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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인생락서 가족 여러분~ 입추도 지나고, 어느새 날이 선선해졌네요! 얼마 전까지 덥다고 하루 종일 푸념하던 우리 모습을 떠올리니 새삼 민망해집니다. ^^;   올해도 많은 분들이 더위를 피해 저마다의 방법으로 휴가를 즐기셨을텐데요, 같이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기록은 기억보다 오래가니까- 조금만 짬을 내서 함께 적어보아요!   <휴가지에서 생긴 일 시즌 2>   □ 행사내용   본 게시물에 댓글로 올 여름 휴가지에서 생긴 일을 공유해 주시면 추첨을 통해 총 500분께 CU 오레오 화이트크림 모바일 교환권 증정   이런 것들을 적어보세요~ ① 특별히 기억에 남을만큼 재미있던 일 ② 지금 생각해도 침이 나올 만큼 맛있게 먹었던 음식 ③ ‘이 맛에 휴가 간다!’라고 느낄만큼 행복했던 순간 등등   ※ 휴가를 못 가신 분들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누렸던 소확행을 공유해 주셔도 좋아요~   □ 경품   즐거운 휴가 뒤 까맣게 타버린 내 얼굴 같은- CU 오레오 화이트크림 모바일교환권 (500명) □ 행사기간 - 8/21(수)~8/25(일) 자정까지 □ 당첨자 발표 및 경품 제공 - 8/28(수) 인생락서에 당첨자 게시 및 등록된 전화번호로 발송   ※ 개인정보 입력오류 및 스팸 등록 등으로 인한 발송 오류 시 재발송해 드리지 않습니다. 등록된 프로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세요. ※ 경품 제공을 위해 위탁업체인 ㈜쿠프마케팅에 회원님의 휴대전화번호가 제공되며, 발송 즉시 폐기될 예정입니다.   본 게시물은 #알려드려요 게시판과 메인추천스토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로 올 여름 휴가지에서 생겼던 재밌는 일이나 맛있게 먹은 음식 등을 공유해 주시면 추첨을 통해 총 500분께 CU 오레오 화이트크림 모바일 교환권을 드립니다! ※ 휴가를 못 가신 분들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누렸던 소확행을 공유해 주셔도 좋아요~     댓글로만 남기기 아쉬울만큼 좋은 사진과 추억이 있다면, 인생락서 게시판을 통해 공유해 주세요! #맛집대백과 → 무지무지 맛있었던 것들 #휴가지에서 생긴 일 → 사진으로 함께 공유하고 싶은 휴가의 추억들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참여해 주신 분들은 당첨 확률이 더욱 높아지는 거, 인생락서 가족여러분은 이미 다 아시죠? ^^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 관심 가지고 답글 달아주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랍니다!   + 설문조사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꼼꼼히 읽어보고 더 좋은 인생락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게요!! 인생락서관리자
기묘한 이야기 2 (부제 : 끝날때까진 끝난게 아니다) 프롤로그 이 신변잡기는 “나는 내가 지난 여름에 한일을 모르고 있다”라는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앞의 이야기와는 별도의 에피소드이므로 이 글부터 읽으셔도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습니다.다만, 심신이 미약하거나 무서움을 많이 타는 인생락서 회원님은 읽지않으셔도 무방합니다. --------------------------------------------------------------------------------------------------- 때는 2000년도 초반 필자가 시공회사 본사에서 과장직급으로 재직하던 30대중반이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현장에서 박현수 주임과의 기묘한 문제의 하룻밤(?)도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이 시나브로 퇴색되가는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본사 생활 짬밥도 제법 쌓여 약간의 매너리즘이 오고 일상이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처럼 무료하게 느껴질 무렵 본사 미래전략팀에 한명의 여직원이(홍주임) 새로이 경력직으로 입사하였습니다. 미모도 한 미모했지만 명문대 스펙에 빠르고 정확한 업무처리로 입사한지 얼마되지 않아 젊은 총각사원들 사이에서 금방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좀 말수가 적긴했으나 미모에 가려 가볍지않은 단아함으로 금방 단점도 장점으로 포장될정도로 매력이 넘치는 여직원이었습니다. 팀장님과 필자도 마침 오래같이 근무하던 같은팀 여직원이 결혼으로 퇴사하게되어 새로이 발생한 업무공백을 채울 새직원을 채용해야하는데 우리팀에선 꿈꾸기 힘든 재원이라 그저 그림의 떡으로 여기던 상황이었습니다. 스팩좋고 똘똘한 여직원은 늘 미래전략팀이나 인사팀,비서실 같은 핵심부서에 먼저 배정되는데 그것도 조직생활 관례라면 관례라고 팀장님은 별로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모시던 팀장님의 단점을 하나 꼽으라면 부서직원을 뽑을 때 상당히 까다로운 점인데 팀장님 왈 얼굴 맞대고 보내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마누라나 자식보다 긴데 업무는 둘째고 맘(코드)이 안맞으면 서로 힘드니 시간이 걸려도 직원은 신중하게 뽑자는 말씀이셨다.문제는 본인은 최종 방점만 찍으려고 하셨고 인사팀에 들어온 지원자 이력서 검토나 중간 면접 진행은 오롯이 필자의 몫이었습니다. 후배직원이라도 시킬라치면 귀신같이 알고 필자가 진행해주면 좋겠다는거였다. (필자가 학생때 관상보는것에 흥미를 느껴 조금 취미로 공부한적이 있다고 회식때 얘기한게 화근이었다. 취미로 잠깐 책 몇권 읽은 것이 다 인데 입이 방정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어쨋거나 팀장님의 신중한 인사채용론에 어느 정도 필자도 동조하는 바가 있어서 나름 인사팀과 함께 몇건의 채용건을 진행하였는데 그럭저럭 괜찮은거같은 여직원을 면접 채용진행하려하면 건건이 퇴짜 놓으시는 거였다. 이 당시 필자는 업무도 과중하고해서 “아 저는 모르겠습니다.팀장님이 차라리 진행하세요~~”하며 뻗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회사에서는 미래전략팀에 새로 입사한 미모의 재원 홍주임에 관한 소문이 돌았습니다. 소문은 별거아니고 그녀에게 반한 총각늑대 남자직원들이 대쉬하다 번번이 퇴짜를 보기좋게 맞는다는거였다. 콧대가 보통이 아니고 보기좋게 딱지맞은 남자직원들이 “여우의 신포도” 이론처럼 그녀가 건방지다는둥 분위기가 어둡다는둥 어쩌는둥 차인게 분해서(?)험담들을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 타이밍에 같은팀 송대리가 공개적으로 도전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진 모양새였고 지켜보는 우리 늙다리 유부남군단도 흥미진진하였습니다. 싸움구경 불구경 다음으로 재미진다는 처녀총각 연애스토리 아니던가~ 게다가 송대리라면 국내 최고학부스펙....유창한 3개국어실력과 여직원들사이에 살인미소로 불리우는 매력남으로 회장님과 경영진이 10년앞을 보고 키운다는 우리회사의 최고인재가 아닌가...인물은 영화배우 쌍따귀치며 녀석이 씨익 웃으면 사내여직원들은 “살인미소”라 불렀고 남자직원들은 하루종일 재수없다고 투덜대지 않았던가~~ (물론, 회사내 늙다리 간부직원들은 송대리를 보면 자신의 젊은시절을 다시 보는것같다는 망언도 서슴지않았고 심지어 어느 미친 임원은 자신의 도플갱어가 송대리라는 개소리(?)도 하고 다니는 실정이었다.) 팀장님과 필자도 송대리 정도라면 미모의 홍주임에게 필적할만 상대라고 오지랖 쩌는 흰소리를 나누곤 했었다. 그러거나말거나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며 신규공사현장이 여러개 터져 정신없던차에 그날도 10시까지 야근을 하다 팀장님의 제안으로 부서원들과 회식을 하게되었습니다. 식사도 어느정도 마치고 이런저런 사내뒷담화를 나누다 미모의 홍주임얘기를 촉새 양대리에게서 주워듣게 되었다. 요약하면 송대리가 최근 몇주 꾸준히 대쉬하다 둘이 냉냉해져서 자기팀 팀장에게 업무에 지장을 주니 적당히 공과사를 구분하라고 수차례 구두 경고를 받았다고했다.홍주임의 딱부러지는 거절인지 요즘 둘은 주변에 티날 정도로 불편하게 지낸다고도 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송대리는 화려한 스펙과 외모보다 인성이 더 괜찮은 친구로 기억되었다. 처음인연은 회사당직을 같이 사수와 부사수로 근무한것인데 당직업무로 사내순찰하는 일과를 후레쉬 야무지게 2개 챙겨서 엘리베이터도 안타고 계단으로 회사 구석구석을 꼼꼼이 도는 것이었다.(얼마전 발생했던빌딩 계단에 몰래 숨었다가 사무실을 턴 노숙자 좀도둑사건을 기억하는듯했다) 당직근무를 대충대충하는 여느 후배들과 달리 작은일도 꼼꼼이 살피고 근무마치고 건성건성 작성하는 일지도 시간대별로 상세히 작성하는게 그가 평소에 어떻게 업무를 수행할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필자가 녀석의 선배인게 천만다행이라고 몇 번을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상사였다면 필자는 사직서를 던졌으리라) 옛날 어른들이 사람을 판단할 때 신언서판으로 판단하였다는데 딱 이사람이 그 표준같은 후배직원이었다.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이었다.ㅠㅠ 홍주임이 송대리의 괜찮은 인성을 알게되면 결국은 언젠가는 마음의 문을 열게되리라 필자는 잠깐 생각하곤 말았다. 참 잘어울리는 선남선녀인데 밀당하는가 보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지레 짐작하였다. 그런던 어느날 오후 팀장님이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필자를 휴게실에서 보자구하셨다. 팀장님 : 나 지금 인사팀장 만나고 오는길이다. 필자 : 진급이라도 시켜준데요? 얼굴이 좋아보이세요~ 팀장님 : 그게 아니구 미래전략팀 홍주임이 사직서를 냈대.요즘 송대리랑 연애걸다 둘이 많이 불편해졌나봐. 지난번 야유회때도 둘이 무지 심각해보이구말야~ 아까운 재원이라 인사팀장이 일언지하에 사표를 반려했대. 부서를 바꿔준다고 달래서 일단 막았대 홍주임은 퇴사하겠다는데 우리 건축팀에서 받으면 어떠냐고 내게 묻더라... 필자 : 아니 모두가 선망하는 홍주임을요~~다른팀에 뺏기기전에 얼른 우리팀이 받죠!!!!!!!!!!!!! 팀장님 : 아휴 이친구야~~미래전략팀 팀장님이 회장님 막내처남이야~~냉큼 받았다가 괜스레 눈밖에 난단 말이야~~몇번 고사하다 인사팀 강압에 못이기는척 받아야 뒷탈이 없지.....일단 숙고해보겠다고 뜸들여놨어 하며 “나 잘했지?”하는 표정으로 잇몸까지 만개해서 개구쟁이처럼 좋아하시는거였다.(잔대가리만으로 치면 그는 분명 팀장 자격이 있음에 분명했다.리스펙!!!!!) 필자도 오 역시 고수십니다하며 엄지척해주고 둘은 간만에 우리부서에도 해뜰날이 왔다며 좋아하였다. 팀장님은 어깨춤이라도 출 기세고 필자는 일단 이럴때일수록 자중하자고 말씀드렸다. 팀장님과 며칠은 표정관리하며 지내자고 다짐할 때 엘리트 송대리에게서 회사옥상에서 커피한잔하자고 사내메신저로 필자에게 연락이왔다. 인사는 하고 지내지만 사적인 얘기를 깊게 할 만큼 친밀한 사이는 아니였기에 순간 의아했지만 만나보니 의구심은 금방 풀렸다.얘기인즉 홍주임 사직서 반려되고 건축팀으로 간다는 얘기가 돌던데 자세한건 묻지마시고 홍주임 받지말고 자연스레 사직처리하면 어떻겠냐는 요지였다.좀 본인과 불편하다고했다. 순간 필자는 넘겨짚고 말았다. (그래 너희둘이 사귀네마네 하다 쫑난건 본사직원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고 차인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불편하시다 이거구만~~~미안하지만 우리팀에서 티오내기로 팀장님과 얘기끝났다 게임셋이다 이 친구야~~) 그래서 나야 뭐 자네가 말하기곤란한 사유가 있나본데 우리팀장님이 벌써 마음에 두신것같다고 얼버무렸다. 송대리왈 그 부서야 사실 과장님이 실세 아니냐 나중 연유를 얘기할테니 이번에 자기부탁 좀 들어달라는 요지였다.(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팔랑귀로 실세운운에 금방 전후사정을 까먹고 심각한 표정으로 숙고해보겠다고 냉큼 대답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필자역시 팀장님을 설득하려면 합당한 합리적인 연유없이는 곤란하다고 말하게 됐고 얘기가 길어지니 퇴근후 저녁을 같이 하자고했다.(이때까지도 필자는 송대리 본인이 불편하구나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업무가 끝나고 우리직원들이 자주가는 회사 앞 민속주점이 있는데 그곳은 안쪽에 작은 문달린 방이 하나 있었고 주점사장님은 우리회사 안면있는 직원들에게만 특혜(?)로 밀실을 내주시곤했다. 송대리가 오고 우리팀 눈치없는 양대리가 저도 밥사달라고 필자를 졸래졸래 따라왔다. 저녁과 간단한 반주를 하고 필자가 화장실을 쓰고오니 양대리를 먼저보내고 송대리만 자리를 지키고있었다.필자와 단둘이만 할 얘기라 먼저 양해를 구하고 보냈다는거였다. 뜸 그만들이고 본론으로 들어가라하며 비스듬히 기대 살짝 취기가 오르던 필자에게 자기얘기를 지금부터 귀담아 들어달라고 했다. 듣다보니 약간 오른 취기가 싹가시는 얘기였다. 송대리 나름 우리회사 최고의 엘리트직원이고 미모의 재원인 홍주임을 처음본 순간부터 마음에 두고 지켜보았다고한다. 총각직원들 대쉬하다 뻥뻥차이는거 보는걸 여러차례 즐기며 지켜보다 어느정도 같이 지낸 시간이 쌓여갈 무렵 홍주임에게 - 부서회식 2차가는 자리에서 - 진지하게 만남을 가져보고 싶다고 맘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좀 빼다 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해보겠다도 아니고 그 자리에서 일언지하로 교제를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자꾸물으니 자기는 연애같은거 관심이 일도 없다고 쏴 붙였다고한다. 그러나 밀어낼수록 맘은 더욱더 홍주임으로 향하고 송대리도 기회를 달라고했던 처음 의도와는 또 다르게 오기같은게 발동했다고 한다.(사내 여직원들의 선망의 대상인데 자존심도 많이 다쳤겠다 싶었다.) 그렇게 낮에는 같은팀에서 업무를 보고 또 틈틈이 기회가 나는대로 우회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하는 족족 거절당하였다고 한다. 진심을 몰라주는 그녀가 너무 야속하기도하고 한편으론 이런 설레이는 마음이 얼마만인가하여 살짝 달뜬것처럼 지내는것도 나쁘지않다 생각하였다고 한다(요즘 말로 썸을 탄다고 생각했으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한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회사전체가 경기도 외곽의 큰 리조트를 전부 단독으로 전세내서 본사 단합대회 및 체육대회 행사를 치르게 되었고 송대리는 이번에 기회봐서 다시 마음을 전하리라 벼르고 있었다고 한다. 교통편이 안좋아서 자가용 가지고 있는 직원들 위주로 팀별로 동선을 짜서 카풀식으로 리조트 이동을 이용하기로 했다. 대리급들도 자가용이 많아서 카풀짜는건 어렵지 않았기에 행사가 끝나고 삼삼오오 짝을 이뤄서 서울로 이동하였다. 송대리는 일부러 다른이들에게 부탁해서 홍주임을 태우고 귀가하려고 카풀을 짰다. (홍주임은 자기가 바래준다고 다른차들은 먼저 출발시켰다 다른직원들은 청춘사업 잘하라고 윙크들을 하고 먼저들 출발하였다) 송대리가 홍주임을 태우려 차를 대니 홍주임은 조수석에 타려다말고 고민하다 송대리의 거듭되는 재촉에 마지못해 뒷자리에 탔고 차는 출발하였다고 한다. 서울로 향하며 진지한 만남을 갖고 싶다고 여러차례 읍소해 보았으나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말도 하지 않길래 나중엔 화도나고 해서 앞으론 귀찮게 안하겠다고 말하고 운전만했다고한다.(가는동안에도 보통 둘이 타고갈땐 옆자리 앉는게 차량이용 매너인데 자기가 무슨 잠재적 치한도 아니고 얼마나 불편하면 뒤에가서 자리를 피해 앉나 은근히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계속 서울까지 이렇게 침묵하며 가긴 둘다 불편하겠다 싶어 버스가 있는 대성리 휴게소에 차를 대고 내렸다고한다. 홍주임은 이내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고 송대리 자신은 차를 대놓고 헛헛한 맘에 담배한대물고 캔콜라 하나를 막 비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고 한다. 안받을까 하다보니 홍주임이라 반색을 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핸드폰 너머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가 흘러나왔다고한다. 거듭되는 데이트 신청 거절한것도 미안하고 송대리와 자기는 어울리기 힘든 사이라고 했다고 한다. 송대리의 따뜻한 마음씨와 세련된 매너에 홍주임 자신도 많이 흔들려서 사실 힘든 시간이었다고한다. 얘기인즉, 홍주임 외할머니가 내림굿을 받아 나름 알려진 무속인이고 모친은 내림굿을 안받으려고 완강히 버티다 홍주임 초등학생때 고향 강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했다고한다. 홍주임 자신도 집안내력때문인지 신기가 있어 어려서부터 헛것을 가끔보지만 얘기하면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두려워해서 보여도 안보이는척 하며 친구도 별로없이 외롭게 살아왔다고 한다. 대학때도 타고난 미모탓인지 구애하는 남자들도 꽤나 있었지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순간 모두 진저리(?)치고 떠나서 평생 혼자 지내겠다고 다짐했다고한다. 한동안은 영(?)이 안보이다 대학졸업후 직장다니며 최근들어 또 간혹 보여서 사회생활을 얼마나 계속할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젠 지쳐서 종교에 귀의하던 말아야할지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다고 한다.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약도 먹어보고 할수 있는건 다 해봤지만 별 다른 효과는 없었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송대리는 그녀가 자신이 별로라 밀어내는것이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하며 홍주임의 말을 다 믿을수 없었고 차라리 내가 싫으면 단도직입적으로 싫다고 해라.그 편이 낫겠다. 이것도 배려라고 하는거냐? 듣다듣다 어이가 없다고 자신도 모르게 폭발해버리고 말았다한다. 귀신씨나락 까먹는 소리말라고 일갈 했다고도 한다. 그제서야 홍주임이 장탄식 후에 뭔가를 결심한 듯 아까 자신이 왜 운전자 조수석 옆자리에 앉지 않았는지 얘기해주겠다고 했다고한다. “송대리님 차 옆자리에 창백한 얼굴의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오른쪽 얼굴에 동전만한 점이있었구요..... 저를 무섭게 째려봐서 고개 숙이고 뒤로가서 앉았어요. 처음본건 아니구 회사에서도 먼발치에서 종종 송대리님을 지켜보던데요....... 이젠 제 얘기 믿으실수있나요..............” 에필로그 송대리는 대학다닐 때도 여학생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는데 그 당시 다른과에 송대리를 심하게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었고 얼굴에 동전만한 점이 있었고 짓궂은 학우들은 그런 그녀를 “점순이”라고 장난삼아 놀렸다고한다.요즘 성형수술로 흉터도 잘 없애던데 저 친구는 왜 안할까하는 생각에 의아했다고 한다. 그녀는 동아리에서 몇 번 본 선후배로 마주친 희미한 기억뿐인데 언제부터인가 편지며 선물이며 수시로 전달해서 송대리가 그때마다 완곡히 거절했었고 송대리에겐 이때 이미 교제하던 미모의 여자친구가 있었다고한다. 송대리는 그닥 끌리지않던 그녀가 부담스러워 그냥 무시도 하고 애써 외면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을 계속되던 장문의 편지들은 읽지도 않고 버리고 선물들도 보내온 주소로 다 반송하니 한동안 그런일이 없어 송대리는 그제서야 어느정도 안심했다고한다. 그러나 그렇게 끝이난게 아니었다.후에 그녀는 한강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는데 유서에도 송대리를 구구절절 언급했었고 장지로 떠나던날 그 여학우의 부모님이 영구차를 그녀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를 한바퀴 돌고나서 억울한 마음이 드셨는지 송대리가 살던 아파트단지로 차를 몰고왔다고 한다.(딸의 마지막 가는길에 연정을 품었던 이를 한번 보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었나보다.) 이때 송대리는 이러한 자살사고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마침 출타중이라 집에는 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집에계시던 송대리부모님이 유족분들에게 짝사랑에 관한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고한다.그러나 자신들의 아들이 이일과 연관되는게 부담되서 송대리와의 마지막 만남은 극구 반대했다고한다. (자식키우는 부모입장에서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나절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영구차는 결국 장지로 떠나고 후에 이를 전해들었지만 송대리는 본인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간혹 그후 악몽을 꿀 때 그녀가 몇 번 꿈에 보였지만 몇 년지나고는 꿈에도 보이지않아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졌다고 했다.(꿈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겠지....송대리와 늘 함께였을테니........) 다만 그 자살사건으로 오래 사귀왔던 여친이 이 사실을 알고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해서 따지고 보면 자신은 피해자라고 말했다.10년이 다 되가는일이고 트라우마가 있어서 송대리와 절친한 대학동창 몇 명만 이 사건을 겨우 알 뿐 인데 홍주임에게 그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혼절할 뻔했다고 한다. 너무 무섭고 기가막혀 차에 다시 다가갈 엄두도 못내고 휴게소에 팽겨쳐두고 나중 정비업소에 부탁해서 가져와 중고차로 팔아버렸다고한다. 그 뒤로 사내에서 홍주임 볼때마다 혼란스럽고 불편해서 전처럼 자연스레 대하지도 못했다고한다.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질 못했다고 한다.요즘 너무 머리가 아파 자신도 기회를 봐서 사직하고 좀 늦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주로 먹었던 술이 확 깨고 그날 필자도 멍때리며 겨우겨우 귀가한 듯 하다. 인사팀장님의 바램과 달리 타부서로 팀을 옮기는것도 거절한 홍주임은 결국 예상대로 사직했고 시름시름 앓는이처럼 직장생활을 몇 달 더 이어가던 던 송대리 역시 회사를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사내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 이때 회장님 막내따님과 송대리는 약간의 썸을 타는거 같았다는데 이는 말그대로 카더라~ 통신이라 진위가 확실치는 않다.필자만 혼자생각에 그래서 직장에 미련이 많았나 싶기도 했었다. 당시 보기드문 인재라며 홍주임을 모셔오려던(?)팀장님께는 필자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필자에게 뒷얘기를 알고싶다고 몇 년을 조르셨고 팀장님이 임원이 되고 필자가 팀장이 된 어느 여름날 밤 회사 등산모임 야간산행에서 말씀드렸는데 많이 놀라셨는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셨다.그런 무서운얘기는 혼자만 알지....왜 해줬냐고 되려 필자를 몇 달 동안 원망했다.웃긴 양반.....ㅠㅠ) 이 회사를 다니던 필자도 수년전 다른회사로 이직하고 퇴직자모임(오비모임)에서 송대리나 홍주임의 소식이 궁금해서 참석자들에게 물어봤는데 송대리의 소식은 아는이가 하나없고 홍주임만 홍대앞에서 주말 타로점을 봐주고 있길래 아는체하니 아니라고한적 있다는-분명 그녀가 맞았다고한다. 출중한 미모는 여전하고 분명했다고 하는데 -어느 여직원이 전하는 불확실한 애기가 딱 한번 있었을 뿐이다.지금까지도 그 두사람의 뒷소식은 필자역시 매우 궁금하다. 아는 만큼만 보인다고 했던가 세상에는 그 잘난 과학나부랭이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우리주변에 많이있다. 그리고 혹자는 그런건 다 심약해서 헛것을 봤거나 지어낸 얘기라고 단언한다. 송대리 역시 그래왔다고한다. 자신이 실제 그 일을 겪기전까지는........... " Based on a true story..............." 하버드룸
몇 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기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가 맹인 가수인 스티비 원더와 인터뷰를 하는데 그의 마이크가 켜져 있지 않자 손을 마이크로 가져가서 손동작을 주고 마이크를 켜 주었던 것이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면 무조건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아무 말 없이 도움을 주는 것은 큰 실례이고 장애인들이 기분 나빠 한다고 한다.나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두 가지 경험을 통해서 장애인을 더 이해하게 되었고 편견이 사라지게 되었다.첫 번째 만남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였다.초등학교 2학년 때 우리 반에 지적장애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꾸 수업시간에 시끄럽게 하고, 같이 보는 책을 찢고, 가끔 이상한 소리를 내어서 그 친구를 귀찮게 생각했고, 싫어했다. 그런데 그 해 5월 친구의 생일파티에 그 친구도 초대 되었다. 처음에는 우리와 다르게 먹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행동을 해서 같이 초대된 것이 싫었는데 생일파티에서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이야기 하고 웃는 모습에 장애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두 번째 만남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루어 졌다.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기 2일 째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두운 날씨였다.우산이 없어서 비를 맞으며 교문 밖을 나서는데 “ 왜 혼자 비 맞고 있어요? 우산 같이 써요.” 라면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장애를 가진 후배였다.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하고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가끔 내가 힘들어서 고민을 얘기 할 때에는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한번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축 처진 모습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 언니 무슨 힘든 일 있어요?” 걱정되는 모습으로 먼저 물어봐 주었고, 고민을 이야기 했을 때 잘 들어주었다.이렇게 장애인 후배에게 도움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장애인 후배에게 도움을 받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이 일을 계기로 그 후배가 씌워준 우산처럼 나도 그 후배에게 우산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 이후로는 밥도 같이 먹고, 서로 힘든일 있으면 고민도 나누고, 소풍 때 같이 다니는 언니동생 사이로  그렇게 점점 서로에게 우산 같은 존재가 되어갔다.우리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은데, 나는 김희아 씨에 대해 소개하려고 한다. 김희아 씨는 태어날 때부터 모반증으로 인해서 얼굴의 반이 붉은 반점으로 덮힌 채 고아원에 버려졌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미술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해서 앞으로 나갔는데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생들 보고 그녀의 모습을 그리라고 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보육원 선생님과 친구들 덕분에 당당해지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현재 그녀는 결혼도 했고, 딸들을 두고 있으며 <강연 100도씨>, < 여유만만> 등의 TV프로그램과 < 내 이름은 예쁜 여자아이 입니다>, <우리 엄마라서 감사해요> 등의 책을 내었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힐링 강사로 일하고 있다.나는 우리나라가 장애인들을 연민의 감정 없이, 편견 없이 바라보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란 걸 알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헨렌켈러가 얘기한 < 장애는 불편하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아니다>, <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라는 명언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맹소영
한 때 전국을 들썩였던 술팅을 아십니까? 말 그대로 술을 마시는 모임이라고 해서 과거 접속자 수가 가장 많았던 **클럽의 단체 번개팅 입니다. 번개팅이란 순식간에 번개가 치듯이 순식간에 즉흥적으로 만나는 모임인데 각 도시의 시내나 번화가 등지에서 다 같이 모여서 단체로 예약한 술집이나 식당등에서 먹고 마시며 게임을 하는 등의 일종의 동호회 같은거라고 보시면 되는데 동호회는 오로지 회비로만 진행되지만 술팅은 회비 이외에 여자나 남자들을 선발해서 일종의 노예팅이라고 하여 선발된 사람이 이성한테 잘 보이기 위해서 갖은 매력이나 장기를 보여주고 돈을 주고 사는 형식으로 그 이성에게 팔리면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고 판 금액은 회비에 찬조금으로 쓰는 형식입니다. 알다시피 여자는 남자들이 사는 사람이 많겠지만 남자는 연예인만큼 멋진 사람이 드물기에 오만 자기만의 매력이나 개인기를 부려도 잘 사는 사람이 없는지라 결국엔 모임의 여성들이 주도가 되어 남자들이 찬조금을 내는 형식입니다. 대부분 술팅모임의 주최자가 관리를 하는데 비밀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임에서 남자들은 회비를 내지만 여자들은 대부분 회비를 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남자들이 많이 모여야 모임이 성황리에 이루어 집니다.대부분 모임중에는 여성 회원들이 대부분 그 모임의 주최자인 일명 술팅 방장과 인맥이 닿거나 친한 사이로 친구의 친구를 새끼를 쳐서 데리고 오는 형식인데 아무래도 이쁜 여자 친구들을 데리고 오면 모임에서 공짜술과 갈 때 차비를 제공합니다. 어차피 그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2차 3차 4차를 간다고해도 남은 회비는 돌려주진 않습니다. 그러니 최대한 많은 여성회원을 확보한 술팅 방장이 남자 회원들을 많이 모아서 회비와 노예팅으로 얻은 수익금 즉 찬조금을 어떻게 관리 하느냐가 관건이 됩니다. 보통은 새벽까지 술마시고 계속해서 자리를 옮겨 회비를 다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말 그대로 술팅의 시초가 된 초창기 시절이나 그렇지 이미 변질 될 대로 되버린 술팅 모임에서 술팅의 방장의 관리하에 저급한 싸구려 술집만 돌아다니면서 대충 2차까지 마시다가 모임을 끝내고 주최자인 술팅 방장이 잠수를 타거나 도망을 가버리는 겁니다. 그리하여 회비를 횡령 하는거죠. 모든 모임의 주최자들이 그러진 않겠지만 대부분 그런식으로 진행들을 합니다. 주최자 혼자서 할 수 없기에 동조인이나 추종자들이 생기는데 일명 회비를 안내고 술팅 방장의 보조 역할을 하는 간부들이 생기는거죠~일명 회비를 걷어서 관리하는 부방장이 있고 사람들이 약속장소에 모이면 통솔하며 인도하는 역할, 계속해서 채팅을 통해서 사람을 모으는 일명 채팅전문역할, 늦게 도착하는 회원들을 데리러 가는 역할, 게임을 진행할 때 같이 보조해 주는 역할, 일명 얼굴마담이라고 해서 여성회원들이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가는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멋진 외모로 여성회원들을 구워 삶아 포섭하는 역할 등등 많이 있는 모두다 그 모임의 주최자인 술팅 방장의 추종자들입니다. 이런 역할들을 맡은 남성회원들은 회비나 노예팅에서 찬조를 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서 공짜 술을 먹거나 모임이 파하고 나면 일상생활을 멀리하고 매일같이 술모임을 진행해야하니 술팅 방장과 동고동락하며 매일같이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혼숙합니다. 새벽이나 아침까지 술모임이 진행이 되니 아침 나절쯤에 해장국이나 밥을 먹고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수면을 취한 뒤에 오후 늦게쯤 기상하여 다시 피시방으로 가서 술모임을 위한 작업들을 진행하는 식이죠~이게 쉬울거 같지만 엄청나게 힘듭니다. 잘 단련된 체력도 있어야 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보니 진두지휘 즉 리더십도 발휘가 되야하고 게임진행이나 분위기 메이커 역할등의 개인이 가진 장기나 화술 언번술 등등 필요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결코 쉽게 행해지는 모임들이 아닙니다. 이런 생리를 잘 아는 저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인간적으로 모임을 진행하려고 노력했기에 수많은 추종들이 생겨서 매일같이 술에 찌들려 살면서 생업을 포기하고 오로지 음주가무에만 미쳐서 1년이라는 시간을 허송 세월로 보냈습니다. 그렇기에 술팅 모임의 무서움과 생리를 잘 알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제와서 하는 얘기지만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한 모임이 나중에는 나쁘게 변질되는 행태를 보면서 그만 두어야 겠다고 맹세를 했지만 워낙 많은 추종자들의 성원 때문에 조금만 더하자~조금만 더하자 하면서 결국엔 1년이나 그렇게 살았습니다. 차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킨 술팅이란 모임으로 인해서 다발적인 절도나 성폭행등의 사건들이 연관이 되다보니 경찰이나 검찰 수사관이나 검사등이 신분을 위장해서 회원으로서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습니다. 제 모임에도 부산지방검찰청 초임 검사가 직접와서 신분증을 보여주면서 수사차 어떤 모임인지 알고 싶어서 왔다며 사건수사 도움차 하소연하며 모임에 관해서 좀 상세히 알려달라고 하기에 솔직하게 다 말해 준 걸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차후에 우린 술팅이란 모임을 없애버리고 정식 동호회 모임으로 바꿨습니다만 제가 했던 지역에 원년 멤버가 빠지니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또 모임을 진행하는 식으로 바뀌더군요~지금처럼 어떠한 소식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인이 통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생기기전인지라 가능했던 아날로그식 모임이지 현재는 이런 추억의 모임도 아마 생길 수가 없지 싶네요~지독히도 아련한 추억의 술팅!! 썰 한번 풀어봤습니다. 다시금 어린 시절에 화제의 소재가 생각나면 다시금 자판을 치도록 하겠습니다. 또 제가 살아온 인생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인지라 조만간 생각나서 또 쓸 것 같습니다. 그 때 뵙겠습니다^^ 불멸의기쁨
6편.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 – Airbnb와 Cabin  미국에서의 첫 숙소는 Airbnb를 통해 샌프란시스코 외곽지역으로 정하였다.  Bay Bridge를 지나 South Berkly에 있는 방 2개에 거실과 부엌이 있는 가정집 형태의 숙소였다.  최초 숙소를 예약하면서 우리는 5명이라는 비대칭적 인원을 고려하여 방과 거실, 부엌이 있는 집 전체를 빌려서 숙박하기로 하였다. 호텔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여유로운 공간이 있고 식사를 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이러한 취지로 선택한 Airbnb 이용은 샌프란시스코에 이어 LA까지만 하였는데 생각보다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다.  종래 알고 있던 공유를 통해 여분의 공간을 활용한다는 좋은 취지는 적어도 우리의 짧은 경험 속에서는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공유 민박업이라는 서비스가 자기 집의 여유 공간을 활용하기 보다는 전용 숙박업을 하는 집에서 철저하게 상업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자연히 여러 가지 시설이 낡고, 위생적이지도 못했고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즉각적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우리도 숙소의 일부 공간에 전기가 꺼졌지만 바로 복구가 되지 않아 불편한 하루 밤을 보내기도 했다.  결국 우리는 LA 이후부터는 아침식사 준비 시간도 절약하고 안락하게 여행의 여유도 즐기자며 호텔을 이용하기로 했다.  소설가 김영하는 최근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산문집 '여행의 이유'에서 호텔을 좋아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 중에서 집은 의무의 공간으로 언제나 처리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잠깐 머무는 호텔에서는 완벽하게 자유롭다고 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잘 정리되어 있으며 설령 어질러진다 해도 항상 리셋되고, 떠나면 그만 이라는 이야기였다.  자유를 찾아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을 도모하는 여행과 언제나 새롭게 준비되어 이방인을 맞아주는 호텔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호텔 이용 결정도 이런 설명과 동일한 이유 아니겠는가!  이른 아침 비는 그쳤으나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기온도 5월의 캘리포니아치고는 너무 낮았다.  현지인들은 십여 년만의 이상저온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런 날씨 속에서 요세미티 지역이 평균 1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이고, 캐빈에서 야영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미리 두둑한 옷으로 무장하였다.  4시간 이상을 달려 Half Dome Village 안의 캐빈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다.  5월 중순이 넘었지만 아직 주변에 잔설이 남아 있는 캐빈은 텐트 형태의 간이 숙소였다.  그러나 전기도 들어오고 2층 철침대가 있어  잠자기에는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으나 다소 추웠다. 특이한 점은 캐빈 앞에 철제 음식물 보관함이 있어 모든 음식물을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하고 있었다.  곰이 음식물 냄새를 맡고 내려와서 캐빈 내로 들어오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란다.  Visitor Center 지역에는 대형 음식점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품으로 준비된 가게 등이 있었으나 음식 값은 매우 비쌌다. 항상 우리나라와 비교하며 어떤 것을 배워야 하는가 하는 노파심이 다시 발동되었는데 몇 가지를 적어본다. 우선 국립공원 입구가 너무도 한적하였다.  가게, 음식점은 물론 마을이나 인가조차도 주변에는 없었다. 오직 공원 내 Visitor Center 지역에만 음식과 물품판매가 제한적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 입구에 난립한 음식점과 가게를 떠올리며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환경 친화적인 관리도 훌륭하였다. 건물과 다리, 목책, 벤치 하나도 나무를 이용하고, 다소 거칠게 느껴질 정도로 인공적인 손질은 최소화하고 있었다.   사진을 설명하면 첫 번째 사진은 요세미티 가는 길 주변의 황량한 전경. 두 번째는 공원 내의 비지터 센터.  세 번째는 캐빈의 모습, 전면에 있는 철제함이 음식물 보관함이다.  오매불망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의 책에 열광했던 때가 있었다. 처음으로 접한 그의 책이 바로 “우리는 사랑일까” 공감하기도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하며 빠져 읽었었는데, 나도 이성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고 사랑이라는 걸 하면서부터 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장거리 연애 비슷한 걸 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 2년간 파견나가 있으면서 나름 외롭고 현지 생활에서 오는 답답함과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 피트니스 센터에서 반나절을 보내던 때였다. 이전 직장에서 알던 그와 메신저를 주고 받고, 인터넷 통화를 하고, 급기야 그가 휴가때 나를 만나러 왔다. 처음부터 연애 감정을 느낀 건 아니었다. 나에게 잘해주니까, 내가 좋다고 하니까, 당장 만날 필요도 없고 그냥 메신저로 무료함을 달래기엔 딱 좋은 대화상대니까… 그 정도였던 거 같다. 그러다 만나니 조금씩 그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내 맘이 조금씩 그에게 기울어져감을 느꼈다.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달리 다정하고, 달달한 애정 표현으로 나를 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국후 우리의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미 정신적으로 서로에게 물들어 있었으니 남은 건 육체적인 결합이었다. 그와의 연애는 짜릿하고 행복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일중독자로 일에 미친 그와는 반대로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재미난 삶을 찾아 돈 버는 행위에 관심이 없었다. 다시 외로움을 느꼈다. 늘 볼 수 있는 같은 나라,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오히려 만남은 소원해지고, 나의 불만은 쌓여갔다. 우연한 계기가 되어 나도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일에 몰두하다보니 그에 대한 생각도 점점 덜해지고, 그렇게 다시 우리의 관계는 멀어졌다. 마음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팠다. 슬펐다. 괴로워서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면 객기를 부리듯 그에게 전화를 해댔다. 결국 그가 받으면 그냥 끊어버렸지만, 그러다 어느날 내가 선언했다. 우리 그만하자….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다. 다시 그를 만나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끔 던졌었지만 늘 답은 노우였다. 그가 어느 무더운 저녁, 전화를 걸어왔다. 받아야하나, 받지 말아야하나,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너무나 아무일 없었다는 듯 말하는 그에게 실망하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와 다시 전화를 주고 받고 메신저를 하고 있다. 아직 그를 직접 만날 자신은 없다. 또다시 그에게 휘둘릴 내 감정이 두렵고 자신이 없다. 그치만, 여전히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한번 실패한 관계인데 다시 만난다고 뭐가 달라질까…하는 불안감. 그래도 감정에 따라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들꽃_수인
큰 아이의 전국어린이 백일장 초등부 수필부분 입선 소식을 들었다.처음에 제출할때는 참가하는데 의미를 두자는 선생님 말씀에 별 기대를 안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아이들 작성한 수필 그대로 문구 하나 수정하지 않고 제출하였다.그야말로 참가하는데 의미를 둔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랐다.그리고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손을대면 아이의 생각이 아닌 우리의 생각이 되어버린다고 하시기에 동의 하였다.아이의 글을 읽었을때는 교통정리가 잘 안된 듯 한 느낌이었다.하지만 그것은 나의 생각이었다.아이의  작품세계에서는 교통정리가 잘되어 있고 정리 정돈이 잘 된 작품인 것이다.아이의 세계를 잘 이해 한다고 자부했던 나, 그 것은 나의 오만이었다.난 나의 성장기를 기억하며 아이들을 이해 하는 편이다.나 또한 그랬으니..., 나도 그랬는데..., 아이들은 엄마는 어떻게 알아? 하며 되 물어볼 때 가 있다.그러면 엄마도 그랬으니깐 그러면서 어릴때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을 이해할려고 노력하는 편이다.하지만 난 어른의 습성도 많이 있다.엄마보다는 선생일때가 많고, 나란히 걸어갈 때 보다는 앞장서서 걸어 갈 때가 많고, 안아주기 보다는 옳고 그름을 가르칠 때 가 더 많은 나 였던 것 같다.아이의 생각, 감정, 표현, 행동 등 아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나.선생 보다는 엄마, 앞장서서 가는 것 보다는 나란히 걷는 것, 안아주는 나그런 내 자신이 되어야겠다.  보무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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