젠가 태어날 내 아들이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하거든, 그 자전거를 힘껏 밀어 주리라. JYYOO
조문객들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탓에 정신 없었다. 한 손에는 육개장을 한손에는 사이다를 들고 분주히 움직였다. 난 이제 ‘다 컸으니’ 도울 수 있다. 그런 나이니까. 직접 장례를 돕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우리 할머니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테이블 밑에서 쪽잠을 자도 괜찮았다. 엄마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울림이었지만 “할머니 돌아 가셨어. 그러니까 간단히 준비하고, 아빠 차 타고 언니랑 오면 돼.” 엄마의 목소리는 하나도 떨리지 않고, 침착했다. 날 그리도 이뻐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처음엔 어벙벙한 마음이 들다가 전화를 끊 자 눈물이 났다. 처음엔 허리의 통증이었다. 증세는 점점 악화되었고, 할머니를 요양 병원에 모셨다. 엄마도 이모네도 삼촌네도 매주 가면서 물을 주는데도 할머니는 나무처럼 버석버석 말라갔다. 눈물이 멈추고, 지끈한 슬픔이 가시고 나니 자동차 밖 풍경이 좀 보였다. 온통 회색 아스팔트, 장례식장으로 열심히 내달리고 있었다. 엄마 어쩌지… 가서 엄마를 보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엄마를 위로할 수 있을까. “엄마...” “어, 그래 왔어. 짐은 저기다 두고, 옷 갈아입고 와.” 엄마.하고 부른 다음에 무슨 말을 떼기도 전 엄마가 말했다. 할머니의 죽음도 죽음이었지만 난 자꾸만 엄마가 신경 쓰였다. 그에 비해 엄마는 매우 담담하고 차분했다. 할머니와 요양 병원, 그리고 매주 가서 할머니를 돌보았던 엄마, 어느정도 예고 되어있던 죽음이라 그런 것일까. 역시 맏이라 그 어른스러움을 보여주는 것일까.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엄마라서 그런 것일까. 내가 수업이다 뭐다 하며 할머니에게 자주 가지 않아도 우리 엄마는 별 말 없었다. 매주 병원에 다녀와서 할머니의 소식을 전해주며 전화 말미에는 언제나 우리 딸은 잘 될거니까 믿는다, 할 일 열심히 하고 있으라고 했다. 우리 엄마는 그랬다. 뭐든 강요하는 법이 없었다. 밥 먹기 싫다 하면 먹지 않아도 되었고, 그 흔한 공부 좀 해라 잔소리도 없었다. 맏이라 참고, 맏이라 포기하고… 장녀로서 강요받아 온 것들이 많아서 당신 딸들에게는 그런 것을 지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엄마는 내가 가는 방향을 지지해주었다. 대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네가 지라고 했다. 나를 너무나 옥죄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방관해버리는 것도 아닌 우리 엄마였다. 엄마는 이야기를 하다 가끔 ‘딱 네 나이 때 말이지’하며 황홀함에 젖어 들었다. 집안을 위해 일찍 사회생활에 뛰어든 우리 엄마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월급 받아서 밑에 동생들 다 가르치고, 집안을 착실히 먹여 살렸다. 투피스 정장에 구두는 늘 7cm, 엄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 시절 엄마의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런 엄마가 아빠를 만나고 나서 꿈꾸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생겼다. 사업이 잘되어 사모 소리 들으며 꿈 같은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으나 아이엠에프의 칼바람을 맞고 완전히 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엔 늘 악착같이 일어나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우리 때문에 버텼다고 한다. 내세울 게 없을 만큼 어려운 시기에도 엄마는 친척들 앞에서 너스레 떨며 딸들을 자랑했다. 우리는 엄마의 자랑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고서 언니와 나는 말썽을 부릴 수 없었다. 아름답고, 유쾌하고, 솔직하고, 때론 우리에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미안해하고, 절대 넘어지지 않는 우리 엄마를 보고 난 자랐다. 할머니의 관이 입상리에 들어섰다. 그 뒤에 가족들과 동네사람들 그리고 엄마가 뒤따랐다. 관이 할머니네 집 근처에서 빙빙 돌더니 멈추어 섰다. 그러자 엄마는 “엄마…!” 하고 내지르면서 무너졌다. 삼촌과 이모도 그 모습을 보고는 뒤따라 관을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남들이 보기에 정말 가슴 절절한 풍경이었다. 나는 충격적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무너질 수 있는 거구나. 엄마도 저렇게 엉엉 울 수 있구나 하고 말이다. 엄마도 딸이지, 엄마도 엄마가 죽은 거니까. 그 찢어지는 마음을 내가 10분의 1이나 이해할 수 있을까 싶었다. 엄마는 그렇게 엄마의 엄마를 보냈다. '엄마'라는 단어는 희한하다.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것 같고, 미안해서 울음이 잔뜩 고여버리는 단어다. 난 우리 엄마가 너무 좋다. 그치만 엄마라는 존재가 감당할 수 없이 너무 커서 내가 그 만큼 할 자신이 없다. 참주
  “졸업식이 몇 시야?”;  “11시인가? 아마 그럴 거예요. 왜, 오려고?”  “그럼, 가야지.” 내 말이 못마땅한 듯 엄마의 목소리는 뾰족했다.  “나는 실험을 해야 해서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실험이 좀  늦어져서. 그런데 엄마, 아빠가 오시면 나도 참석해야겠네. 실험 스케줄을  조정해봐야겠다. 그런데 확실히 오는 거죠?“  “얘는, 간다니까. 우리 집에서 대학교 졸업이 처음이잖아. 그래도 나름 정  리 하는 기분이 드는데. 그래서 가려는 거야.“ 엄마의 말씀에 나는 아 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학교 졸업은 나에게 별 다는 의미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빨리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밖에는. 그저 학기가 바뀌어 새 학년이 되는 정도의 잠깐의 신선함을 주는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졸업한 후에 대학원진학을 앞두고 있는데, 겨울 방학에도 단 하루를 쉬지 못하고 연구실에 파묻혀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맡아하는 실험이 뜻대로 잘 되지 않아 온 신경이 그 쪽으로 쏠려 졸업식은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부모님은 나의 졸업식에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죄송스러워졌다. 그리고 오늘 나는 졸업식에 참석했고 참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는 좀 일찍 일어나 신경 써서 화장을 하고, 가장 예쁜 원피스를 입고 졸업식장에 참석했다. 그리고 졸업식 가운을 입고, 학사모를 쓰고 강당에 앉아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자꾸 뒤쪽으로 눈길이 갔다. 식구들을 찾느라고, 그런 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가슴이 붕 떠 있어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지난 4 년 동안 정신없이 지냈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재수를 선택하고 대학생이 된 후부터 나는 대학의 낭만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해야 했다. 그것은 바로 통학 때문이었다. 나는 통학을 하고 있는데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거의 두 세시간은 족히 걸리고, 첫 강의 시간인 9시에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5시 40분 차를 타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스쿨버스를 타야 한다. 그 뿐인가? 집에 올 때는 퇴근시간과 겹쳐 세 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 그러니 하루에 5시간 정도를 버스, 전철, 때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니....... 다른 친구들은 모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데 나는 부모님, 특히 아빠의 완강한 반대로 통학을 해야 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아빠와 말도 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오히려 그 점이 교수님께 좋은 인상을 주어 장학금으로 대학원진학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4년 동안 성적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오기도 있었지만.......한동안  나는 취업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고민을 하다가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대학원진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런 내 선택에 아빠, 엄마는 무조건 찬성해주셨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그리고 조바심도 났다. 다른 무엇보다 아빠의 무거운 어깨 때문이었다. 올해 들어 부쩍 힘들어 하는 아빠를 보면 자꾸 미안해진다. 이렇게 힘들 때 아빠에게 오히려 경제적으로 짐을 더해준 것 같아서.......우리만 힘든 게 아니라고, 곧 좋아질 거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보기도 하지만 아빠의 늘어진 뒷모습을 보면 불안해지기까지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빠는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고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니 등록금은 해결되었다고 해도 책값, 교통비, 용돈까지 뒷바라지 하느라 등, 허리가 휠 지경이고, 회사 분위기도 하루가 다르게 뒤숭숭해지고, 아래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더 이상 오를 데는 없고, 그나마 엄마가 하던 일도 이제는 접은 상태이니 경제적으로 모든 부담을 아빠가 책임져야 하니.......  “연미야,”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아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그 사이로 아빠의 웃음이 춤을 추듯 너울거리며 다가왔다. 환한 웃음으로....... 디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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