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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추천스토리

인생락서 가족 여러분!   민족대명절 설날이 코 앞으로 다가왔네요. 어릴 적 우리가 설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가장 큰 이유! 바로 세뱃돈 아닐까요?   이제는 세뱃돈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익숙해지셨을지도 모르지만 어릴 적 그 설레던 마음, 오늘 한 번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인생락서 세뱃돈의 추억 이벤트>     □ 행사내용 본 게시물에 댓글로 세뱃돈에 얽힌 추억을 남겨 주시면 추첨을 통해 500분께 CU 모바일금액권 1,000원을 드립니다!   예) 왜 오빠만 만원 주고 나는 오천원 주냐고 서럽게 울던 기억이 나네요~ 예) 엄마가 맡아준다고 가져가셨던 세뱃돈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요!   □ 경품 인생락서가 세뱃돈을 드립니다! 기분 좋게 까까 사먹으세요~ ^^ CU 모바일금액권 1,000원 (500명) □ 행사기간 - 1/15(수)~1/19(일) 자정까지 □ 당첨자 발표 및 경품 제공 - 1/22(수) 인생락서에 당첨자 게시 및 쿠폰함으로 지급 (더보기 > 내 쿠폰)   ※ 모바일교환권은 휴대전화 LMS로 발송되지 않습니다.   본 게시물은 #알려드려요 게시판과 메인추천스토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본 게시물에 댓글로 세뱃돈에 얽힌 추억을 남겨 주시면 추첨을 통해 500분께 CU 모바일금액권 1,000원을 드립니다! ※ 다른 분의 댓글에 공감의 대댓글을 남겨주시면 더 좋아요!   세뱃돈, 주는 사람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우리 어렸을 때 그 마음을 떠올리며 큰 맘 먹고 지갑 한 번 열어보시면 어떨까요? ^^ (내리사랑♡) 인생락서관리자
이번에 시골 친정에 김장을 한다고갔다. 작고 굽어진 엄마의 허리가 아직도 눈에 아른거려 울컥하게한다. 집에돌아와 엄마얘기를하다 눈물이 나왔다. 김장이 다 끝나고 어제 저녁이되니 걸려온 전화한통... 셋째고모였다. 김장 하는걸 아셨나보다. 통화가 끝나 엄마에게 왜? 라고 물었다. 난 솔직히 고모들을 좋아하지않는다. 아빠 밑으로 여동생은 4명이다. 엄마는 일찍 어린나이에 시집와서 아들 못낳는다고 구박 받아가면서도 고모들 고등학교를 졸업시키고 시집도 다보내준 엄마였다. 작은집에 고모들도 많고 홀시아버지를 모시며 고생을 많이하셨다. 언젠가 엄마와 이모의 대화를 듣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적이 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 어릴적 돌아가셨다. 그리고 외할머니또한 일찍 돌아가셨다. 난 기억에도 없으니 엄마가 결혼하고 얼마있지않다 그랬다고 알고있다. 엄마는 너무힘들어 부엌에서 몰래울며 빌었다고한다. 외할머니한테 나도 빨리 데려가 달라고...너무힘들다고... 그말은 충격이였고 맘이아파 지금도 눈물이 나온다. 이제 자식들 다 키워서 시집장가 보냈지만 여전히 농사일을 하신탓인지 65세의 엄마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가고있어 마음을 아프게했다. 그런 엄마에게 고모는 이틀뒤 온다고 배추를 절여놔 달라고 한다. 왜 그걸 또 엄마는 알았다하는지 화가났다. 엄마는 아빠가 싫어하니 소리내지 말란다. 그정도는 아빠가 짤라주셨음 싶었다. 얼마전에도 둘째고모가 사기를 당해서 집이며 돈을 다 날렸다. 그런데 그걸 아빠보고 해달라한거다. 엄마는 돈없다고 잘라말했다 나쁜 올캐가 되었다. 우리 아빠가 큰 아들이지만 힘들게 농사짖고사는데 그 큰돈이 어디 있다고... 잘사는 셋째고모까지 엄마에게 서운하다 말한다. 몇채 집을가진 고모가 하나 주면되는데... 본인은 가진걸 내놓지 않음서 말이다. 엄마좀 그만 괴롭히면 좋겠다. 이래서 시누이 많은집에 딸을 보내기 싫어하는건데... 우리도 시누이가 되었지만 절대 그러지말자 다짐해본다. 엄마의 여자인생은 너무 가엽기도하다. 지금엄마는 우릴보며 웃고 엄마로서 행복하다 하지만 난 결코 그삶의 반의반도 할 자신이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엄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물으면 자식들이 항상 행복하게 잘사는거라 하신다. 진정한 엄마의 인생을 지금이라도 사심 좋은데 우리엄마는 인생이 계속 자식이 먼저인분일것같다. 난 세상에서 그런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사랑을 표현하진 못하지만 꼭 안아드리고 더 잘살아야겠다. 우리 엄마 아빠가 더 오래 건강하고 행복해지심 좋겠다. 꽃길만걸으리
주말에는 아빠 바봉이 우리집 요리사이다. 아빠가 운영하는 바봉식당의 단골손님은 그의 딸 요미이다. 요미는 미식가이다. 그리고 아이디어가 샘솟는 소녀이다. 사실 바봉식당 메뉴는 모두 요미가 정한다. 바봉식당은 요미의, 요미를 위한, 요미에 의한 식당이다. 그러니까 요미는 바봉식당의 VIP 멤버십 회원이다. 몇 주전 주말 요미가 갑자기 딸기를 초콜릿에 빠뜨려 먹고 싶다고 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바봉식당에는 모든 식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까지 사전 주문을 하지 않은 메뉴는 안 될 때가 더 많다. 느닷없는 요미의 '딸기 초코퐁듀' 주문! 그날은 딸기만 있고, 요리용 커버처 초콜릿이 없었다. 바봉은 요미를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딸! 엄마한테 말해서 다음주 주말까지 초콜릿 주문해 놓으라고 할게...! 오늘은 그냥 딸기만 먹자~" "흥! 먹고 싶었는데..." 바봉이 말한 다음주 주말이 되었다. 이제 요리용 커버처 초콜릿은 준비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딸기가 없다. 주중에 요미와 오빠가 엄마 또잔이 주문한 딸기를 모두 먹어버렸다. 바봉식당의 존재를 잘 모르시는 우리집 주중 요리사 할머니께서 딸기가 배송되어 올때마다 아이들에게 후식으로 딸기를 내놓으신것 같았다. "딸! 엄마가 다음주에 딸기 많이 주문해 놓을테니까 이번에는 주중에 다 먹지 말고 1팩은 남겨 놔야 해!" "힝! 할머니가 계속 딸기만 주신단 말야. 그리고 딸기가 남아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또 다시 다음주 주말이 되었다. 엄마 또잔의 새벽배송 신공으로 그 주말 새벽에 딸기가 도착했다. 드디어 바봉식당에 '딸기 초코퐁듀'의 식자재가 모두 준비되었다. 바봉이 커버처 초콜릿을 중탕으로 녹이기 시작했고, 바봉식당 보조이기도 한 또잔이 딸기 1팩을 씻었다. 이제 퐁듀식기 세트에 촛불을 켜고 녹인 초콜릿을 계속 가열하면서 딸기를 빠뜨려 먹기만 하면된다. 그런데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여보, 우리집에 불을 부칠 수 있는 도구가 있을까?" "자기야, 라이터 하나 있지 않았어?" 집에 하나 있었던 것 같은 라이터가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바봉식당에는 촛불을 켤 수 있는 도구가 아무것도 없다. 바봉식당은 전기인덕션을 쓰기 때문에 가스레인지도 없다. 비상사태다. 바봉과 또잔이 10여분 동안 집 수색을 벌였지만 끝내 실종된 라이터를 찾지 못했다. 바봉과 또잔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어디 부싯돌 이라도 없어?" "근데 라이터는 어디서 팔지?" 이때 요미가 자신의 소꿉놀이 상자에서 케이크용 칼을 꺼내보였다. "엄마, 아빠! 여기 붙어 있는거 성냥 아니예요?" "와! 그거면 되겠다. 근데 딸 그걸 어떻게 생각해 냈어?" 요미는 진짜 여러 면에서 아이디어가 샘솟는 소녀이다. 바봉이 요미가 찾아낸 성냥으로 퐁듀용 식기세트에 촛불을 켰다. 미리 녹여 놓은 초콜릿을 촛불 위에 올리고 달구기 시작했다. 이제 '딸기 in 초콜릿' 타임이다. "딸, 빨리와! 초콜릿 굳기 전에..." 초콜릿은 가열하면 녹기 시작하다가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다시 결정화가 진행된다. 그래서 시간이 별로없다. 초콜릿이 굳기 전에 딸기들을 초코퐁듀속에 빠뜨려 먹어야 한다. 딸기 in 초콜릿, 딸기의 새콤함과 초콜릿의 달콤씁쓸함이 만나 서로를 채워주는 맛이다. 딸기 1팩 정도는 요미의 입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딸기 in 초콜릿 타임이 끝난 후 먹느라 정신없었던 요미의 얼굴에는 초콜릿 수염이 생기고, 요미의 손이 닿는 모든 곳에 초콜릿 자국이 생기게 된다! "요미야! 초콜릿 범벅이 되었네...씻으러 가자..." 또잔이 요미를 화장실로 데려가며 요미에게 비밀이야기하듯 귓속말을 한다. "딸! 내일은 아빠한테 뭐 주문할거야? 핫케익 먹고 싶지 않니? " 바봉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때는 VIP 멤버십 회원인 요미를 통하는게 좋다! ※ 딸기 초코퐁듀는 딸기에 초콜릿을 코팅해 굳힌 다음 먹는 디저트 메뉴인데, 요미는 따뜻한 초콜릿안에 딸기를 빠뜨려 즉석에서 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요미가 만든 바봉식당 메뉴판이다! 주문용은 아니고, 놀이용이다! 아프리카 사람에게 인기~개구리다리, 미국사람에게 인기~갈비, 한국사람에게 인기~닭다리 ...요미는 아이디어까지도 귀엽다! 세은사랑
19년 가을, 나에게 물들다.나를 위한 여행, 14일의 여정.핀에어(헬싱키 경유) 10.21 IN 런던 11.4 OUT 파리Part.1 나에게, 런던.(with 24번 버스 외)숙소 주변 핌리코 아침 산책 그리고 작은 카페에서 플랫 화이트 한 잔:)“이 동네 참 좋다. 정말 몇 달 살아볼까?”런던아이, 사우스뱅크센터 그리고 햇살 만끽“런던에서 1년 중, 1주일 있을까 말까 한 날씨가 오늘이에요!”“그럼 전 런던아이 타러 갈래요!”말리본의 예쁜 거리 산책, 더 월리스 콜렉션, 가보고 싶었고 더 아름다웠던 서점 던트 북스 등...날이 좋아서 마냥 걸었다. 내가 애정하는 패딩턴 곰돌이가 금방이라도 나와 인사할 것 같은 리틀 베니스 산책은 아기자기한 감성까지 꺼내놓게 만들었다. 패딩턴역에서 산 패딩턴 에코백~그 속의 패딩턴이 내게 인사한다ㅎㅎ해가 질 때 즈음, 노팅힐 거리.거리에 들어서자마자 영화 노팅힐 장면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노팅힐 서점. 문을 열자마자 책냄새가 정말 좋았다. 나오기 싫었다. 결국 오~래 머물다가 책 3권을 데리고 함께 나왔다.아쉬운 밤인데 헤롯 백화점도 가볼까?^^피아노 코너의 런던아저씨, 멋진 즉흥 연주의 음표가 지금도 그려진다는:)+위키드 데이시트 도전 그리고 성공“한국인들의 경쟁이라더니 내 앞엔 모두 외국인ㅋㅋ"영국박물관.스카이가든 예약시간 때문에 반밖에 못보고 나왔다. 다시 갈 수 있겠지?(결국 다시 못갔다. 숙소 근처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컨텐츠가 있어 그걸 보면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랬다ㅎㅎ)스카이가든.짐검사를 하고 올라가는데 저기 보이는 앞사람 가방에서 큰 칼이 나왔다. 그는 당황하지도 않고 태연하다. 영국경찰 하나 둘 모이고, 분주해진다. 아...올라갈까, 말까... 5초 고민하다가 올라갔다. 뷰를 보자마자 불안은 금방 사라졌고, 런던을 내려다보며 마셨던 콜라 한잔의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앞으로 콜라는 무조건 얼음 잔+라임 한조각^^ 피카딜리 서커스, 리젠트 스트리트, 트라팔가 광장.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그 순간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며 걷고자 노력했다.내셔널갤러리 1/2: 야간개장 때 다시 올게:)☆공연 즐기기1> 뮤지컬 위키드맨 앞자리에서 배우들과 아이컨택 100번!! 무대에 뛰어 오를 뻔 했다. 나도 뮤지컬 배우 할 걸 그랬나?^^;;+미스트를 뿌린 듯 얼굴로 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테이트브리튼 갤러리로~“설마 제가 오늘의 첫 번째 관람객인가요?” 10시 문을 열자마자 들어간 사람, 바로 나.숙소 이동 후,홀본역 근처 런던 리뷰 북스를 들렸다가, 토트넘 코드로드역까지 산책하던 중 줄을 길게 선 사람들에게 이끌려 30분 뒤 공연 표를 현장에서 샀다. "남은 표 중, 가장 좋은 좌석으로 주세요." 40파운드(약 6만원)를 3초만에 지불했다. 한국에서 공연표 구매할 때는 가격대비 좌석 고민을 정말 많이 하는데, 런던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계획에 없던 뮤지컬이었는데 위키드와는 전혀 다른, 색다른 즐거움이 가득했다. ☆공연 즐기기2) 뮤지컬 BIG나만의 눈물 포인트도 여러번. 뮤지컬 BIG을 보게 된 건 큰 기쁨~! 부지런히 바비칸센터로 이동했다. 한국에서 미리 예매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이 기다린다. 특히 내가 결제한 티켓은 와일드 카드 티켓으로 공연 1시간 전 좌석을 알 수 있다. 결제 금액의 최소 2배~5배 좌석을 배정해주는 티켓인데 한정수량이다. 런던에서 공연 즐기기를 조사하다가 와일드 카드 티켓을 발견하고는 망설임없이 바로 결제했다^^ ☆공연 즐기기3)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실결제 금액의 3배 정도 되는 좌석에서 감상을 즐겼다. 옆자리 할아버지와 나눈 짧은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관광객은 잘 모르는 LSO 정기 공연이라 이 자리에 관광객은 너밖에 없을 것 같은데? 넌 참 행복한 사람이다.”+코츠월드&옥스퍼드 투어여행자에게 시간은 돈이다. 스스로에게 쉼도 줄 겸 투어를 활용했다. 제공된 김밥 도시락을 먹는 순간, 김밥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는지 새삼 놀랐다ㅋㅋ비가 와서 분위기 있었던 코츠월드. 1박을 하지 못해 아쉬울 만큼 풍경이 아름다웠던 곳!옥스퍼드는 꼭 다시 오고 싶다. (여행이 아닌 학부모로?^^;;;)빅토리아역에서 투어를 마치고, 야간 개장 중인 내셔널 갤러리를 향했다. 내셔널갤러리2/2 그리고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까지~오늘도 많은 것을 담은 내 눈과 내 귀, 내 마음에 무한한 고마움을^^자 그럼, 걸.어.서 숙소까지ㅋㅋ나 정말 걷는 거 좋아하는구나! +세인트폴대성당 그리고 좁고 끝없는 계단을 빙글빙글 올랐던 전망대(사람이 별로없어서 프라이빗한 뷰 감상 가능^^)밀레니엄 브릿지 건너서 테이트 모던6층 카페에서는 커피 말고 맥주ㅎㅎ맥주에 살짝 달아오른 기분으로 작품 감상에 몰입!버로우 마켓 그리고 몬머스 커피런던 커피 is 몬머스커피~줄은 얼마든지 설게요:)타워브릿지 건너서 런던탑버스에서 휴식을 취하며 코벤트 가든으로 이동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여정, 로얄 오페라 하우스☆공연 즐기기4) 로얄 발레단Concerto/Enigma Variations/Raymonda Act III런던 공연 즐기기 중, 단연 최고였다^^얼마 전, 로얄 오페라 하우스에서 메일이 왔다.Don't miss The Nutcracker and The Sleeping Beauty this winter.아, 보고싶다...런던에 다시 가게 된다면, 로얄 발레단 공연은 무조건 1순위~!+ 내일이면 런던을 떠나는 내게 선물 같았던 매우 화창한 날씨!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 자연사 박물관, 하이드 파크까지하이드 파크는 혼자가 아닌 둘이 다시 가고 싶다.혼자 담기엔 아쉬운 풍경, 둘이라면 더 사랑스러울 것 같아:)켄싱턴 가든&궁전아쉬움을 달래며 타워브릿지 한번 더 건너보기 그리고 템즈강을 여유롭게 즐기며 마음 깊이 야경 새겨보기앗~! 타워브릿지부터 세인트폴대성당까지 걸어왔네?^^;;파리에서는 더 많이 걷는 연미...Part.2 나에게, 파리.(with 72번 버스 외) 드디어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로 넘어가는 날!“파리가 날 기다리고 있겠지?^^;;”동시에 런던과는 헤어지는 날이다ㅋㅋ세인트판크라테스역에서 오이스터카드 보증금과 잔액을 환불하고, 지갑에서 자고 있던 파운드 동전을 모두 모아 달달한 간식을 사서 유로스타에 올랐다.혼자 하는 여행도 처음, 유로스타로 국경을 넘는 것도 처음이다.소중한 나의 것들이 가득 들어있는 캐리어를 혹여나 누가 가져가진 않을까, 짐칸을 자꾸 쳐다본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짐칸을 자꾸 쳐다보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런던에서 가끔 마주쳤던 한국 사람들도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다이소에서 자전거 잠금장치 사왔는데...분명 다 걸어놓는다고 했는데...나만 걸면 내 캐리어에 엄청난 것이 있어 보일 것 같은데?!! 소심한 고민이 시작됐다. 결국 주변을 살피다가 빛의 속도로 내 짐에 잠금장치를 걸었고, 이제는 쿨하게 짐칸에서 시선을 거두기로ㅎㅎ옆자리에서 날 계속 지켜보던 한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안녕~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고, 혼자 여행중이야. 유로스타가 처음인데 캐리어를 누가 가져가진 않을까 신경이 쓰여서 그만ㅋㅋ”“ㅎㅎ그럴 수 있지. 나는 독일사람이고 런던에 살아. 파리는 반나절정도 머무르다 돌아올거여서 캐리어는 없어. 유로스타는 생각보다 안전하니 걱정하지마^^”그녀의 말에 정말 걱정이 사라졌고, 참 고마웠다.우아하게 숄을 두르고 풍경을 벗삼아 책을 읽던 그녀. 문득 독일이 궁금해진다.(다음은 독일이다ㅋㅋ)다행히 캐리어와 함께 파리에 도착~!악명 높은 파리 북역을 탈출하기 위해 모든 신경세포를 깨워본다.무사히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 산책에 나선다. 에펠탑까지 걸어볼까? 라디오 프랑스, 비르아켐 다리를 지나서 에펠탑과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오늘부터 우리 매일 보자^^”파리의 첫날밤은 야경 투어로 마무리~생루이섬,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노트르담성당 등을 지나 길었던 하루가 저문다.내가 좋아하는 달이 참 예쁘다:)+프라고나르 향수 박물관.10시 영어 투어(무료)를 예약했다. 다국적 친구들과 함께 듣는 투어인지라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한국에서 온 나는 BTS에 대한 질문을 받았는데...내가 그들보다 BTS를 모른다^^;;;투어 후, 내 취향을 담은 향수를 구매하고 ‘칙칙’ 뿌리며 그곳을 나왔다. 가장 행복했던 영어 듣기 평가였다:)스타벅스 오페라점에서 카라멜 마끼야또 한 잔하고, 라파예뜨 백화점으로~!갑자기 추워진 파리 덕분에 맘에 드는 코트를 하나 데리고 나왔다.생 마들렌 성당을 둘러보고 쁘띠 팔레로 향한다.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정원 카페도 있다. 그곳에서 런던 숙소 1일 같이 쓴 친구를 만났다! 프랑스-한국어 언어교환하다가 사랑에 빠져 프랑스남자와 결혼한 아이. 런던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쁘띠 팔레는 현지인들이 즐기는 곳이라고~우연한 만남에 새로운 에너지가 솟는다.오늘 밤은 몽파르나스 타워 전망대에 올라 야경을 즐겨야지~!+4년 전, 부모님과 패키지로 파리에 들렸을 때는 뮤지엄패스를 사용하지 못했다.그래서 한국에서 뮤지엄패스 2일권을 구매해왔다. 지칠 때까지 다녀보자ㅋㅋ생트샤펠성당, 콩시에르주리, 피카소 미술관, 퐁피두센터, 팡테옹,그리고 야간개장 루브르 박물관까지.(모나리자는 예전에 봤으니 생략, 선택적으로 둘러보니 효율적인 관람이 가능했다.요즘 오디오 가이드는 닌텐도!! 정말 편리한 세상^^)+이어서 뮤지엄패스 2일째로댕미술관, 앵발리드 군사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지나서 개선문 전망대, 튈르리 정원 즐기다 오랑주리 미술관으로.그리고 야간개장 오르세 미술관까지.야간개장까지 활용하여 알.차.게. 뮤지엄 패스 2일권 사용 완료^^!마레지구에서 가까운 피카소미술관과 정원이 인상적인 로댕미술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야경 투어가 좋아서 주간 투어도 신청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내부 관람 및 몽마르트 언덕까지^^비 내리는 파리를 돌아보다 바토파리지앵을 탄다. 바토무슈와는 또다른 매력을 가진 배.앞을 보고 가는게 아니라 옆을 보고 간다. 흐르는 풍경에 나 자신만 던져놓고 내게 집중할 수 있었던 1시간. 왜그리 눈물이 났을까? 좋아서 흐른 눈물일거야^^;;눈물을 급히 거두고, 팔레드 도쿄(밤12시까지 운영)에서 현대미술에 취해보기로~!+파리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호텔로 이동한다. 런던과 파리에서 한인민박을 이용하며 아낀 숙박비를 여행의 피날레로 호텔에 투자ㅋㅋ미리 메일도 보냈고, 좋은 룸을 준비해줄 것을 부탁했다.마지막 날을 함께 할 나의 공간에서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이동.라데팡스 지구를 돌아보고, 생마르탱 운하 지구로 넘어갔다. 운하를 사이로 파리 시민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계속 걸어서 마레지구(보쥬 광장 등) 도착! 메르시에서 쇼핑을 하지 않고 그냥 나오는 한국사람, 바로 나구나...ㅎㅎ호텔로 일찍 들어가자니 아쉬워서 플랑테 공중산책로를 찾았다. 그곳에서 3년째 파리 유학중인 친구를 우연히 만났고, 좋아하는 카페가 있다며 커피를 얻어 마셨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모른다. 파리의 마지막 날 함께 마셨던 라떼. 그 공간에서 풍겼던 아늑한 분위기가 호텔로 돌아오니 자꾸 생각났다.침대에 누워 새벽 1시 화이트에펠 보기.잠깐 눈을 붙인 뒤, 샤를드골 공항으로 가려고 했는데...역시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밤새 나의 여정을 돌아보며 울다가, 웃다가,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다가 그만^^;;;+공항 가는 르버스를 기다리는데 비가 내린다. "파리~이제 우리 헤어져."르버스를 기다리던 그 순간이 자주 떠오를 것 같다.나를 위한 여행, 14일의 여정.19년 가을, 나에게 물들고 싶어 떠났던 여행.떠날 타이밍을 잡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다.여행을 떠날 수 있는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생각의 정지와 걸음의 멈춤이 좋았던 날들:) 연미MOON
청파부대 더 비기닝(부제 : 모든일에는 그 시작이 있다)필자가 인생락서에 군복무시절을 소재로 세가지 이야기를 작성하였다.하나는 본대 복무시절 전투체육 축구이야기이고 두 번째는 파견지 살쾡이 이야기 세 번째는 파견지의 납량특집편이었다.이쯤에서 90년초 파견 격오지(청파 : 청평파라다이스의 줄임말)청파부대에 파견나오게된 비기닝 스토리를 풀어볼까한다. 이번편은 청파부대 파견가기전 본대 복무시절 에피소드 몇 개다.이번에 두 개정도 써보고 괜찮으면 다음에 에피소드 몇 개 더 올려보겠습니다.chapter1 푹 삯은 군 동기필자가 26사단에서 신병교육6주차를 마치고 자대(본대)에 배치되던 해는 90년초 가을로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초등학생 키만한 따블빽(원통형 가방 군수보급품으로- 차용어라해서 우리말로 토착하여 표준말로 사용되는 말을 말합니다)을 준비하고 본대배치를 기다리고 있으니 6주간 신병교육대에서 동고동락했던 신교대 동기들은 호명 되는대로 군용차에 삼삼오오 짝지어 실려 본대로 가고 급작스레 신교대 동기들과는 그렇게 이별을 하게 되었다.이때까지야 고생스러워도 서로 의지되던 신병교육대 입대동기들이 있었으나 앞으로 배치되는 부대는 하늘같은 고참병들이 있는 자대(본대)로 이제부터는 스스로가 헤쳐나가야할 고난의 행군 시작이자 진정한 군복무의 시작이었다.신교대에서 본대까지도 같이 배치되는 일명 따블빽 동기는 필자에겐 없었고 필자는 홀로 호명되어 필자를 데리러 온 어느 중사님의 군용차에 몸을 맡기고 본대로 출발하게 되었다.자대배치를 앞둔 가뜩이나 기합이 잔뜩 들어간 이등병에게 그는 차량 이동중 짓궂은 농을 건네었다. “와 내가 너라면 걍 지금이라도 생을 마감하겠다. 흐흐흐 호랑이같은 선임병들이 신병오기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단다 불쌍한 녀석 이를 우짤꼬 크크크~~”그렇게 본대 내무반에 도착한 필자는 필자보다 먼저 자대에 배치된 동기를 첫대면 할 수 있었다.그는 무릎위에 두 주먹을 불끈쥔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기운이 잔뜩 들어가고 턱은 쳐든채 관물대(개인사물함)앞에 앉아 누가봐도 나 신병이요 하는 기운을 팍팍 뿜어대고 있었다.역시 기합이 잔뜩 들어가 두리번거리는 필자에게 자신의 옆자리를 눈짓으로 내주고 고맙게도 친절하게 말도 걸어주었다.자신은 논산군번으로 의정부306 보충대 군번인 필자보다 1~2주 먼저 입대했으나 부대는 한달 단위로 동기병을 끊으니 우리는 앞으로 동기가 될거고 자신이 좀 굼뜨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요지였다.그런데 말투가 어눌하고 말을 굉장히 심하게 더듬었다.지금 선임병들은 다 업무나갔으니 팔에 힘 풀고 점심먹을때까진 우리 둘만 내무반에 대기하니 편하게 있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나이도 자신보다 필자가 한 두살 많으니(필자는 대학을 재수하고 입대까지 대기시간이 많았다) 같이 말을 편하게 하자해서 필자는 말도 놓고 새로 생긴 동기덕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그런데 너는 얼굴만보면 나보다 형님같다. 임마”“세월을 직격으로 맞았냐? 아님 입대전에 아르바이트라도 빡세게 했냐?”“말은 원래부터 그렇게 더듬는거야? 지금은 보는놈(?)들도 없으니 편하게 있다가 이따 고참들 일과마치고 내무반 들어오면 그때부터 군기 바짝들은척하자~ 난 그런건 잘한다 눈치도 원래 좀 빠른편이다."그런데 네가 좀 어눌해보여 걱정이다. 이 형아만 믿어라“필자는 잔뜩 긴장해있다 동기가 생기니 긴장도 풀리고 걱정되던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그리고 동기의 모자각도 잡아주고 먼저 배치된 동기가 그동안 얻은 부대정보도 들으며 내무반에서 같이 군기를 풀고 앉아있었다.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그제서야 내무반 풍경이 필자의 눈에 들어왔다.관물대도 보이고 각잡힌 모포며 총기들도 눈에 들어오고 관물대앞의 사진함에 선임병들의 가족사진들이며 애인사진 음료수 놓인 책상등등 모든게 새로웠다.말문이 좀 트이고 마음이 좀 안정되니 필자는 평소보다 좀 많은 말을 늘어놓았다“여기 내무 군기 헐렁하다는데 맞니?”“난 전방 전투사단에서 신교대6주 받았는데 거기 조교들이 후방배치되면 예비사단은 빡쎈훈련이 적어서 애들이 군기가 빠졌대~ 그래서 사고날까봐 빙닥같은 고참병들이 내무군기를 쎄게잡는다고 하더라~~”“내무군기 쎄면 점호받을 때나 점호끝나고 등등 맨날 얼차려(기합)나 실수하면 쳐맞을텐데 걱정이다.”(30년전 군대이야기이므로 인생락서회원님들은 오해없으시길 바랍니다.요즘 군대 절대 아닙니다.)동기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떡이며 눈으로 맞장구 쳐주었다.“이제 고참병들 오전일과 마치고 점심먹으로 내무반 들어올 시간이야 다시 기합넣고 각잡고 앉아있자”“그래 너 똘똘하게 잘해. 말 너무 더듬지말고~~”“긴장할때만 더듬으니까 너무 걱정안해도 돼~~”“그래 그냥 긴장 풀고 쫄은척하자 선임들도 신병한테 그런걸 바라니까~~형만 믿어 파이팅~”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왁자지껄 시끄러워지며 내무반안으로 선임병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선임병들은 필자와 동기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와 신병왔네~~”“너 집이 어디냐?” “서울입니다”“서울이 다 니 집이냐?” “아닙니다”“누나나 예쁜 여동생있냐?” “없습니다”“왜 없어? 있다고 해. 없어도 있어야 해!!!!!!!!! 없으면 넌 남은 군생활 꽈배기처럼 꼬인거다”“다시 묻겠다. 예쁜누나나 여동생 있어? 없어? 어어없으면 만들겠습니다 ㅠㅠ”그렇게 선임병들의 시덥잖은 질문에 군기든척 쫄은척 목청을 높이던 필자는 뒤늦게 공기가 이상함을 동물적 본능으로 직감하였다.같이앉아 있던 말더듬는 동기놈은 대답을 안하고 필자만 목청이 터져라 대답하고 있었다.옆을 돌아보니 새로 사귄 말더듬던 동기놈(?)이 꾸부정하게 뒤의 모포더미에 기대앉아 필자를 지그시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한손엔 어느새 불붙인 담배도 한가치 들려있었다.그놈(?)은 아니 그분은 1주 먼저온 동기님이 아닌 전역을 2개월 앞두고 전역대기중인 내무반 최고 왕고참이셨다. 그리고는 내무군기 담당인 상병 말호봉 호랭이 선임고참에게 일갈하셨다.“졸라 군기가 빠진 신병님이 오셨다. 예비사단이 전방사단 못지않게 군기쎄단걸 선임들은 신병에게 잘 좀 교육시켜줘라~~그리고 신병이 나한테 세월을 직격으로 맞았냐?는데 나 그렇게 삯았냐? 하하하 큰일이네~~~ 곧 전역인데말야 크크크”(이보시오 큰일은 내가 큰일이오 흑흑)어느새 그는 8시 정규방송 뉴스 아나운서보다 더 또렷한 발음으로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았고 동기녀석분님(?)의 발음이 또렷해질수록 필자의 정신은 정처없는 먼길을 떠나는것이었다.chapter2 잘못된 만남그렇게 시작된 필자의 파란만장한 자대 생활은 그냥저냥 두어달이 흐르고 필자에게도 드디어 부하사병이 생겼다. 두달 단위로 기수를 끊는 내무반 관례로 7월 군번인 필자에게도 필자보다 입대가 두달 늦은 9월군번인 부하사병이 한번에 3명이나 생겼다.그 중 병철이란 부하사병이 유난히 필자와 말이 통하고 성격도 비슷한 것이 죽이 잘맞았다.필자는 대학을 재수하고 입대일자가 맞지않아 여러 사유로 입대가 늦어져서 병철이에겐 두어살 많은 형뻘이었다. 실제 사회에서의 선배형처럼 잘 따라주니 잘해주고 싶은데 필자역시 이등병 작대기 하나단 앞이 보이지 않던 같은 쫄병인 입장이라 마음뿐 뭔가를 잘해줄 위치도 여건도 되지 못했다. 간혹 관물대에 꼬불쳐놓은 건빵을 야간외곽 근무마치고 돌아온 후임병에게 건네주는게 다였고 덤으로 고참병들에게 걸리지않게 침으로 녹여먹는 신공을 전수해주는 정도가 전부였다.그래도 후배사병은 필자를 잘 따라주고 필자 역시 친동생같은 병철이와 형제마냥 잘 지내고 있었다. 병철이는 입대전 교제하던 애인이 있었는데 애인이 주말에 부대로 면회 올거라고 면회 요령을 필자에게 소상히 물어왔다.당시 필자 역시 이등병 쫄병입장이라 병철이 보다 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으나 후배를 아끼는 마음에 잘 모르면서도 주워듣고 본대로 이것저것 약간 엉터리로 그만 알려주고 말았다(허세가 필자의 트레이드마크였기에 절대 잘 모른다는 말은 당시 필자 사전에는 없었다.그놈의 허세 때문에 뒤의 후배의 면회 사건(?)이 결국 터지게 된것이다.)후배의 애인이 면회온다던 토요일은 1시 일과이후에는 부대전체가 비교적 한가한 시간이었다.면회오는 다른 사병,외출 외박을 끊어 나가는 사병들...........고참사병들은 기타를 튕기거나 오수를 즐기고 이등병인 우리들은 밀린 빨래나 군용 모포 햇볕소독이나 전투화,개인총기 손질등을 비교적 자유로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애인이 면회 온다고 싱글벙글하던 병철이는 갑자기 위병소옆 면회장으로 일직하사에게 신고하고 출발하기전 필자를 불렀다.요지는 이따 면회시간때쯤 살짝 위병소 옆 면회장으로 들리라는거였다.애인도 인사시켜주고 준비해 온 사회음식도 같이 슬쩍 나누자는 것이었다.일직하사에게 신고없이 면회장으로 이동하는건 안되지만 대대장님 보시던 일간신문,부대원 편지,소포등을 필자가 위병소에서 찾아오면 된다는 거였다.원래는 대대장님 당번병(비서역할하는 병사)이 신문이나 우편물을 찾아오는거지만 필자가 당번병에게 허락받고 대신 찾아오면 전혀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그렇게 겁을 엿장수와 바꿔먹은 우리 미친 허세꼴통 두 이등병은 면회장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조우하게 되고 후배의 애인이 준비해온 음식물을 몇 개 건네받고 누가 볼세라 서둘러 면회장을 서둘러 필자는 벗어나려고 했다.그때 후배가 필자를 불러세웠다.부대 안쪽 px(군 편의점 잡화점)에 여러 가지 필요한 물품들이 있는데 애인이 면회 온김에 사준다고 그래도 되느냐고 선임인 내게 물어왔다.(면세라 사회시세보다 물품가격이 반값이었다)그런건 나도 잘 모른다고하면 될일을 허세쟁이 무대책 필자는 아마 잠깐 갖다오는건 위병소나 당직사관에게 따로 신고 안해도 될거같다는 필자 개인의 견해를 천연덕스레 말했다.언젠가 px에서 필자는 민간인 복장을 하고 간단한 간식을 먹는 사람들을 본 기억이 있어서 그리 말했던거 같다.그중엔 여성분도 있었다. 면회온 민간인으로 필자는 제멋대로 해석했다.(후에 알고보니 이들은 군무원이었다.쉽게말해 군공무원같은 신분의 사람들이었다.민간인신분이 아니니 피엑스 이용할 수 있는건 당연했지만 필자가 이를 알리없었다.)그리 말하고 필자는 다른이의 눈에 띌까싶어 황급히 면회장을 떠났다.이 덤앤더머 이등병의 짧은 미친대화가 몰고 올 뒤의 태풍급 사달은 까맣게 모른채 후임의 애인이 챙겨준 간식들을 어디에 짱박아놓고 혼자 먹을까하는 상상에 머릿속은 행복회로가 풀가동 되고 있을뿐이었다.그렇게 대대장님 신문과 부대원들 우편물을 챙겨서 내무반에 아무일 없었듯이 돌아와선 다른 사병들처럼 전투화와 개인화기를 손질하고 있었던 필자의 평온했던 주말 오후는 그리 오래가질 않았다.덤앤더머 선임병의 멍멍이소리를 철썩같이 믿은 후임병은 애인의 손을 잡고 면회장을 벗어나 부대안쪽 px로 이동하던 중 휴일 테니스장에서 테니스를 치고나오시던 대대장님과 연대장님을 정면으로 조우하게 되었다.병철이는 사회에서의 예절방식으로 넉살좋게 “인사드려...제 여친인데 부대구경도 좀 시켜주고 P.X(사회 편의점)쇼핑 좀 갑니다” 했다고 한다. 대대장님은 어질어질하시며 겨우 옆의 기둥을 붙들고서고 연대장님은 “당나라군대가 한국에도 있다더니 바로 우리부대였네” 하시며 “내가 군대생활을 너무 오래한거야 이꼴을 보다니” 하고 껄껄 웃으셨다고 한다. 휴일 당직하사는 그길로 불려오고 휴일면회군기 개판이란 꾸중과 대대장님께 조인트(정강이)를 차이고 우리 덤앤더머 후임사병 병철이는 그제서야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된걸 깨달았지만 이미 사태는 폭풍을 넘어 태풍급으로 번졌고 지금 이순간이 꿈이기만을 빌며 애꿏은 자신의 뺨만 계속해서 꼬집었다고 한다.병철이 애인도 눈치로 뭔가 크게 잘못됨을 알고 서둘러 귀가했다고 한다.그 뒤의 일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군복무를 마친 인생락서 회원님들은 다 예상하리라 생각된다.한가롭던 휴일 오후 우리부대원들은 영문도 모른채 -덤앤더머 필자와 병철이는 이유를 알고있지만-일직사관의 명에 따라 완전군장을 갖추고 연병장을 돌고 돌고 또 돌았다.과장없이 연병장을 거의 50바퀴쯤 돌았을 때 -일부 병사들은 점심에 뭘 먹었는지를 계속 확인하며 좀비처럼 희죽희죽 웃으며 맛이간채로 돌고 있었다. 곧 이 사달의 악의근원을 알게될 그들이 진심 두려웠다. - 전역을 코앞에 둔 말년병장이 참다못해 당직사관에게 “언제까지 계속 돌아야하냐?”라고 볼멘소리를 하니 돌아온 답이 30년이 더 지난 지금도 토시하나 안틀리게 필자는 또렷이 기억난다.“너희들 전부 연병장 돌다 다 뒈x때까지.............”에필로그필자는 소시적이나 지천명이 지난 지금이나 오래달리기를 유독 싫어한다.지구력이 약해서인지 오래달리는게 체질에 맞지않는다. 뭐 대부분 그렇겠지만서도.....그러나 “네놈이 지은죄를 네가 알렸다!!!!!!효과 인가???연병장을 아무리 돌고 돌아도 필자가 지은 사고 죄책감+책임감(?)+후환의 두려움 때문인지 전혀 힘들거나 어지럽지 않았다.구보 얼차려가 끝나고나면 아마도 자초지종을 뒤늦게 알게된 고참병들이 나를 산채로 달려들어 좀비처럼 물어뜯을거야란 생각을 그 순간 하고 있었다.머릿속엔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다.차라리 이대로 탈영을 할까.......탈영해서 무인도같은데 숨어들어 남은 여생을 자연인처럼 숨어살면 어떨까....그러나,자식의 탈영소식에 슬퍼하실 부모님이 먼저 머리속에 떠올랐다.지옥같은 얼차려가 끝나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마음으로 모든걸 내려놓은 필자는 담담히 고참병들의 2차 단독 지옥체험징계를 기다리고 있었다.모든걸 내려놓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며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흔들림이 없었다.(마침내 필자는 정신줄을 놓은 것이었다.)그러나, 각오하고 기다리는 호랭이 선임병들의 별도 호출이 없었다. 후임사병 병철이는 진정 리스펙 의리남이었다.따로 불려간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선임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얼차려(기합기타 알파플러스 등등)를 혼자 다 견뎌내었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30년도 더 지난 옛날군대 이야기이다.오해없으시길 바란다.)필자가 엉터리로 가르쳐줘서 이 지경으로 사달이난걸 알아채고도 자신이 미친놈 혼자 실수한걸로 다 뒤집어썼다.끝까지 선임병들에게 윗 고참인 필자의 실수를 발설하지 않았다.그냥 그렇게 본인이 다 홍콩또라이로 덮어쓴것이었고 나중 필자에게는 어차피 벌어진일인데 “같이 혼나봐야 뭐가 달라지겠냐”고 천연덕스레 반문하였다.그러면서 필자에게 “선배가 자기입장이었다고 해도 그러지 않았겠냐?”고 하며 눈을 찡끗하는거였다.요즘 애들말로 “개멋짐 화산폭발” 이었다.(적어도 필자입장에선 그리 느낄 수밖에 없었다.)성격이 대쪽같아 남에게 아부를 잘못하는 성격의 병철이는 훗날 필자보다 윗기수의 고참병기수에게 군대얼차려문화에 관한 의견대립으로 미운털이 박혀 일직하사인데도 필자가 본대에 복귀해보니 내무반에서 퍼진 군번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이유는 낡은 병영문화 악습이라 여겨지는 구타와 얼차려문화를 우리세대부터 걷어내자는 병철이와 얼차려는 내무군기 유지에 필요악이라는 선임병의 생각이 사사건건 대립하여 충돌하였다.물론 필자역시 시어머니 대물림갈굼(?)같은 낡은악습인 군얼차려문화는 없어져야한다는 주의여서 그 선임과 의견충돌이 잦았다.필자는 이 무렵 청파부대 격오지파견(지난 문예창작소 참고필수) 생활을 마치고 본대에 복귀해서 내무반장을 수행하기 직전이었다.(그 시절 군대는 내무반에서 전역이 6개월이내이고 일직하사를 수행하면 “퍼진군번”이란 병사들 사이의 암묵적 관례가 있었고 보통은 첫 일직하사를 수행하는날 점호가 끝나고 내무반 제일 서열이 높은 고참이 일직하사를 수행하는 병사에게 담배를 권하고 - 흡연, 비흡연유무는 이때 중요치 않았다.담배를 건네받아 태운후 이후에는 내무반에서 눈치보지 않고 담배를 필수있다는 일종의 병사들간 상징적인 암묵행사였다.-피엑스도 아무 때나 갈 수 있고 책도 보고 말투도 다나까로 끝나던 군대말투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암묵의 족쇄를 풀어주는 관례였다.공식적인 전역대기와는 또 다른 병사들 사이의 오래된 관행이었다. 아마 전역하고 사회나가 로봇처럼 굳어있는 군스타일의 말투나 행동을 완화시켜주는 요지로 시작되지 않았나싶다.그 위치가되면 굳어진 머리도 풀라고 사회있을때 전공했던 서적도 보고 또 학교를 다니지 않았던 이는 필요한 자격증공부도 눈치보지 않고 할 수 있었다. 미리하는 사회적응 예비훈련기간 알림의식같은거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30년도 더 된 얘기니 지금 군문화와는 많이 다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린다.)후임 병철이가 일직하사를 수행한지도 몇차례가 지났는데 제일 고참병이 평소 개인적인 감정으로 몽니를 좀 부려서 병철이를 애써 외면했다. 필자가 정식으로 내무반장으로 견장을 차던날 후임병철이에게 담배를 권하는 일종의 적응관례를 강행해버렸고 전역이 코앞이던 선임에게는 “이제 내무반은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사회나가 적응하는것에 신경써야하지 않겠냐”고 어렵게 수차례 설득하였다.그러나 끝끝내 동의하지않고 몽니를 부리던 선임병 고집으로 필자와 선임병과의 관계는 서먹해졌지만 필자는 개의치않고 밀어붙였다. 비로소 일직하사를 수행하던 병철이는 후임병들에게 체면이 좀섰고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고마워하는 눈빛을 필자는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쫄병시절 그렇게 안가던 국방부시계는 고참병이되서 생활할만해지니 쏜살처럼 지나갔고 필자에게도 거짓말처럼 전역일이 불쑥 다가왔다.아침점호를 열외받고 후배들의 행가레도 받고 혼자 내무반에서 추억록과 간단한 소지품을 챙기고 상념에 빠져 잠시 앉아있던 필자에게 어느새 다가온 병철이는 지난번 퍼진군번건때 고마웠다고 쑥스럽게 말을 건네왔다. 그제서야 필자는 그렇게 벼르고 별러왔던 말을 눈을 찡끗거리며 그때의 병철이처럼 무심한듯 건넬 수 있었다. “네가 내 입장이었더라도 그러지 않았겠냐?”Based on a true story..........to be continue......... 하버드룸
  ♪♬ 눈이 내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내리네~~♬♪ 눈이 내리면,기억에서 조차 가물 거리는 아련한 추억 속 첫사랑의 남자를 떠올리거나 ,이루지 못할 사랑으로 인해 가슴 아프게 헤어져야만 했던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나 궁금한 사람 하나쯤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난 그런 사람이 없다.지금의 남편이랑 사귄지 고작 4개월만에 결혼을 하는 바람에....  눈이 내리면,진한 커피 한 잔 친구삼아, 눈 내리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또르륵 한 방울 눈물과 함께 고독을 씹으며 떠올릴 사람 하나 없고,화려한 연애 경력 까진 아니더라도 남들 다하는 선 한번 보지 못하고 초 고속으로,뭔가에 홀린듯 결혼한 것이 가끔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한다.  그러나 그런 내게 눈이 내리면, 추억할만한 과거의 연인따윈 없지만 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바로 우리 아버지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했던 아버지의 등이,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간을 선물로 받았던그 시간이 그리워 나를 추억 속으로 이끈다. 내가 어렸을때 살았던 동네는 읍네에서 십 여리나 떨어진, 사방이 산으로 뺑 둘러싸여 손바닥 만한 하늘을 이고 살던 아주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옆집의 밥 그릇이 몇 개고,수저가 몇 개며,누가 무얼했는지 , 누가 아픈지,슬픈지 숨겨지지 않던, 모든 이웃이 가족 같았던, 가난했지만 아주 정스런 마을이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선물한 소중한 추억은 내가 초등학교2학년이었던 어느 눈 내리던 겨울날의 일이다.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오전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 갈 즈음엔 발목 위를 푹 덮을 만큼 수북히 쌓였다.몸이 약한 두살 터울 작은 언니는 눈 내리는 날 학교에 보냈다가 행여나 병이날까 엄마는 학교에 보내질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의례히 언니랑 나란히 걸어 오던 길을 혼자 걸으려니, 그날따라 왠지 무섭기도하고 쓸쓸하기도 해 자주 아픈 언니가 부럽기조차 했다. 발목 깊이 푹푹 빠져드는 눈 위를 얼마 걷지도 않아 젖어버린 양말 때문에 발도 시리고, 내 짧은 다리로 집까지 걸어 가기엔 여간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혹시 이러다 내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 허리만큼 눈이 차오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힘겹게 내딛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보니 중절모를 쓰신 근엄한 표정의 아버지가 빠른 속도로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오셨다. 반갑기보단 갑자기 만난 아버지가 어색해 쭈뼛거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내 앞에 앉으시고 등을 내밀며 업히라는 시늉을 하셨다.  그랬다. 아버지는 말보단 표정으로 ,눈짓으로,몸짓으로 말씀하시던 분 이었다. 나도 그냥 말없이 아버지 등에 업혔다. 아버지와 나는 그날 그냥 함박눈이 조용히 그려가던 세상 속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족히 십여리나 되는 집으로 가는 길, 고요히 펑펑 쏟아지던 함박눈이 볼 빨간 작은 계집아이 단발머리 위로 ,그리고 아버지의 멋진 중절모 위로 소리없이 쌓여가고....아버지가 내딛으실 때마다 쌓인 눈들의 뽀드득, 뽀드득하고 아우성치던 소리외엔 완벽한 고요함을 깨트리는 건 세상 천지에 그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무겁게 내려앉은 잿빛하늘 아래,어딘지 모르게 고요히 숨죽이고 있던 꿩 한마리가아버지의 어험! 하는 헛기침 소리에 놀라 푸드덕 날아오르던 날갯짓에,소나무 잔가지 사이로 소복이 쌓여있던 눈들이, 순간 무지갯 빛을 내며 와르르 쏟아지고.... 아버지의 따스한 등에서 스르르 눈을 감은 어린 나는 뽀드득 발자국 소리 자장가 삼아, 세상에서 가장 넓고도 푸근했던 아버지의 등에서 잠이 들었다.  저녁 먹고 자라고 깨우시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꿈결인듯 들려오고, 희미한 등잔불 아래 조촐한 밥상이 눈앞에 어른 거렸다. 몽롱한 잠에서 깨어보니 군불지핀 따듯한 아랫목이었다. 어린 나이이긴하나 10여리길 업고 걸으시기엔 꽤 먼길이라 아버진 힘드셨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엔 엄마가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로 가득찼던, 희미한 등잔 불빛이 일렁거리던 아랫목 따듯한 그 방으로,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깨워 주시던 젊었을때의 엄마와, 말없이 담배를 피시던 아버지가 계시던 그 방으로, 동화속처럼 작고 아름다운 산골 마을을 뛰놀던 볼 빨 단발머리 작은 계집아이가 있던 그 방으로 돌아가고싶다.  웃음기없는 근엄한 표정으로 예의 중절모와 회색빛 두루마기를 입고 계신 빛 바랜 사진 속 중년의 아버지. 평생 남을 따듯한 추억을 주신 아버지가 그리운 눈 내리는날 . 아버지의 등에 업혀 뽀드득 발자국 소리 자장가 삼아 잠든 딸 업고 걸으셨던 십리길.  나를 업고 걸으시는 길 위의 아버지가 한 폭의 풍경화처럼 내 기억속에 멈춰 있다. amigaim
고드름 겨울이면 처마끝에 매달려 겨울 내내 함께한다. 추운 날에는 너도 나도 누가 더 자라나 내기라도 하듯이 자라고 뽐을 낸다. 뽐낸 고드름을 심심하면 하나 따서 오드득 오드득 깨물어 먹는 재미가 솔솔했다. 어릴 적 먹을게 없을 때 아이스크림 대신으로 맛나게 먹었다. 손이 시린데도 어찌나 맛나게 먹었는지 성질 급한 친구는 깨물어 먹고 소심한 친구는 빨아 먹고 때론 서로 누가 빨리 먹나 내기도 했다. 누가 더 큰 고드름을 따는지 내기도 하고 칼 대신 고드름을 가지고 칼싸움도 하고 놀았다. 놀다 지치면 고드름을 한입 물고 서로 숨이 넘어가도록 웃어 재쳤다. 코에서는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손은 빨갛게 얼어 붙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면서 놀았다. 장갑도 없어도 손이 시리고 코가 시리고 발이 시려도 뭐가 그리 신나고 즐거웠는지 어린 시절은 추위도 모르면서 자연속의 모든 것이 먹걸이 놀잇감이었다. 고드름만 먹은것은 아니다. 들에 있는 풀조차도 달작지근 하면 먹었다.산으로 들로 다니며 자연을 친구 삼아 달리고 굴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요즘은 고드름조차 보기 힘들다. 주변에서 흔히 보면 고드름이 사라졌다. 추위도 사라지고 오염이 심해서 예전처럼 먹을 수도 없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 커진다. 아마도 이젠 더 이상 손쉽게 보고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리움과 함께 추억이 깊어만 간다. 작은 것들이 이렇게 소중함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처마끝 고드름이 이젠 다 녹아버렸다. 추억속으로 숨어버렸다. 한 겨울 고드름 하나 따서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고드름이 먹고 싶다. 아무리 비싼 아이스크림보다 맛난 고드름 시원하고 달큰한 한 입을 깨물어 먹고 싶다. 지난 날들을 그리워 하며 추억을 그리며 별새꽃1
오늘은 회사 관리감독자 교육이 있었다 아침9시부터 저녘 6시까지 모처럼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에 뿔이 나는듯 아프고 안전교육이라 회사에 가서 직원들에게 다시교육을 해야하는 책임이 주어지는데도 여기저기 고개를 끄덕이는 분들이 보였다 그런 짬에 강사 한분이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의 어느 노교수가 강의실 가득히 메운 젊은 학생들앞에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꺼내놓고 여러분들은 여기에다 무엇을 채우겠습니까? 질문을 던지며 먼저 자갈을 가득 담은뒤 이제 가득 채워졌나요?학생들에게 물으니 학생들은 네 가득 채워졌습니다 라고 했고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교수님은 아까보다 조금 잘게 부서진 돌 들을 모아 다시 항아리에 넣었읍니다 이번에는 자갈들사이로 잔돌들이 채워지면서 정말 항아리를 가득 메웠을때 교수님은 또 처음과 같이 어때요 이제 다 채워졌나요? 학생들은 똑같은 네 라고 대답을 했고 교수님은 이번에는 모래를 들어 가득한 돌위에 부었습니디ㅡ 가득 찬 듯한 돌틈사이로 모래가 그틈을 타고 스며들듯이 파고들어 항아리를 빼곡히 채웠고 이제 정말 가득 찼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노교수님은 이번에는 홍차 한잔을 그위로 부었습니다 가득 차서 더이상 아무것도 들어 갈수없다고 생각했는데 모래위로 홍차가 스며들었습니다 교수님은 처음에 넣은 자갈은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느끼는 첫번째로 가족 친구 건강이고 그다음 작은돌은 일를 의미하고 모래는 그외의 자질구레한일들이며 마지막 홍차는 여유라고하셨습니다 그이야기를 강사님께서 하시면서 우리가 살면서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어렵다고 해도 어딘가에서 잠깐 여유를 가질수있는 그것은 꼭 필요하고 찾을수있는 공간이고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과연 우리들은 인생의 커다란 항아리에다무엇을 가장 먼저 채울것인가? 질문을 하면서 강의를 마치셨다 돌아오는길 나는 지금껏 무엇을 채우려고 노력했고 지금 무엇이 담겨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하게 했다 무엇을 담을것인가? 로고스
어릴 때는 다사다난했습니다. 세상에 나보다 더한 일을 겪은 사람은 많았겠지만, 저는 제가 겪은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일 것으로 생각했고, 어린 나이부터 상념에 젖어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유명한 위인들의 좋지 않은 가정사 일화를 읽으며, 억만장자가 된 제 모습을 상상하곤 했습니다. 유복한 가정의 위인들은 더 많다는 것을 그땐 알지 못했죠.초등학생 때는 학예회를 즐기지 못했습니다. 학예회로 예쁘게 교실을 꾸민 친구들에게 어차피 하루 하면 치울 텐데 왜 굳이 이런 걸 하는 건지, 하고 볼멘소리로 투덜거렸었죠. 어린 저는 에너지를 낭비하는 건 멍청한 일이고,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을 하는 게 똑똑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중학생 때는 친구들이랑 시끌벅적 노는 것이 멍청해 보였습니다. 체육 시간이면 쓸데없이 피구나 발야구에 진을 빼고 지면 바락바락 화내는 애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무리 지어 다니고, 그 무리에 끼려고 굳이 자기 자신을 맞추려 애를 쓰고, 그 무리에 떨어질 것 같아 안달 난 애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친구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 당시 전 어떤 일로 싸워서 헤어지게 돼서 내 옆에 친구가 하나도 없게 된다 해도 전 상관없었습니다. 전 제가 가장 똑똑하고 혼자 있는 것이 편했거든요. 지금 당장 같은 교복을 입고 생활하더라도 저 얼간이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고등학생 때는 찬찬히 현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초, 중학생 때 비범해 보였던 내 두뇌는 사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선 다른 애들과 다를 바 없는 머리였고, 나는 생각보다 인내심이 부족했으며, 사회성도 떨어져서 어디 가서 나를 반기는 이 하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냉혹한 현실을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어울리길 싫어하고 공부하기도 싫어했으며 그저 공상하기만을 좋아했는데, 노력도 인내도 없이 오직 그 이유만으로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거든요.수능이 끝나고서는 매우 들떠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돈이 부족하면 알바를 하는 삶을 꿈꿨습니다.네, 이제는 그것조차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굶어 죽기 직전까지 꿈을 좇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비범했던 어렸을 때와 달리 저는 남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었고, 굶어 죽기 직전까지 가기엔 의지가 부족했고, 무엇보다도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전 남들처럼 왜 평범하게 준비하지 못했는가를 탓했습니다.살아왔던 방향과 너무 달라 당혹스럽고 후회도 되지만 이제라도 깨달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전 평범하지만, 예전의 비범함을 잃은 덕분에 타인과 왜 어울려야 하는가를 배웠고, 왜 나는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를 배웠으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과거에 결핍돼있던 저에게 단 한 가지 주고 싶은 게 있다면 새까만 밤하늘 아래의 조그마한 등불 같은 이 깨달음일 것입니다. 지금의 저는, 사람들과 더 잘 어울리는 법이 궁금하고 이제 막 삶에 열정을 붙인 중학생, 고등학생의 소녀 같은 사람이랍니다. 튀로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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